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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 Nov 05. 2024

5. 나 때에는 말이야 2

(2) 당신은 불친절한 사람입니다.

(첫머리)

오늘 하루.

하루가 유난히 짧은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서.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다 보니.

쓸데없는 걱정을 붙들고 있다 보니.


모든 하루는 의미를 가진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지루한 일을 반복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어서.

쓸데없는 걱정을 붙들고 있다 보니.


모든 하루는 걱정을 가진다.


뻔한 진리.

하루가 모여 한 달을 만들고

한 달이 모여 일 년을 만들고

결국 모인 시간은 자신이 되어있다.


나는 어떤 하루를 모아갈 것인가.

모아둔 것은 영원하며 절대불변한가.


차오르며 온 하늘 아래를 비추는

저 달도 결국에는 기울고

다시 비워내지 않는가.


차올랐음에는 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오늘 하루를 짧고도 길게

모아 온 나에게 주어야 하는

순리 같은 것이 아닐까.


(본문)

나의 스트레스는 아침에 변기통을 부여잡고

속에 있는 걸 게워낼 만큼 극에 치닫았다.


'왜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모르는 거지?'

'다들 하루만이라도 와서, 내가 맡은 일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많은 조직 구성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굉장히 낯설고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사람이 많은 곳에는, 늘 잡음으로 가득하다.


흩어져있는 분사무소의 '막내' 선생님이 모여서,

센터의 상황을 브리핑하고, 짧게나마 교육을 했다.


나는 본사에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회사의 높으신 분은

취합담당자인 나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내가 취합하는 것이 많아서,

일의 효용성을 높이고자 함이었다.


단상 앞에 섰다.

마치 청문회 모양새였다.


지금까지 나랑 관계가 가장 안 좋았던

선생님이 적막을 깼다.


'너무 딱딱하게 구신다'

'지금 서있는 자세도 삐딱하다'

'사람이 말하면 경청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 한 분을 제외하고는, 나에 대해 크게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걸 왜 하고 있냐며, 어리둥절해하는 선생님도 많았다.


첫째, 너무 딱딱하다.

그때 당시에는 MBTI가 없었지만, 나는 ISTJ 유형이다.

TJ는 TJ들을 알아본다(*MBTI 뒤에 숨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소 무신경하고 시니컬한 태도.

인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나도 사람이다. 왜 관계를 좋게 맺고 싶지 않겠는가?

나에게 문제를 제기한 선생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일보고 데이터를 보낼 때, 매일매일 틀린 수치를 보내왔다.

정말 이것이 틀린 수치인지, 내가 잘못 계산한 건지

검토하기 위해서는 내 시간을 쏟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정식 퇴근시간이 지난 오후 6시 이후에 이루어진다.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원치 않는 잔업을 해야만 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조금만 신경을 기울여 산수만

하면 되는 하루치 데이터를 쓰기 귀찮아,

지나간 날짜의 파일을 전달해 주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이러니 미쳐 안 미쳐..?)


'그래도 좀 친절하게 얘기해 주실 수 있잖아요?'라는

거센소리가 돌아왔다.


여기에서 근무하시면서 선생님께서도 친절을 베풀며,
매일 9시까지 야근을 하실 수 있다면 나랑 위치를 바꾸자.


라고 답변했다.


그 사람도 힘든 점이 물론 있었을 거다.

내가 모르는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들이 얽혀서,

본인이 탑승한 배도 산으로 가고 있었던 거겠지.

그 스트레스를 나한테 대입하는 거겠지.


그렇게 편히 생각하고 싶었다.


그 직원은 몇 개월 후, 회사 내에서

업무적으로 큰 사고를 친 뒤 퇴사하는 결말을 맞았다.


둘째, 서있는 자세도 삐딱하다.

꼭 죄인이 된 것 마냥, 딱딱하게 정자세로

서있고 싶지 않았다. 나 스스로에 대한 방어였다.

그리고, 내가 누워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는 편하게 말씀을 주고받자는 차원에서

단상에 기댄 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좀 긴장을 했었다.

이러한 자세에 대해서는 어렸기에 다소 미흡했다.

인정한다.


셋째, 경청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내가 일하는 본사에서는, 분사무소와 비교했을 때

업무량이 3~5배는 많은 곳이었다.

일일이 모든 의견을 경청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가장 심플한 해답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그리 말랑한 곳인가.

사람이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지,

갈아 넣을 만큼 최대한 갈아 넣었다.

물 한 방울 안 들어간 생과일주스 공장 같은 거였다.


우리 사회, 정부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범법자 17명을 감독관 1명이 관리한다.

관련 인력은 늘 '태부족'이라며 보도한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한 사람 몫의 한계는 존재한다.

제발 부탁이니, 내가 매일 출근하는 곳에 앉아

단 8시간만이라도 나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길 바랐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힘들다고 얘기한다.

근데 내 일은 정말 객관적으로 힘든 게 맞았다.

단상에 서서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나를,

가만히 세워두고 있는 회사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나는 착한 사람은 아니다.

나를 키운건 분노가 8할이다.

"당신은 참으로 불친절한 사람입니다."라는 평가를 내려도 좋다.

그건 당신이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자유이자 권리다.


자신이 겪은 많은 일을 소상히 얘기해도 좋으니,

없었던 일만 지어내지 말라며 나는 그렇게 뒤돌아섰다.


지금, 과거 7년 전쯤의 행동을

똑같이 했다면, '젊꼰'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불편하겠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다.

그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은 말을 솔직하게 잘하시고, 농담도 잘하는데 왜 저래요?'

'뭐가 불만인지 알긴 하겠는데,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거 아닌가요?'

다른 센터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해줬다.


그렇다. 취향 차이의 영역이다.

결이 안 맞았던 것이다.


그런 건 있었다.

아무래도,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고 모든 사고회로가

문제해결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인간미가 덜 느껴졌을 수는 있다.


이러한 나를 두고 와이프는 아직까지

'내가 만난 가장 특이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부족함을 인정해라.

잘못됨을 받아들여라.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라.


아버지는 박애주의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런 아버지 밑에서,

까칠한 사포 같은 아들로 성장했을까?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해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연약한 속살을 숨기기 위해

가시를 바짝 세우는 건 아닐까.


난 사실 누구보다 위태로운 존재이고,

쉽게 휘둘리는 사람인데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걸까.


함께 본사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에게

나는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장수'였다.

그만큼 분사무소에서 본사로 자료를 넘겨줄 때,

오류가 많으면 모두 함께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나는 그걸 처리하는 '폭탄 제거반'을 자처했다.


그렇게 근무하기를 10개월째,

새로운 여자 선생님이 입사했다.


그 선생님은 완전히 사회초년생으로,

이번 회사가 처음 직장이었다.


따로, OJT를 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한 상담실이나 근무 중에, 업무에 대해 조금씩 알려주었다.


내가 말했다.

'저는 출근 첫 날, 가장 먼저 회사의 캐비닛을 전부 열어봅니다.'

20살 때, 첫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터득하게 된 요령이었다.


모든 일은 기본에서 시작된다.

많은 일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다.

지난날의 행적을 거꾸로 타고 오르다 보면,

현재의 일이 보인다.


나는 무심하게도, 그 선생님에게

'저한테 물어보시는 것도 좋지만, 캐비닛 자료를 보면 다 있다.'

라는 말로 교육을 대체했고,

안 그래도 바쁜 나의 업무를 처리했다.


내가 과거에 알려준 '캐비닛 열어보기'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선생님은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어렵지 않은 행동 안에, 업무 전반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


수다스럽지만, 인간지향적인 '토커' 선생님과

새로 입사한 여자 선생님은,

같은 또래여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마냥 막역한 동료친구처럼 지내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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