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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 Oct 23. 2024

5. 나 때에는 말이야 2

(1) 근무시간은 아홉시부터 아홉시까지 입니다.

(첫머리)

이제는 휘둘리지 않아도 되지 않나.

삼십 대 중반, 남은 건 구부정한 심보뿐.


모두 각자의 레이스를 달릴 뿐이며,

애초에 같은 트랙(track)위에 있지도 않았다.

흔들리지 마라. 이제는 봄이 피어날 시간.

깊게 뿌리 내려라. 낙원은 바로 여기 있지 않은가.


내 머릿속의 세상은 희미한 증기처럼

다가오지만 결코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떠도는 몽상을 억지로 끌어내리고 싶진 않다.


키가 130cm일 때부터 반짝이는 별들을 동경하며 지냈다.

작은 불빛에 반사된 벽지의 은은한 펄을 바라보며 또 별을 그리워했다.


이틀간 이어진 비 소식에 하늘은 큰 울음에 잠겼다.

누군가에게 늘 친절해라, 많은 일에 감사하라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 마음이 먹먹한 하루들.


김치 꽁다리는 오랜 시간 자신이 품던 배춧잎을 내어주며 난 최선을 다했노라, 댕강.

붉게 잘려나갔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몽상은 환각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눈을 감으면 기이한 세상에 낙하했다.

그러는동안, 내가 다려야 할 망가진 시간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다림질 종신형에 처해진 채로 난 또 멍하니 하루를 살아냈다.


(본문)

내가 직업상담사로서 가장 먼저 취업한 곳은,

직업전문학교였다.


지역 내에서 꽤나 규모가 있던 곳이었고,

자격증이 나오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출퇴근 왕복 시간이 3시간 정도 소요됐지만 만족스러웠다.


첫 출근하며 주어진 미션은 한 개뿐.

상담절차를 완수하기 위한 업무매뉴얼을 달달 외워야 했다.


입사하자마자 바쁜 일이 없음에 안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주체적으로 일하는 편이었고, 모르는 건 캐비닛을 다 뒤져서라도 이전의 기록을 바탕하여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2주 정도 지났을까, 나의 가장 주요한 업무

'상담사'를 챙겨주는 일이었다.


국가제도를 통한 직업상담의 경우,

당일 상담이 아닌 내담자에게 연락해 일정을 미리 맞췄다.


예를 들어, 내일 상담을 위해 내담자가 온다면

그 내담자와 상담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들과 바인더를

만들어두어야 했다.


상하 관계의 구조가 아니라, 직무 자체가 그랬다.

6개월간의 서포트를 마쳐야만 상담사의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현재는 사라졌다)


정부지원사업을 위탁운영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내담자의 만족도, 상담의 전문성 등 많은 평가항목이 존재했다.


"6개월 동안 이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겠구나."


단조로운 업무들이 들이닥쳤다.

80페이지 분량의 PDF파일을 10~20부씩 출력하고,

그것을 제본기로 제본까지 하는 일은 늘 구슬땀을 흘리게 했다.


구청에 찾아가 상담사가 퇴직하거나 새로 입사하는 경우에도,

내부결재를 받아 근처 구청에 서류를 전달해야 했다.


내가 다니던 곳은 대구·경북 지역에 분사무소들이 다수 존재했다.

실무자들이 곳곳에 위치한 분사무소에 매일매일 들릴 수가 없기에,

퇴근시간이 다된 오후 5시 30분에 각 센터들의 일일보고를 취합해야 했다.

똑같이 월급을 받는데, 나는 본사에 있다는 이유로 모든 걸 취합해야 했다.


각종 비품 구입 후, 재고관리

전 직원 현황, 연락처 상시 업데이트

일일 업무현황 취합 후, 최종 보고

내부 워크샵 준비, 현장 운영 등

외부 홍보를 위한 출장

제도 참여자 모집을 위한, 특강 진행

개인정보가 가득한 캐비넷 관리

상담 스케줄에 맞춰, 전날 필요서류 준비해 두기

한 달에 한 번, 전 직원 성과급 지급을 위한 서류 검토

 

대충 생각나는 것만 써보았는데,

이 안에도 정말 많은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무튼, 많은 업무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성과급 서류 검토'였다.

아니, 본사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 직원의 한 달 성과에 관한

증빙자료를 전부 전달받고, 검토하고, 잘못되면 반송하고, 금액이 틀리면 내가 잘못을 뒤집어쓰는

아주 어지러운 상황을 마주했다.


나는 일을 끊어서 하는 유연함을 발휘하지 못했기에,

한 달에 한 번은 꼭 21시 30분쯤이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유연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산적한 업무들이 많은 게 눈앞에 보이는데

미룰 수 없었다. 그냥 해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크게 깨달은 점이 있다.


센터마다 일일보고는 늘 받았는데, 상담인원과 현 상황이 다르기 일쑤였다.

매일 틀리는 사람은, 내일 또 틀린 자료를 보내왔다.


재미있는 건, 본인의 성과급과 관련된 자료를 송부해 줄 때에는

대부분 꼼꼼하게 보낸다는 것이다.


외적 보상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구나.

전부는 아니지만, 내적 동기가 발현되는건 보기 드물었다.


내적 동기가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과 연결 지어 얘기할 수 있다.


자기결정성 이론에서는, 내적 동기를 통해 몰입하기 위해서는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 3가지를 중요하게 다룬다.


그런데 첫걸음부터 막혔다.

자율성은 자신이 책임감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대부분 고압적 지시나 국가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자율성은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니 유능감으로 이어지는 게 성립이 안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리스크는 있다고 예상하고 감수하며,
직원을 신뢰하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분위기를 갖춰야 한다.



회사에 재직하는 근로자가 많을 때는 100명이 넘어갔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어떤 분사무소는 대학 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센터 앞을 지나가던 대학 관계자가 연락이 왔다.

'여기 9시가 넘었는데 불이 깜깜해요. 왜 아무도 없죠?'


알고 보니, 그 센터는 상습적으로 업무를 방임했다.

2명이 근무했었는데, 1명이 전날에 술을 마셔서 숙취로 힘들다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1명만 출근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물리적 자유도가 높기에, 정말 '자유롭게' 행동한 것이다. 얼마지나지 않아, 그들은 타 근무지로 이동해야 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인사를 총괄하는 윗선과 직원의 요구사항이 상충하자,

등기로 자신의 사원증, 회사인감을 보낸 경우도 있었다.

Netplix, '더 글로리' 연진이의 사직서


이러한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뭐 다르게 해석할 게 있을까?

그냥, 꼴 보기 싫다는 것이다.


6개월이 다돼 갈 무렵, 이제는 정식으로 상담사 코스를 밟고자 했다.

하지만 상담사가 너무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

공석이 없었고, 그 때문에 나는 8개월까지 서포트 업무를 해야 했다.


본사에서 일하는 일은 절망적일 때가 많았다.

나는 일일업무를 취합해서, 최종보고를 해야 하는데

맞지 않는 데이터나 검토가 필요해 보이는 내용을 묻기 위해

전화를 하면, 6시 칼퇴 때문에 아무도 연결되지 않았다.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복이 많아서 그래. 난 어딜 가든 이랬어.'

라며 누군가에게 나의 힘듦을 표출할 때, 덤덤하게 나타냈지만

내 마음속에는 꼭 돌려받고야 말겠다는 보상심리로 가득했다.


오전 9시부터 출근해서 오후 9시 퇴근.

늦게 마치는 날에는, 지하철 막차를 타기도 했다.


지나고 나니, 이런 치열한 상황을 견뎠기에

다른 데서도 단련된 나의 페르소나를 걸칠 수 있었다.


내가 할 도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평화로운 날,

직업전문학교의 학교장이 나를 불러 일대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알음알음 들어온 게 있었기 때문에.

그건 뭐냐면, '여직원들이 너와 통화할 때 무섭다고 한다.'라는 거였다.


나는 내가 퉁명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경각심을 갖지 않아, 나만 더 힘들게 될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 방법만이 최적의 효율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내 일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전투였다.


어느정도였나면,

내가 근무하던 본사에 함께 일할 남자 직원이 새로 왔다.

그 직원은 늘 친절하고, 사람들과 스몰토크하기를 즐겨했다.

오후 3시 30분에 걸려온 전화에도, '네 선생님 점심식사는 하셨어요?'라고 했다.

이 선생님과는 일하며 차츰 친분을 쌓았고,

'3시30분에 점심을 묻는 당신은 정말 영락없는 세일즈맨입니다.'라는 농담섞인 피드백을 주었다.


나에게 와야 할 전화도, 친절한 토커에게 연락이 갔다.


옳고 그름을 다시금 회상해 본다면, 나는 다시금 그 상황이 와도

그렇게 치열하게 할 것 같다. 그래도 정말 많이 유해졌다.


심지어는, 친절한 토커씨가 처음 왔을 때도

꽤 오랫동안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내 일을 뺏겨, 나의 입지를 잃게 될까 봐.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어린 행동이지만 그때는 뾰족함이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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