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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 Aug 19. 2024

1. 나 때에는 말이야

(2) 출퇴근 왕복만 3시간

(첫머리)

꾸준함도 분명 재능이다.

재능에 고뇌를 더한다면 축복이다.


고뇌는 고통을 수반하고, 항상성을 잃게 한다.

견디거나 즐기는 사람은 늘 마지막에 웃는다.


열정페이를 찬양하지도, 권유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힘든 시기를 겪은 사람과 아닌 사람의

성장 격차가 분명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본문)

그렇게 열정페이를 자처하며 선택한

나의 첫 회사에서는

'다행히도' 월급을 안 주지는 않았다.

나를 포함해 5명이 전부인 회사였다.


사회초년생인 데다가, 관련 경력도 없으니

실수투성이였다.

백화점 팝업 프로모션을 위해

깔아 두었던 인조잔디는

회사 내에서 재활용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알바생들과 함께

그 무거운 인조잔디를 돌돌 말아

근처에 있는 폐기장에 버려버렸다.

시키지 않아도 잘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그럼에도, 나에게 핀잔주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도 비싸겠지만, 당시 기억으로는

돈 백만원이 훨씬 넘는 크기의 물건이었다.

(결국 인조잔디는 사라져서 찾지 못했다)


에피소드는 정말 많지만, 아주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백화점 옥상에는 보통 '하늘정원'과 같은 이름을 붙여

고객들이 상시로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꾸민다.


겨울철을 맞이해

(건물의 하중을 고려한) 큰 인조눈썰매장을

설치해야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 때문에

새벽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


새벽까지 일할줄 몰랐던 나는, 얇은 바람막이

하나에 의지해 바들바들 떨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당시 회사의 대표님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코오롱 구스다운을

나에게 주며 무심히 '추우니 옷 입고 일해'라 하셨다.


내가 만난 첫 번째 '참리더'였다.


옷을 왜 이렇게 가볍게 입고 왔냐는 둥,

혈기가 왕성해서 안 죽는다는 둥,

쓸데없는 군더더기 하나 붙이지 않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옷을 건넸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그 대표님과 연락이 닿는다.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회사는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내 앞으로 된 차도 없던 사회초년생 시절,

버스를 타고 다녔다.

순수하게 버스 이동시간만 3시간.

버스를 코앞에서 놓치기라도 하는 날이나,

덤으로 폭우까지 오는 날에는 거의 4시간이 걸렸다.


2024년 기준으로, 고용노동부에서는

사업장 이전으로 인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 소요시간이 왕복 3시간 이상이라면,

실업급여의 조건이 충족된다고 인정한다.


왕복 3시간이라는 이동이

나라에서 돈을 줄만큼의 힘든 일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커진 지금의 내가 보았을 때,

이것보다 더 극한의 상황에서도

‘매일매일’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다.


요점은 매일매일이라는 것이다.


감기몸살에 걸려 오들오들 몸이 떨리는 날에,

대중교통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생리현상이 터지는 날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날에도,

하루가 유독 고달팠던 날에도.


가져다 붙일 안 좋은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나는 그런 생활을 꼬박 1년을 했다.

어떤 날은 포항으로 출근한 적도 있고,

창원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출근한 적도 있다.


대구광역시에 사업장 소재지를 두고 있었지만,

사업이라는 게 발을 뻗칠 수 있는 데까지

뻗어야지만, 추운 겨울이 와도 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아담했던 어린 날의 나를 일으켜,

지각 한번 하지 않았던 지난날의 내가 대견하다.

’9시1분은 9시가 아니다.‘라는 직장격언처럼

지킬 건 지켰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자 함이었고,

훗날의 자신이 부끄럽지 않기 위함이었다.


30대가 넘어가며, 세포노화가 진행된다.

이것은 생물학적 사실에 기반한다.

연륜이 생긴 덕도 분명 있지만,

어떻게 하면 부족한 체력 안에서

효율적으로 생존할까 라는 ‘기출변형’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꾀가 생긴다.

눈치도 빨라지고, 다양한 채널의 주파수를 학습한다.


무지하지만 눈물나게 순수했던

23살의 나는 30대 중반이 되었다.


지금의 내 또래는 찬란한 시대를 열어갈

‘다음 세대’로 지목된 질서이며, 공평성(justice)이다.

본질적 자아실현을 위해서 견뎌야 할 ‘왕복 3시간’은

개인 선택의 몫이다.


모르겠다. ‘나 때에는 말이야’라는 글의 제목처럼

갤럭시2가 스마트폰 최신 기종이었던,

내가 고생했던 시절의 보상을 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쓰-읍. 아니다 아니다.


지금은 자동차, 지하철, 버스를 타고 직장을 향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나올 드론택시가

‘왜 이제야 나왔냐‘ 볼멘소리하며,

요즘 세대들은 너무 편하게 사니까

정신력이 약하다는 허튼소리는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10년이 훌쩍 지나

’중견사회인‘이 된 나와 주변에 고해본다.

그 시절의 힘듬은 그저,



매일매일은 잔혹하지만 짙은 기억을 남긴다.


2022년 기록적 폭우에 탄생한 ‘서초동 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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