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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 Aug 22. 2024

1. 나 때에는 말이야

(3) 개안하다(시장을 채우는 사람들)

(첫머리)

체중이 빠지는 데에는 아주 단순한 공식이 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오늘 섭취한 칼로리) - (활동한 칼로리) = 하루 결산.


살이 찌기를 원한다면 많이 먹고 적게 활동하면 된다.

반대로라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


이 공식은 정말 단순하지만

인생의 성장과도 직결되어 있다.


오늘의 Input(투입)과 Output(출력)은 어떻게 되는가.

가령, 다독(多讀)해서 input이 가득한데,

소비하지 않는다면 터져서 폭발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output만 쏟아낸다면,

심연의 그 밑바닥 분자 단위의 에너지까지 드러낼 것이다.

초조함이 발끝부터 올라와 어지럽고 매쓰꺼울 정도로.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 결산을 한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큰 숨을 내쉬며 자문해 본다.

오늘 나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했는가.

어떤, 얼마나의.


과연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인가?

과연 그것은 나에게 마이너스인가?


(본문)

23살의 나는 그다지 인풋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몰라서 못했다고 봐야 한다.

그저 시키는 일을 할 줄 아는 직장인이었고,

동물적 감각이 평균보다 뛰어난 사람일 뿐이었다.


내 힘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의 첫 회사는 성격상

일일 아르바이트를 쓰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만큼 채용도 많았고 신경도 많이 쓰였다.

아주 오래전에, 얼추 계산해 본 기억으로는

약 450명 정도의 사람을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났던 것 같다.


작은 회사에서도 직급은 있었다.

나는 근무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주임'이 되었다.

명함을 파고, 담당자를 만나는 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약한 인상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에게 '주임'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건 어디에다가 설치해야 할까요 주임님?'

'휴식은 언제 하나요 주임님?'


미래를 알기 어렵다 해도,

아마 내 전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호칭으로 불리는 시기였으리라.


잠시 휴학을 하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르바이트생도 있었다.

(너무 어렸기에 비일비재했다)


그런 경우에는 일을 위해 인력을 통제해야 했기에,

나이를 속이고는 했다.

많이는 아니고 1-2살 정도.


어쨌든, 그 과정에서 정말 주관적일 수 있는데

많은 사람을 보며 흥미롭게 발견한 게 하나 있다.


알바생이 이성친구와 교제하고 있다면

200% 확률로 일을 잘한다.

(나는 당시 애인이 없었다)


내가 겪은 일들이 신기루가 아니라면,

이것은 정말 정확하다.

구식일지 몰라도, 아직도 내 삶에 유효한 공식이다.


대부분의 공통점을 나열하면 아래 3가지와 같다.

1.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다. 에너지가 넘친다.

2. 일머리가 좋아서, 1개를 알려주면 2개를 한다.

3. 손해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3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2번을 제외하고 1,3번을 함께 가진 사람은

어른이 된 지금도 쉽게 보기는 어렵다.


내가 논문을 써야 한다면,

이 주제를 진심으로 다루고 싶었다.


사랑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좋은 토양에 풍성한 작물이 돋아나는가,

아름다운 꽃에 벌들이 찾아오고, 번성하는가.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이 아닌,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부각이다.

난 아직도 이것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인생에 100%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꽤나 많은 날을 야근으로 보냈다.

그 당시에는 '놀토'라는 개념이 있었다.

한 달에 4주라면, 2주는 토요일에 출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다)

6일 출근하는 주(week)가 있다는 것이다.


평일에는 일이 바빠서, 강제적인 야근을 했지만

근무하는 토요일에는 점심을 먹고 퇴근하면 됐기에,

1-2시간 정도는 남아서 일을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침에 일찍 와서 막내랍시고 청소하는 게 귀찮아서

토요일에 청소를 해두고 가자는 마음으로,

나 혼자 사무실에 오래 남아있던 적이 있다.


당시 회사의 대표실을 청소하는데,

대표님의 책상에 아주 흥미로운 책이 하나 있었다.

'기획의 정석'.


이벤트를 기획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좋아서 제 발로 온 사람이,

왜 한 번도 이런 책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가.

그저 현장에서만 깨달음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마치 드라마 미생의 '한석율'처럼 말이다)


나야말로 영장류 최강이라며

암흑보다 더 칠흑같은 동굴 속에서 실컷 거들먹거렸다.

출처: tvN드라마 ‘미생’


그 책을 읽은 데까지 펼쳐놓고, 엎어놓고 가셨는데

전화해서 '책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물어보기에도 뭣하고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데, 주말이 끼였으니

얼른 읽고 월요일에 일찍 출근해서

제자리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가서 그 책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개안(開眼)하는 경험을 했다.


그 책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색다르게 접근하는 방식과

기획단계에 대한 프로세스에 대해 적혀있었고,

설명하기 난해한 것들은

오로지 육감에 의존하여 행동하던 지난날의 내가,

한줄한줄을 내려갈 때마다

알을 깨어나간다는 느낌을 피부로 느꼈다.


아직도 잘보이는 곳에 놔두었다


늘 뜨거운 행동만 가득해서

나조차도 만지기 싫어했던

애증의 결핍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그리고 머리 속에 레이어를 쌓아나갔다.


이런 깨우친 사람들이 곳곳에

불을 붙이고, 폭죽처럼 뻗어나가며

시장을 채워나가는 것임을 사유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저자가 있나요?‘라는

물음에도 있어 보이게 대답할 수 있게

되는 건 보너스였다.


이 길로 박신영 저자의 책인

’삽질정신‘과 ’기획의정석2‘도 읽고 소장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상징적인 책과 저자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돌아와,

나는 이 책을 월요일에

깜빡하고 못 들고 오는 아주 끔찍한 실수를 범했고,

대표님이 ‘내가 읽던 책이 없어졌다’라는 말에

‘제가 읽고 싶어서 챙겼다가 깜빡했어요. 죄송합니다.’

라는 담백쫄깃한 고해로 에피소드는 종결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조금 더 큰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와 같은

시대적 메시지를 안고 상경을 꿈꾸었다.


그렇게 구인구직 사이트를 전전하며,

단골 멘트인

‘3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해도 좋습니다.’

라는 패기 순도 200%의 에너지 때문에

서울에 집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직장을 구해버렸다.


너무 기뻐서 1시간 동안 어디 앉지도 못했다.

몸이 너무 간지러워서.


과장이 아니라 실화이다.

(그 이후 다시는 느껴보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돈키호테처럼 서울로 올라갔다.



Next Episode ---- 시멘트 속에서 꽃 피운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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