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550일, 나를 위한 프로젝트




1.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자의 시간

훈련소 수료식 날, 중대장님의 마지막 말씀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자대에 가면 대부분은 일과가 끝나면 폰만 붙잡고 누워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기서 세운 목표를 잊지 말고, 꾸준히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그저 형식적인 덕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 개인정비 시간을 맞이했을 때, 그 장면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일과가 끝난 후,개인정비 시간이 되면 생활관은 조용해졌다. 모두가 같은 자세로 누워 폰을 켜고, 릴스를 넘기고, 유튜브를 보고, 시간은 흘러갔다. 처음엔 나도 그 사이에 섞여 있었다. ‘원래 군대는 이런 곳이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게 내가 바라던 모습일까?’


환경의 영향력은 강하다. 군대는 집단의 리듬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공간이다.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움직인다. 한 명의 루틴은 결국 여럿의 루틴 속에 묻힌다. 이 안에서 ‘ 성장하겠다’고 다짐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주변이 나태하면 나도 느슨해지고, 모두가 쉬면 나도 쉬게 된다.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힘이었다.


성장은 ‘좋은 의지’가 아니라, ‘환경에 맞서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누구도 내 성장을 챙겨주지 않는다.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1년 6개월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



2.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1년 6개월

앞으로 군대에서 보낼 시간이다. 입대 전, 나는 이 숫자를 보고 한숨부터 쉬었다. 군 복무 기간은 그저 기다림의 시간, 멈춤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을 세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그냥 ‘의무의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550일짜리 성장 프로젝트 기간이었다.


군대에 들어오면 자유가 사라진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자유가 없다’는 말은 생각보다 부정확하다. 없어진 건 ‘무계획의 자유’였고, 남아 있는 건 ‘선택의 여지’였다. 휴대폰이 허용된 지금의 군대는 평일 저녁마다, 주말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생긴다. 문제는 그 시간을 의식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것이다. 나 역시 초반엔 누워서 폰만 보며 하루를 끝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게 진짜로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루의 시간을 계산해 보자. 평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이렇다.

- 개인정비 시간: 17시 30분 ~ 21시 (식사·세면 등 제외하고 약 3시간)

- 연등 시간: 21시 ~ 23시 (약 2시간)

- 점심시간 1시간과 아침식사 전 짧은 개인정비 시간 30분, 합쳐서 여유롭게 1시간 정도로 잡자.

하루 6시간의 내 시간이 생긴다.


주말은 더 크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일과가 없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약 10시간.

그럼 일주일을 계산해보자.

평일: 6시간 × 5일 = 30시간,

주말: 10시간 × 2일 = 20시간

일주일에 총 50시간.


한 달이면 50시간 × 5주 = 250시간. 1년이면 250시간 × 12개월 = 3,000시간.

➡ 훈련소 기간을 제외한 1년 4개월 동안 약 3,450시간이 생긴다.


회사에서 주 5일, 9시부터 6시까지 일한다고 치면 하루 8시간 × 54주 = 약 431일간의 근무 시간이다. 즉, 군대에서 나는 ‘나를 위한 풀타임 프로젝트’를 1년 2개월 동안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이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자격증을 위한 공부, 창업을 위한 기획, 책 한 권을 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군대가 ‘멈춤’이라면, 그것은 계획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하루 6시간을 어떻게 쓸지, 그 3,450시간을 어디에 투자할지에 따라 군 생활의 질과 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3. 시간을 못 쓰는 이유

물론 시간은 있지만, ‘집중’하긴 어렵다. 겉으로 보면 군 생활에는 여유가 있다. 평일엔 하루 5~6시간, 주말엔 10시간의 개인 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짧은 파편들로 흩어져 있다. 식사, 근무, 호출, 보고 등. 흐름이 끊어지기 쉬운 구조다.


그래서 진짜 어려운 건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집중의 흐름을 유지하기 힘들어서다. 책을 펴도 10분 뒤엔 집합이 걸리고, 계획보다 일과가 늦게 끝나는 날도 허다하다. 결국 사람들은 점점 생각을 멈춘다.


“어차피 오늘도 무너질 텐데 뭐.”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포기 루틴’이 생긴다. 쉬면 쉬는 대로 편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덜 피곤하니까. 그런데 그 편안함이 무섭다. 몸은 쉬지만, 정신은 조금씩 녹아내린다.


나태의 습관은 복리로 쌓인다. 군 생활에서의 나태는 눈에 띄지 않는다. 모두에게 기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10분씩 무너지는 집중은, 몇 달 뒤에 100시간의 낭비로 돌아온다. 사람은 ‘한순간의 몰입’보다 ‘작은 반복’으로 변한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폰만 보다 보면, 어느새 뇌가 ‘이게 일상의 기본’이라고 인식한다. 그럼 다시 집중하려 해도, 몸이 ‘왜 굳이 힘든 걸 하냐’고 저항한다.


이를 끊기 위해선 ‘의식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즉, 계획이 환경을 이기는 구조 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일과표를 다시 쪼개 보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를 관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라, 내가 세운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하루.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구체적인 시스템이 필요했다.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이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이야기의 초점은 ‘시간의 인식’에서 ‘시간의 계획’으로 옮겨간다. 다음 장에서는 실제로 내가 만들었던 비전·연간·월간·일간 계획의 구조를 소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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