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공부는 늘 “시험”과 “성적”에 붙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내신과 수능, 대학교에 와서는 학점과 전공, 각종 자격증과 스펙이 공부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군대에 들어오고 나니, 시험도 없고, 과제도 없고, 경쟁도 없다. 처음에는 해방감이었지만, 곧 불안이 따라왔다.
“이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전역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나는 군 생활을 하나의 거대한 공부 실험실로 삼기로 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설계해 보는 공부. 점수가 아니라, “어떻게 배우며 살아갈 것인지”를 연습하는 공부였다.
영어 공부는 그 실험의 첫 번째 무대였다. 가장 많이 에너지를 쏟은 영역이다. 강성태 영문법을 들고 훈련소에서부터 야수교, 자대까지 끌고 다니며 3회독을 했다. 1회독 때는 인강을 따라가며 노트에 빽빽이 필기했고, 2회독 때는 빠르게 훑으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가르는 작업을 했다. 3회독 때는 다시 속도를 줄여 개념을 정리하고, 요약 노트를 만들며 “이제 이 문법을 실제로 쓸 수 있을까?”를 점검했다. 오답노트를 만들거나 4회독을 하려다 멈춘 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문제풀이 실력”보다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질릴 만큼 반복해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문법이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문장을 해석하는 안경처럼 느껴졌다. 이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는 단순했다. 문법은 ‘한 번에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질리는 순간을 통과하면서 몸에 스며들도록 반복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영어 학습의 다른 축은 단어·듣기·원서 읽기였다. 토익 단어장에서 시작해 토플 보카로 넘어갔다가, 다시 어원 중심 교재로 갈아타며 단어 공부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여러 권을 건드렸다가, 결국 “한 권을 여러 번 보는 것이 맞다”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다. 듣기는 해커스 토플 LC 인강, TED, 영어 유튜브, 팟캐스트를 오가며 실험했다. 처음에는 강의 하나를 완벽히 이해하려고 매달리다가 개인정비 시간이 통째로 날아가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몰입 중심 듣기”에서 “노출 중심 듣기”로 방식을 바꾸었다. LC 인강으로는 구조를 배우고, 자투리 시간에는 팟캐스트와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흘려들었다. 원서 읽기는 레미제라블과 셜록홈즈로 시작했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10개씩 쏟아지는 상태였지만, 어휘를 전부 잡으려 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단어장을 보며 외울 때보다 문장과 표현이 오래 머리에 남았다. “단어를 외워야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읽다 보면 단어가 익숙해진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영어 공부는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꾸준함, 루틴, 자기 이해, 피로 관리, 동기 회복 같은 요소들이 전부 엮여 있었다. 실제로 토플 인강은 중간에 끊기고, 스피킹 계획도 여러 번 멈췄다. 휴가, 다른 공부, 공모전, 몸 상태 등 변수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또 실패했다”고 자책하면 공부 자체가 싫어졌다. 그래서 기준을 바꿨다. ‘매일 2시간 공부’ 같은 완벽한 목표 대신, “무너진 뒤 다시 시작할 최소 단위”를 정했다. 단어 한 챕터, LC 20분, 원서 5페이지. 이 정도만 해도 “오늘도 영어를 이어갔다”는 감각이 생겼다. 군대에서 공부는, 누가 더 오래 달리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자주 다시 시작하는지의 문제에 가까웠다.
영어 외에도, 나는 여러 영역에서 공부의 모양을 바꾸어 보려 했다. 그중 하나가 학점은행제였다. 처음 수강한 강의는 ‘슬기로운 금융생활’. 프린터로 교안을 뽑아 주말마다 사지방에서 2시간씩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강의 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내용이 다소 이론적이고 현실 금융생활에 바로 써먹기에는 아쉬웠다. 그래도 금융 시장의 구조, 금리·채권·주식 같은 기본 개념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이후 ‘AI와 미디어교육’, ‘주식투자의 이해’ 같은 과목을 추가로 수강했고, 결과적으로는 A+를 받으며 12학점을 채웠다.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니라, 여기서 얻은 공부에 대한 통찰이었다. 흥미가 떨어지는 강의는 출석만 채우게 되고, 그 순간 “학점은행제 = 싸게 학점만 따는 루트”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내용이 다소 평이하더라도 지금 내 관심사와 연결되면, 강의는 “학점 + 기초 지식 + 학습 루틴”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수강 신청을 할 때, “취업에 도움 되겠지”가 아니라 “진짜 궁금한 주제인가?”를 먼저 묻기로 했다.
전공 공부는 솔직히 말하면 계획만큼 진도가 나가지는 못했다. 교육학 책을 챙겨 오겠다고 마음먹고도 휴가 때 놓고 나오기 일쑤였고, 임용고시 교재를 본격적으로 펼치지는 못했다. 대신 나는 “전공을 교과서가 아니라 현장과 내 경험에서 다시 읽어보자”고 방향을 바꾸었다. 은하수학교에서의 경험, 청소년 자치와 민주시민교육 관련 서적, 교육박람회에서 만난 에듀테크와 지역 교육자들을 관찰하며 “교육학 이론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메모했다. 책을 집필하기 위해 청소년 자치, 주도성,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논문·기사·사례를 모으고, 내 언어로 요약하면서 ‘전공 복습’을 대신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건, 전공 공부도 “책을 몇 권 읽었느냐”보다 “내가 겪은 현상과 이론을 몇 번이나 연결해 보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군대라는 공간 덕분에, 나는 교육학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고, 동시에 더 긴 호흡으로 돌아볼 여유를 얻었다.
언어적 스킬은 군대에서 확실히 퇴화했다. 대화의 밀도가 낮아지고,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말을 꺼낼 때마다 혀가 꼬이고 발음이 뭉개지는 걸 느꼈다. 교정기를 새로 끼고 앞니에 장치를 부착하면서, 자음이 새고 말 끝이 흐려지는 현상이 심해졌다. 취업박람회에서 모의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예전의 나답지 못한 모습을 마주했다. 과거 활동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문장만 맴돌았고, 목소리는 작고, 제스처는 어색했다.
“아, 말하기도 근육이구나. 안 쓰면 굳어버리는구나.”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말을 꺼내려 했다. 후임들과의 대화에서 욕설과 비난 대신 설명과 질문을 섞어 보고, 갈등 상황에서는 비폭력 대화의 원리를 떠올리며 이야기해 보았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말하기 스킬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앞으로의 공부 계획 안에는, 영어뿐 아니라 “모국어로 잘 말하고 설명하는 능력”을 회복하고 키우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철학하는 삶에 대한 갈증도 커졌다. 군대는 생각보다 ‘생각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공간’이다. 일과표가 정해져 있고, 지시를 따르기만 해도 하루는 어떻게든 흘러간다. 그런데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면,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일부러 철학·인문학 책을 찾았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읽으며, 내가 경험하는 갈등·불공정·관계 문제를 다른 언어로 다시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은하수학교에서 공동체 가치를 강조하던 경험은 덕 윤리 개념과 연결되었고, 누군가의 내로남불을 보며 르상티망을 떠올리기도 했다.
GPT와는 자유·자아·인공지능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눴다. 내 생각이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내가 의외로 칸트나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도덕주의적 관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철학책을 읽는다고 당장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겪는 일을 설명할 언어가 늘어나면, 버티는 힘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군대에서 내가 발견한 ‘철학 공부’의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미래 역량 강화라는 이름으로 여러 실험을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AI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막연한 불안에서 시작했다. 챗GPT를 써 보면서, 이 도구를 단순 검색 엔진이 아니라 “학습 파트너”로 활용해 볼 수 있겠다는 감각이 생겼다. 사조사 공부를 할 땐 개념 설명과 문제 풀이를 도와주는 과외 선생님이 되어 주었고, 금융 상품을 고민할 땐 경제적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재무 코치가 되었다.
협동조합을 준비할 때는 제안서, 사업계획서, 조직 구조 설계를 함께 다듬는 기획 파트너 역할을 했다. 서평단 모집 글을 쓸 땐 카피라이팅을 도와주는 에디터가 되었고, 영어 공부를 할 땐 스피킹 피드백을 주는 회화 파트너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미래 역량”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정의하게 되었다. 거창한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구를 활용해 나의 강점을 확장하는 능력 말이다.
군 생활 동안 했던 공부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점수를 올리기 위한 공부”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공부”로, 초점을 옮기는 연습을 했다. 영어, 학점은행제, 전공, 언어 스킬, 철학, 미래 역량. 어느 것도 완벽하게 해낸 것은 없지만, 모두가 하나의 공통된 질문으로 연결된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군대에서의 공부는 이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이었다. 그리고 이 실험은 전역 이후의 삶에서, 더 본격적인 답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