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2015. 10. 25.) - "책, 마음 낭독"
2015년 9월 13일 서대문구립 이진아 기념도서관에서 주최한 "책, 마음낭독" 대회에 참가했던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낭독의 의미를 깨우쳐 준 「책, 마음 낭독」 대회
사람들의 얼굴이 서로 다르듯 사람들의 목소리도 서로 다르다. 좋은 목소리도 있고, 좋지 않은 목소리도 있지만 제각각 다른 목소리로 한 권의 책을 낭독하는 것은 제각각 다른 목소리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소리의 파노라마이며 낭독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구슬처럼 하나로 꿰어주는 고리이다. 이진아 기념도서관은 이러한 소리의 파노라마 현장에 함께 해 달라는 인연의 초대장을 보내 왔다.
「낭독의 발견」은 2003년 11월 5일부터 2012년 2월 23일 까지 거의 10년간 KBS(한국방송공사)에서 방송되었던 교양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면서도 “낭독을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은 별로 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진아 기념도서관에서 9월 13일에 있을 「책, 마음 낭독」 대회에 참가할 낭독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낭독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서 제주도에 사진 찍으러 가려했던 여행 계획을 접고 참가신청을 하고 첫 모임에 나갔다. 첫 모임에는 시간을 잘못 알고 1시간이나 늦게 참석하였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낭독하는 방법이나 발성법 등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참가한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엄마의 말뚝 2」라는 책의 일부를 참가자들이 일정 부분을 돌려가면서 읽는 것이 전부였다. 나머지 한 그룹은 어머니와 자녀 둘이 강소천님의 호박꽃 초롱, 바람이라는 동시를 낭독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낭독연습을 하면서 그동안 ‘읽었다, 덮었다’를 여러 차례 반복한 「일리아드」에 적용해 보았다. 일리아드를 낭독해 보았더니 서사시로 쓰인 이 책이야 말로 낭독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일리아드」를 낭독해 보니 익숙하지 않은 그리스 지명과 인명이 자주 나와 매끄럽게 읽히지 않아 고쳐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소리 내어 읽으니 힘도 들어 낭독이 쉽지는 않지만 웅장한 대사와 박진감 넘치는 대화가 넘쳐나는 「일리아드」를 읽는 맛이 났다. 그리고 낭독을 하면서 읽으니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내용도 이해가 더 잘되는 것 같다. 「일리아드」를 눈으로 읽었을 때는 몇 페이지 읽다 말다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 결국은 덮어 버리곤 하였는데 낭독을 하면서는 벌써 270페이지를 넘겼으니 낭독에 대단한 성공을 한 셈이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낭독을 해 보는 것이 처음이어서 어색하고 두렵기도 하였는데 우리 팀이 읽는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의 내가 많은 부분을 충분히 연습했고, 함께 참여하는 분들과 호흡도 잘 맞아 틀리지 않고 잘 할 수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에 나오는 문장 중에 깊은 밤 만두 장사가 외치는 “만주냐 호야, 호야”라는 문장을 마음껏 외쳤더니 김보경 선생님은 그 문장은 나를 위해 태어난 문장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만주냐 호야, 호야~~~~~~”, “만주냐 호야, 호야~~~~~~”를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외쳐 보고 싶다.
「책, 마음 낭독」 대회는 낭독을 시작하기 전과 낭독 사이사이에 음악이 곁들여지고, 사회를 맡으신 김보경 선생님이 재미있게 사회를 잘 보셔서 「책, 마음 낭독」 행사는 성공적으로 잘 치러졌다. 이러한 낭독회가 이진아 기념도서관의 트레이트 마크가 되어 매년 낭독 행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고, 낭독회에 참가하신 관객들과 함께하는 낭독도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9월 12일 비가 와서 걱정을 했었는데 13일 당일에는 날씨가 개어 따스한 초가을 햇살을 받으며 풍성한 「책, 마음 낭독」 대회를 치렀다. 무대가 마련된 곳은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 내 사형장터 바로 옆이었다.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훼손당하고, 민족 스스로의 발전이 중단되는 고통의 시기에 역사적 현실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민족 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투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사형장 옆에서 우리 후손들은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음악을 연주하고, 「책, 마음 낭독」으로 생기 있게 살아 움직였다. 활력과 생기가 넘친 「책, 마음 낭독」 대회가 고통의 시기에 자신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던 독립투사들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씻김굿이 되었기를 바란다.
“독서토론회는 책을 읽고 와야 토론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읽고 와야 하는 부담감이 있지만 낭독은 책을 읽고 오지 않아도 되고, 책 1권을 돌려가면서 읽으면 되니까 책을 사야 하는 부담도 없어서 좋다.”고 김보경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낭독이라는 책을 소리 내서 읽는 단순한 행위는 낭독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구슬처럼 하나로 꿰어주고 「월든」 백번 읽기 같은 모임도 탄생시키는 굉장한 힘을 갖고 있다. 낭독의 힘은 이렇듯 엄청나다. 이렇듯 엄청난 힘을 갖는 낭독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인연의 초대장을 보내 온 이진아 기념도서관이야말로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도서관이다. 이진아 양 고맙습니다.
낭독은 문자를 소리로 환생시켜
뇌를 깨워
人文의 소리,
우주의 소리 듣게 한다.
혼자 하는 낭독은
인문의 소리, 우주의 소리 혼자 듣는 여행.
함께 하는 낭독은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지고 이어지는 소리연극.
함께 하는 낭독은
한 권의 책에 함께 승선한 크루즈 여행처럼
함께 여행지를 찾아가는 소리여행.
김보경 선생님 : "낭독은 인문학이다."의 저자이시며, 문학동네 봄봄이라는 낭독 전용 카페를 운영하고 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