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기 #1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마도 그 시작은 회사에서 마케팅 부서에 가면서부터였던 듯하다.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업무량, 내 능력을 보여줘서 더 좋은 품목을 담당하고 승진하고 싶다는 욕심의 조합은 갈수록 증폭되기만 했다. 그 증폭은 잠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베개에 대는 순간부터 불안의 공습은 시작되었다. 내일 발표는 잘할 수 있을까, 다음 주에 있는 그 일을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될 텐데, 다음 달엔 또 다른 일이 있구나, 승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언제쯤 매니저가 될 수 있으려나 등등. 처음엔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불안감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누적된 여파는 꽤나 컸다. 화룡점정은 잦은 출장과 술이었다. 20대 땐 술을 먹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 게 문제였지만 30대부터는 계속 깨서 잠을 깨는 게 문제였다.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잠은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제대로 자지 못하면 제대로 생활하기도 힘들다. 밤 시간의 충분하지 못한 수면량은 점점 낮 시간의 짜증과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집 밖에서는 웃으면서 안 피곤한 척, 파이팅 넘치는 척하다가 집에 오면 더 이상 그 ‘척’을 하기가 힘들었다.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는 오히려 그 ‘척’을 하지 않으니 있는 대로 짜증만 내고 화면 내게 되었다. 오죽하면 아이들도 내가 화를 내면 엄마한테 가서 “아빠 좀 자야 되는 거 아니야?”란 말을 하기도 했다. 가장 소중히, 귀하게 대해야 할 가족이 어느 순간부터 쉽게 짜증 내도 되는, 내 힘듦을 받아줘야만 되는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렸다.
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진부한 일이 된 건 그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잠을 제대로 못 자던 시절과 지금 충분히 자고 있는 시절을 비교해 보면 모든 부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제야 쓸데없는 불안감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깨끗하게 맑아지는 느낌이다. ‘잠은 관속에서 자면 된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문화 속에서 이 능력을 발휘하긴 사실 쉽지 않다. 엄청난 줏대가 있지 않는 한 휩쓸려서 어쩔 주 모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은 물론 이런 부분을 걱정할 상황에 놓여 있진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와 관련된 내 선택은 확고하다. 푹 자는 것은 능력이다. 난 이 능력을 계속 연마해야만 한다. 이 능력이 불안과 싸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근간이다.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푹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