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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빵장수 Sep 18. 2019

치과 치료도 대행이 될까요

 가끔 귀가 훅 질려버린다. 맘에 드는 음악이 없어서 찾다가도 그것도 지친다. 그럴 때면 이어폰을 빼고 길거리 소음을 듣는다. 버스에 있다면 기사님이 듣는 라디오를 귀동냥으로 듣는다. 저번에 라디오 DJ가 한 말이 기억난다. 요즘은 이별도 대행하는 시대라고. 이별도 퇴사도 직접 하기 껄끄럽고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대행 서비스가 있단다. 나는 무엇보다 이것 대행이 필요하다. 치과 대행. 언제 가도 아픈 치과 치료를 좀 대신해주면 참으로 좋겠다.


 10일 전에는 치과 진료를 받았다. 2년이나 미뤄둔 앞니 치료를 위해서. 앞니는 초등학교 때부터 3번의 부러진 역사를 지녔다. 2년 전 마지막 골절 이후 치아는 임시방편으로 메꿔놓았다. 크기도 워낙 커서 조약돌이니 자일리톨이라니 말도 많았다. 임시방편도 몇 주쯤만 붙여있으려고 했는데 2년이나 지나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미련하다는 말을 친구한테 들었다.


 그 임시 치아를 처음으로 들춰내고 꼼꼼히 진료를 받았다. 빼자마자 의사와 치위생사가 온데 모여 탄식과 놀라움을 뱉을 때 나는 앞니가 하나 빠진 채 벌거벗은 기분으로 누워있었다. 나는 임시 치아를 진짜 앞니처럼 썼다. 이미 임시라는 말을 한참이나 지나쳤다. 그래서 많이 오염되고 많이 낡아버렸다. 워낙 투박하고 큼지막하게 만들어놓았던 못난 모양새였다. 그게 맘에 걸렸는지 치과에서는 예쁘게 겉모양도 다듬고 소독했고, 강력한 접착제로 착 붙여줬다. 그게 시발점이었다. 안에는 임시 치아 덕에 잔뜩 곪은 염증이 있었다. 그동안 임시 치아는 빈틈이 많아서 염증이 조금씩 새어나갔다. 반면 새롭게 붙인 임시 치아는 염증이 나갈 구멍이 없어졌다. 염증은 나갈 자리가 없어져 얼굴 전체에 퍼졌고 부어올랐고 열이 났다. 사람이 심하게 부으면 전혀 다른 인물 같다는 것을 머리털 나고 처음 알았다. 가족은 내 얼굴을 보고 농담 반 진담 반 식음을 전폐했다며 나를 보필해줬다. 언니한테 생전 처음 이모티콘도 선물 받았다. 아르바이트는 도저히 나갈 수가 없어 일주일 내내 집에서 쉬었다. 누워있고 얼음팩 하고 약 먹고 TV 보고 진정한 놀자판 백수가 되었다. 아프기만 해도 바빴다. 윗입술이 2배는 부어서 이를 다 가려버릴 정도였지만 그와중에 웃긴 건 웃겼다. 밀렸던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보고, 취향에 맞는 재밌는 드라마도 찾았다.


 붓기가 하루가 다르게 커져서 치과에서 잇몸을 쨌다. 뭐가 그리 슬픈지 치료 내내 서럽게 울었다. 결제할 때도, 치과 선생님이 주의사항을 설명해줄 때도, 약국 가서 조제한 약을 처방받을 때도 엉엉 울어버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하필 하굣길 시간과 겹쳤다. 남고였는지 남자 고등학생이 수백명 무리로 쏟아졌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은 부은 채로 코 훌쩍이고 어깨 들썩이며 우는 나를 보고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숨죽이는 것을 느꼈다. 나 혼자 스스로를 추슬러야 했다. 어린아이였다면 아마 왜 울고 있냐고 누가 도와줬을 것이다. 나의 고통은 오로지 내 것이었다. 조금만 더 부으면 코가 막히거나, 목구멍이 부어오를까 내일이 무서웠다. 친구나 가족의 걱정은 밤이 찾아오면 끝나버렸다. 내일은 더 붓지 않기를 바라며 잠들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정확히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다행히 붓기는 서서히 가라앉았고, 오늘도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면서 웃을 수 있다. 밀렸던 자기소개서도 기계처럼 쓸 수 있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처음으로 행복하다고 느꼈다. 오랜만에 타의적으로나마 내 몸을 돌아보고,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스트레스받았는지도 고민했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지쳐버렸는지, 왜 그렇게 안 좋은 것만 먹고 늦게 잠들었는지. 포괄적이지만 때때로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고민했다. 억지로 붙잡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 받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돌아봤다.



 

 처음 앞니가 부러진 건 10살 때였다. 내 친구를 괴롭히고 도망가는 같은 반 남자아이를 겁나게 뒤쫓아갔다. 잡히면 진짜 멱살 잡을 기세로 뛰었다. 당시는 겨울이었고 바닥은 온통 물웅덩이가 얼어있었다. 다 잡을 찰나에 빙판에 미끄러져서 앞니 절반이 댕강 부러졌다. 어쩌면 진정한 시발점은 그때였다. 그때 안 부러졌으면 지금쯤 멀쩡했으려나 싶은데 아마 그래도 내 성격상 한번은 부러졌을 것이다. 2년이나 방치한 치아 덕분에 자아성찰 제대로 했는데, 이제 그만 성찰하고 싶다. 얼른 발치하고 임플란트 해야지!


보고 싶은 엽떡아-

마무리는 그립고 그리운 엽떡으로. 매운 음식, 술, 자극적이고 뜨거운 것 금지령 시행 중이다.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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