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로망 실천을 위해 너무 큰 비용을 치렀다

보글보글 찌개 끓이고 조물조물 나물 무쳐서 한상 차리기는 쉽지 않았다

by 김현유

나에게는 그런 로망이 있었다. 바로 앞치마 곱게 차려입고 보글보글 찌개 끓이고 조물조물 나물 무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온 남편과 한상 그득하게 차려놓고 ”여보 정말 대단하다, 너무 맛있어!” ”오늘 힘들었징? 마니 먹엉~” 이러면서 서로 먹여주고 그러다가 또 분위기가 바뀌고 그러는 신혼 밥상 로망.

138214507470_20131020.jpg *^^*


스무 살 이후 거실 겸 부엌 겸 침실인 원룸에서만 살아왔던 내게 부엌이 따로 딸린 신혼집은 그런 로망을 실현시켜 줄 이상적인 장소로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만든 요리를 먹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그런 로망.


그렇게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던 어느 날, 퇴근길에 장을 잔뜩 봐 왔다. 메뉴를 차돌박이 된장찌개와 시금치나물무침 그리고 제육볶음으로 정해두고 이런저런 재료를 구매하다 보니 결제 금액이 4만원에 육박했다.


잠깐. 4만원이면 국밥이 몇 그릇이야? 그럴 바에야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을 여섯 그릇 사먹고 말지. 한 사람의 국밥부장관으로서 그렇게 생각할 만한 금액이었지만, 뭐 둘이 사는 거고 남은 재료로 또 요리를 해 먹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해서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하게 칼질을 시작했다. 한 상이 거의 완성될 무렵 남편도 퇴근했다. ”와, 여보, 맛있는 냄새 나!” ”얼른 씻고 와! 밥 먹자.”


세상 달달한 신혼의 로망... 뭔가 신혼의 깨소금 냄새가 나지 않나요?

6bbde45b7e71406ab0b30918866b0a6f.png 짜란☆★

우리는 다정히 붙어앉아 내가 차려낸 한 상을 먹었다. 신혼답게 남편은 ”여보가 차려준 밥 먹으니까 하루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아~”라고 기뻐했고 나 역시 남편이 맛있게 먹어주니 행복했다. 음식은 맛있었고, 양이 적당했고, 분위기는 알콩달콩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날이 신혼에도 며칠 없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남은 재료로 또 요리를 해먹는 건 애매했다. 내일도 우리가 차돌박이 된장찌개와 시금치나물무침과 제육볶음을 먹을 건 아니었으니까 그 재료를 쓴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둘 중 하나가 외식을 하고 오는 날도 있고, 그냥 사실은 밖에서 둘이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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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냉장고에서는 다 합쳐 3만2천원어치쯤 될 양파, 다진마늘, 시금치, 애호박, 당근, 파 같은 것들이 서서히 죽어갔고, 우리는 코를 틀어막고 그것들을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넣어야 했다.


직접 식탁을 차릴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됐다. 언젠가는 부대찌개를 한솥을 끓였다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곤란을 겪었고 두부찌개를 해 먹으려고 두부를 사 왔다가 갑자기 외식을 하게 돼서 냉장고에 조용히 집어넣은 두부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백질의 (끔찍한) 변성 과정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경험들은 알콩달콩한 신혼부부 같은 그런 풍경을 한번 연출해보고 싶어서 쓴 비용치고는 꽤 가혹했다.

img_20160831_222400.jpg 으어엉어어어ㅓㅇ어엉ㅇ ㅠㅠㅠㅠ음식물 쓰레기 짱시룸 ㅠㅠㅠ

이상했다. 혼자 살 때는 집에서 밥을 해 먹어도 이렇게 돈을 많이 안 썼던 것 같은데, 사람 하나 늘었다고 이게 왜 이렇게 됐을까... 를 생각해보다가 답을 찾았다. 혼자 살 때는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이런 걸 샀을 뿐.

5db2a55f2100006b2ead3db2.jpeg ???? (*Bi비고 광고 아님)


maxresdefault.jpg ㄴㅇ0ㅇㄱ

나는 빠가사리였다. 아니, 이 시국에 빠가라는 말을 쓰면 좀 그러니까 빠가사리가 아니라 빡X가리였다. 결혼 전에 그렇게 뺀질나게 매일같이 먹었던 간편식품을 까맣게 잊다니... 내가 직접 만든 음식에만 내 사랑이 깃든다고 생각한 탓이다.


사실 직접 밥 짓고 국 끓이고 나물 무쳐서 차려야만 사랑인 건 아니었다. 봉지 째로 데우지 않고 예쁜 접시에 따로 옮겨 담아 데우는 것만 해도 충분히 엄청난 사랑과 희생이었던 것이다.


간편식품으로 한 끼를 꾸리면 둘이 합쳐서 2만원도 안 들고 음식물 쓰레기도 안 생겼다. 뭔가 괜히 내가 직접 만든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난 음식을 예쁜 그릇에 옮겨 담고 데워서 차려놓기만 하면 남편이 너무 맛있다고, 고생했다며 설거지랑 청소를 자기가 하니까 손해볼 일이 없는 장사(?)이기도 했다.


물론 남편은 나보다 퇴근이 늦으므로 내가 진짜 다 요리한 줄 알겠지? 정말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아, 당연히 남편한테 다른 집안일 다 시키려고 요리가 신혼 로망임을 강조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어제 허프포스트 회식에서 제법 취해버린 와이프를 데리러 온 늦은 시간 달려오신 남편님께 무궁한 사랑과 영광을 드립니다.


* 이 글은 허프포스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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