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처럼, MBTI 류의 테스트도 한참 유행이 돌다 사그라들곤 한다
장안의 화제는 MBTI다. 패션과 마찬가지로 MBTI 같은 각종 성격·심리 테스트도 일정 간격을 두고 잠시 유행했다가 시들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은데, 이번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맞물려 마침 심심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더 길게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혈액형이나 별자리 성격점 따위와 마찬가지로 전혀 근거가 없는 성격테스트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일단 4종류밖에 안 되는 혈액형과 달리 성격유형 자체가 다채롭다. 게다가 내가 유형을 선택할 수 없는, 즉 타고나는 혈액형이나 별자리와 달리 MBTI는 내가 직접 문항을 읽고 답해서 도출한 결과값이다. 괜히 내 손으로 직접 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신빙성이 느껴진달까.
그럼 나와 결혼한 남자의 MBTI는 뭘까? 너무나 궁금했지만 난 MBTI 유행이 몇 차례 지나는 동안에도 알 수 없었다. 신랑의 경우 요즘 유행하는 ‘꼰대 성향 테스트‘, ‘나와 닮은 대통령 테스트’ 같은 것 조차도 ”너무 문항이 많고 길어”라며 답변을 거부하는 까다로운 남자였던 것이다. 강형욱 아저씨가 개를 훈련시키는 영상을 열심히 보고 있던 신랑에게 슬쩍 다가갔다.
"강아지 나오는 유튜브는 그냥 쭉 보면서 왜 이건 못 해? 10분도 안 들어.”
″너무 길어. 너무 글자가 많아. 나 그런 거 못 해.”
″맨날 신문 기사 그렇게 보면서 글자가 많다는 게 무슨 소리야? 수능은 어떻게 봤냐?”
″아니, 이건 너무 생각하고 풀어야 해. 나 좀만 쉴게 여보.”
세상에, 날 사랑한다며, 평생을 함께하자며, 그렇게 결혼까지 해놓고 고작 MBTI 문항조차 안 풀어주다니!!
흥칫뿡이다. 그래 내가 MBTI 얘기 할 사람이 너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강형욱 유튜브에 푹 빠진 신랑을 방 안에 밀어넣고 문 꽝 닫고 나온 뒤 거실 소파에 앉아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MBTI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MBTI 짤과 썰은 무궁무진하다. ‘MBTI 유형별 조선시대 직업’, ‘MBTI 유형별 신데렐라가 됐을 때’, ‘MBTI 유형별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을 때’ ....
그렇게 쭉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신랑이 어느 유형인지 감이 왔다. 역시, 그거였어! 외향적(E)이고, 과거 경험을 중시하고(S), 감정보다 이성에 집중하는 것(T)은 전부 같았다. 다만 나는 계획을 중시하는 J형이고 남편은 즉흥적인 P형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나는 나무위키에 그 유형을 검색해서역시 지식의 보고 손에 들고 위풍당당하게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엣헴. 내가 당신 유형을 찾았어. 들어봐봐.”
″됐어. 그래봤자 혈액형 같은 거잖아.”
″자 봐봐. 한 가지에 집중하면 지겹지? 그래서 유튜브 켜 놓고 TV도 켜 놓고 그 상태로 산만하게 계속 왔다갔다 하지?”
″어...”
″그리고 어, 일을 계속 미뤘다가 마지막에 폭발적으로 하지? 지금도 대학원 과제 안 하고?”
″어. 맞아. 맞아.”
″자신감이 넘치고, 깊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고."
″어어, 우와. 진짜 신기하네? 뭐야?”
신랑은 한 가지 말해줄 때마다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역시, 결혼하고 나니 테스트조차 안 거치고 성격유형을 알아챌 정도의 사이가 된 것이다. 그게 찐 부부의 세계.
그러고 보니 J형인 내가 P형인 신랑에게 분노하는 포인트는 항상 동일했다. 연애 때부터 신랑은 약속 시간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대강대강, 적당할 때 카톡이나 전화를 해서 유동적으로 만나곤 했는데, 나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었다. 신랑은 이해를 못 했다.
″멀리 사는 것도 아니고 대충 정해놓고 유동적으로 하면 되지, 왜 그렇게 시간을 확실히 해야 하는 거야?”
사실 맞는 말이다. 내가 대단한 준비를 마치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시간을 정해놓지 않으면 불안하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별명이 칸트*였던 나라서, 같이 지하철을 탈 때에도 조금 더 환승이 빠른 칸 수를 계산해서 타는 나라서, 가만히 누워서 유튜브만 보고 있으면 불안하고 피곤한 나라서... 생각해보니 함께 여행을 갈 때도 나는 모든 걸 계획하고 예약했고 확인했고, 신랑은 여행자보험조차 깜빡해 비행기 이륙 직전에 급하게 어플로 가입하기도 했다.
그 모든 기억이 몽글몽글 떠올랐고, 그래, 다른 건 다 잘 맞는데 J와 P로 갈리는 그 부분만이 엄청 안 맞았다,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 걸 보면 또 MBTI만큼 신뢰성 있는(?) 성격검사도 없는 것 같다. 서로의 성격에서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대강이나마 미리 알면 싸울 일도 줄어들지 않으려나? 어쨌든 MBTI가 유행할 동안만큼은, 개인적인 신뢰도는 111%다.
*칸트는 매일 시간을 철저히 지켰던 철학자로, 얼마나 시간을 잘 지켰는지 이웃들은 칸트를 보고 시간을 맞췄다고 해요. 중학교 '도덕' 책에 나온답니다^^
※ 허프포스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