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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Nov 17. 2020

패닉바잉과 절박한 신혼

2030 패닉바잉, 그게 바로 제 얘깁니다.

나도 그렇고 신랑도 그렇고, 우리 부부는 재테크랑은 완전 거리가 먼 인간들이다. 술 마실 때는 그렇게 호기롭게 앉은자리에서 몇십만원 훅훅 긁어버리는 놈들이라 큰돈 올리는 판에 두려움이라곤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작 투자 앞에서는 “하이 리턴은 하이 리스크라는 뜻이자나”하며 일심동체 되어 손을 줄줄 떨고 눈물을 벌벌 흘리는 쫄보들인 것이다. 큰 돈 만질 일은 못할 성정이었지만, 몇 년 후엔 자그마한 아파트를 구입해 평생 알콩달콩 살아갈 거라는 기대감은 있었다. 우리는 건실한 착실한 사회생활을 통해 작은 돈이나마 모으는 중이었고, 큰 금액의 대출이 가능한 신용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년 말부터 시작됐다.


서울 집값이 미쳐버린 그때부터...


결혼한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현재 집을 팔고 대출을 받아 아파트에 이사를 가자는 이야기는 계속 나왔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다. 그때 왜 한껏 여유부리며 미뤘던 걸까...?

당시 서울 중심 모 동네 아파트 가격인 4.5억 마련이 어렵다고, 더 돈 벌어서 빚 조금만 내고 좋은 집을 사자고 미뤘던 우리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 아파트는 지금 9억이 넘고, 우리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최대'가 40%로 떨어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난해 말부터 우리는 서울에 집을 사기 위해서는 일단 이 오피스텔 신혼집을 떠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실 그 오피스텔을 팔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팔기에는 애매한 사이즈지만 세를 주기는 너무 좋은 조건이었던 탓이다. 돈을 더 모아서 세를 주자는 계획이었던 것이었지만, 언제 인생이 그렇게 계획대로 흘러갔던 때가 있던가요? 월급은 그대론데 자고 일어나면 다른 아파트들은 가격이 2배씩 뛰는 이 상황에서 어쩔 도리가 있나.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정든 신혼집을 인근 부동산 몇 곳에나 내놨다.


놀랄 만큼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둘이 맨날 술판 벌여놓고 살던 게 몇 달째였던 어느 날, 드디어 거래가 성사됐다. 대학생인 매수인은 우리가 전날 벌인 술판을 벌인 흔적을 하나도 치워놓지 않고 tv에다가는 움직이는 토끼귀 모자를 씌워둔 날 집을 보러 방문했음에도 흔쾌히 우리 신혼집을 매입했다.


대학생에게 집을 팔며 약간의 현타는 왔지만 어쨌든 팔았다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집값은 그 이상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그 때 영끌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 우리는 계획을 우회했다.


전세 살면서 분양을 노리자!


전세로 구한 아파트는 40년 전에 지어졌지만 제법 역세권이었던데다가 교통과 주변 시설도 좋고 깔끔한 곳이었다. 우리보다 앞서 이 집에 살았던 젊은 부부들은 전부 계약을 연장해 4년간 거주하며 애를 낳고 분양을 받아서 나갔다고도 했다. 아무래도 기운이 좋은 곳인 듯했기에 우리는 희망에 부풀었다.


좋아, 여기서 몇 년 버티다가 분양 받아서 새 아파트에서 행복한 새출발을 하자! 우린 젊으니까! 홧띵!!!>_<


하지만 머한민국 2030의 삶은 한 번도 그렇게 쉬웠던 적이 없지.

오...



그렇다.


돈을 애매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번다는 거 오케이. 우리는 아직 애도 없고 부모님 모시는 것도 아니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밀린다는 것도 안다. 그니까 청약 말고, 주택담보대출을 이전만큼만 받게 해 주면 되잖아요. 2년에 한 번씩 이사당할 염려 없이 애매한 고소득으로 평생 직장 다니면서 착실히 빚진것을 갚을 수만 있으면 애기를 싫어하는 나도 저출산 시대를 맞이해 내새끼들 순풍순풍 낳고 잘살 계획이었다.


그렇게 부동산 뉴스만 보면 감정이 격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특히 세입자를 위한다는 임대차3법이 통과된 이후 세입자인 우리는 기쁘기는 커녕 근심이 더욱 커졌다. 애초에 현재 집주인은 재건축을 노린 다주택자라 전세계약이 끝날 때마다 몇 번을 갱신하더라도 ㅇㅋ, 재건축 이전까지는 전세값을 올리지 않거나 아주 조금만 올릴 확률이 컸었다. 혹시나 우리가 분양에 실패해 집살 돈 모을 때까지 살자고 결심해도 임차인 임대인 사이 윈윈이 가능했던 곳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된 후 우리는 4년 뒤 꼼짝없이 쫓겨나고, 현재의 두 배는 될 전세가격과 마주하거나 또는 월급의 절반을 월세에 쏟아부으며 살아가게 될 터였다.


그게 트리거였다.


우리는 진짜 미친듯이 눈에 불을 켜고 사대문 안에서 우리가 있는대로 영끌해서 살 수 있는 집을 찾았다. 물론 신축에 교통편 좋고 역세권에 인근에 상업시설 충분하다는 조건을 만족하는 집은 영끌이 수준이 아니라 우리뿐만 아니라 부모님 영혼까지 팔아도 못 샀다. 우리 영혼만 끌어모은 결과 찾은 곳은 사대문 안이지만 신축도 아니고 교통 애매하고 역 멀고 상업시설 없이 산골짝에 박힌 작은 아파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끌만 하면 쫓겨날 일 없이 평생 살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될 수 있었기에 우리는 매물이 올라오자마자


도장을 꽝 꽝 꽝 찍었다.


우리가 산 그 집은, 서울 촌동네 처박힌 그 아파트가 건립된 이후 가장 비싼 값에 매매된 집이 됐다.


앞으로의 삶은 지금같이 여유로운 맞벌이 딩크부부의 모습으로 전개되진 못할 것이다. 이제 정말 사실상 하우스푸어니까. 하지만 2년에 한 번씩 4년에 한 번씩 전세값 오를 걱정을 하며 눈물을 머금고 옮겨 다니다 평생 내집 없이 살아가는 것보단 나을 터였다.


이전에도 부동산 정책으로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득을 봤겠지만, 현 정부처럼 극심하게 서울 집값이 마냥 오르게 만든 능력자들은 없었던 것 같다. 투기를 잡기는 커녕 열심히 살아가는 머한민국의 신혼부부들을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가 뭔가요?


집이 생겨 기쁘면서도 마음 한 켠은 무거웠다. 우리보다 더욱 절박했을 다른 신혼부부들을 직접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우리가 떠날 전세집을 부동산에 내놓은 직후, 24시간도 안 돼 보러 온 신혼부부는 6쌍이었다. 심지어 전세값이 5천이나 올랐는데도 그랬다.


어떤 부부는 한바퀴 둘러보자마자 3천 더 드릴 테니 제발 자기네들한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이분들 집이 아니고 주인이 따로 있으니 연락해보자는 부동산의 말에 그들은 터덜터덜 복도를 나섰다.


운이 좋아 망정이었지, 그 절박한 모습이 우리의 얘기가 될 수도 있었다. 대체 왜 이제 시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 집도 아닌 전세집 구하는데 그렇게 간절해야 하는 걸까.


얼마 전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전국 최저치인 0.6명을 찍었다. 두 집 중 한 집은 안 낳는 셈이다. 집도 절도 없이 불안한 상황인데 앞으로도 집도 절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불행까지 겹치면 누가 애를 낳고 싶을까. 신혼부부를 궁지에 몰아 인구를 소멸시켜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큰그림이라면 ㅇㅈ합니다.


ps. 이 글은 패닉바잉을 한 직후였던 8월 말 썼다. 지금은 또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 옆동네 10동 규모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현재 0건이며, 우리가 산 집은 세 달 사이 1억이 올랐다. 집값이 올라서 좋냐고? 당장 팔고 나갈 거 아니기 때문에 오르든 말든 이젠 상관 없는 일이다. 실거주 상태에서 가격 오르는 게 무슨 상관... 세금이나 때려맞겠지. 세 달 사이 신용대출이 막히고, 전세 씨는 마르고, 그렇게 좋지도 않은 아파트 가격이 1억 올랐다. 부동산 정책자들은 지금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정말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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