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자라 Dec 10. 2023

용변 볼 권리

장애인 화장실

"화장실에 두 발로 혼자 걸어갈 수 있는 것도 복이다." 혹시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꽤 자주 떠올렸던 문장이에요. 장애인인 동생이 기저귀로 용변을 보니까요. '동생이 용변만 혼자 처리할 수 있다면 엄마가 다른 일 하다가 기저귀 갈아주러 올 일도 없을 테고, 거실에 온갖 냄새를 풍길 일도 없을 텐데. 동생이 기저귀를 차느라 여름에 땀띠가 날 일도, 오랫동안 찜찜하게 오줌을 깔고 누워 있을 필요도 없을 텐데.' 매일 몇 번씩 기저귀를 챙겨주다 보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입니다.


내가 원할 때 화장실을 가는 것, 남에게 보여줄 필요 없이 스스로 정리하고 나오는 것. 대부분은 매일 별생각 없이 하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꿈일 수도 있거든요. 물론 이런 불편이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닌데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용변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분도 계시고, 갑자기 어떤 병에 의해 용변을 보는 방법이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오늘 할 이야기는 장애인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화장실에 갈 수 있는 '능력'보다는 화장실 접근성, 이용 환경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구르(@guru_rolling) 님의 릴스를 봤어요. 


구르(@guru_rolling) 님 인스타 캡처


신용산역 여자 장애인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 안에 위치해서 곤란했다는 이야기였어요. 때문에 맨날 전화하는 척을 하면서 구조를 일부러 설명하신다고 해요. 영상 말미에는 다른 '망한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면 댓글에 있는 구글폼으로 위치를 알려달라고 덧붙이셨죠. 댓글을 쭉 읽어봤는데, "장애인은 수치심도 민망함도 못 느끼는 줄 아나. 동선 디자인 하나에 짧은 생각이 드러나네요."라는 댓글이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왜 만들 때 아무도 이걸 생각하지 않았을까(못했을까)', '화장실 갈 때 이런 불편함을 왜 겪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댓글 중엔 "몸이 불편하신 아빠는 죽어도 여자화장실 안 들어가겠다 하시는데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아빠를 모시고 남자화장실을 갈 수도 없고 매번 실랑이가 벌어져요."라며 장애인 화장실이 일반 화장실 내에 있는 경우, 보호자의 성별이 다를 경우 생기는 곤란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었어요. 저는 이 이야기에 굉장히 공감이 되더라고요. 


저도 동생과 함께했던 가족여행 중 화장실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있었어요. 동생이 소변을 봤을 경우에는 웬만하면 숙소에 도착해서 기저귀를 갈지만, 대변이라 최대한 빨리 갈아줘야 해서 휴게소로 향했죠. 그리고 동생을 눕힐 만한 공간을 찾기 시작했어요. 동생이 어렸을 때는 차 안에서 눕혀 놓고 갈거나, 휴게소 바깥에 매트를 깔고 가족들이 가리며 빨리 처리하기도 했는데요. 크니까 눕힐 만한 베드가 확보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보는 눈도 많고요.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도 어려웠고, 겨우 찾아서 들어가긴 했어도 저와 엄마는 여성, 동생은 남성이라 우리가 여기 머물러도 괜찮은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다른 분이 오시기 전에 끝내야 할 듯해서 얼른 동생을 간이침대 같은 곳에 눕히고, 갈고 나왔어요. 그때 간이침대 같은 거라도 없었다면.. 저희는 그냥 동생을 다시 휠체어에서 차로 옮긴 후 몇 시간을 더 타고 숙소에 도착해 다시 휠체어에 동생을 태우고, 숙소에 올라가 다시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동생을 옮기고 나서야 기저귀를 갈 수 있었겠죠. 그 시간 동안 동생은 찝찝한 채로 그냥 견뎌야 했을 거고요.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갈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늘 걱정이 많답니다. 


동생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거나 특수학교, 병원에서 보냈기에 장애인 화장실 이용이 편한 공간에서 용변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출근하시거나 외출이 잦은 장애인 분들에게 화장실이 불편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부끄럽게도 이제야 말이죠..!) 화장실은 기본적으로 잘 마련이 되어 있어야죠. 이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여러분은 장애인 화장실 이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셨나요? 댓글을 보면 병원임에도 장애인 화장실 이용이 불편한 곳, 휠체어가 들어가면 문이 안 닫히는 곳, 장애인 화장실인데 경사로가 없어 접근이 불가한 곳도 있다고 하네요. 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게 죄송스러웠습니다. 물론 비장애인은 장애인 화장실에 갈 일이 잘 없기 때문에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인데요. 장애인 화장실 실태조사나 신고 가능한 플랫폼을 통해 의견을 보낼 수 있는 창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알게 된다면 여기 추가해 놓겠습니다!)


댓글 중에 건축업계 종사자인데 장애인 관련 시설을 더 유의하여 설계하겠다고 다짐하는 분도 계셨는데요. 확실히 장애인의 삶을 말하는 유튜버분들의 영향력이 있는 것 같아 기뻤답니다. 그래서 저도 누군가는 보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쓰고 있는 거고요. 정말 장애인의 삶을 잘 몰라서 벌어지는 불편한 상황이 많은 것 같아서,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되도록 해보고 싶어요!


어디든 장애인들의 용변 볼 권리가 보장되길, 장애인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개선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차근차근 시작하면 된다고 봐요. 이미 설치된 장애인 화장실이 불편함 없이 운영되도록, 이용자가 많은 곳부터 새로 만들어지도록.. 나아가면 되죠.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도 계속 함께해 주실 거죠? :)

작가의 이전글 아픈 아이는 태몽도 남다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