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biya Oct 22. 2023

[4] 누군가의 차가운, 겨울 (3)

(4) 상수의 겨울 (현재) -2

상수가 의미없는 눈치우기를 멈추고, 가게에 들어간 건 홍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야, 상수야! 송상수! 너 이제 대박났다. ‘혀가벌떡’ 프로그램에서 네 식당을 취재하고싶대! 네가 연락 안받아서 우리 꽃가게로 전화했댄다. 취재력 대박이다. 거기.. 진짜 찐으로 찾아다니는구나! 역시 나의 원픽 예능!”

정신을 차리고, 가게에 들어가 홍대가 전해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 저 상수 식당 사장, 송상수입니다. 전화를 주셔서요.”

[아,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는 ‘혀가벌떡’ 작가, 이미래 작가입니다.]

상수는 잠시 눈이 땅에 내려왔다가 녹는 시간처럼 살짝 기대했었다. 혹시 그녀가 아닐까하고.

근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건 낯선 이의 목소리였다.

“네, 무슨 일이실까요?”

[요즘에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1인 식당에 대해 취재하고 있거든요~ 혹시 가게 간단 스케치와 사장님 인터뷰, 사장님이 요리하시는 모습 인서트 찍고 싶은데요! 사장님이 직접 요리하시나요?]

“네 맞습니다.”

낯선 이와 전화로 약속을 잡았다. 요즘 유튜브에 ott에 널린 게 콘텐츠인데 연희가 ‘혀가벌떡’ 프로그램에 있을거라 생각한 자신이 바보같은 상수는 연희를 떨쳐버리고, 홍대에게 달려가 소식을 알려준다. 홍대는 “우리 엄마도 유명하고, 나랑 제일 친한 친구도 유명해지는데 그거 왜나만 못해” 라며 큰 덩치로 삐진 티를 팍팍 냈지만 이내 “축하한다 친구야”라며 상수를 꼭 껴안는 홍대였다.      

“켁켁, 홍대야 나 인터뷰도 한다는데 메이크업 받아야 되나?”

“당연하지! 요즘 카메라가 얼마나 좋은데, 너 모공까지 꽉 채워서 메이크업 받고 와 그날!”

“무슨 말을 하지? 아니 우리 식당은 어떻게 안거야?”

“‘혀가벌떡’제작진 정보력 대단하다 정말. 축하해. 자랑스럽다 내 친구! 촬영은 언제야?”

“다음주 월요일! 요리하는 거 인서트?도 찍는대”

“인서트? 그거 너 요리하는 거 멋있게 찍어주는거야~ 내가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에 네가 나온다니, 감격이다. 나보다 네가 더 빨리 데뷔하는 거 아니냐?”

“얼굴이 다 나오는 건 … 내가 빠를 것 같다. 친구야”


이미래 작가와 약속한 월요일 오후 3시 30분. 이미래 작가는 인터뷰와 요리 인서트 촬영은 브레이크 타임 때 하고, 가게 운영할 때 간단히 스케치 촬영을 하겠다고 했다. 오늘은 오픈을 늦게 하고, 홍대가 알려준 샵에 가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자연스럽고, 티 안나게 해달라고 했지만 워낙 자연의 모습으로 하고 다니는 터라 어색하기만한 상수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고, 카메라 장비를 들고 온 사람들이 골목에 몰리자 연예인이 오는 촬영을 하는 줄 알고, 사람들이 몰렸다. 미안해요. 나예요. 라며 머쓱하게 서있는 상수다. 피디와 카메라 감독들이 가게로 들어왔고, 그들과 인사 하랴 손님 받으랴 상수는 정신이 없다. 피디가 “평상시대로 하시면 되세요”라는 말을 계속 했지만 홍대 얼굴만한 카메라 여러 대 눈 앞에 있는데 어떻게 평상시처럼 하라고 하는지, 본인이 카메라 뒤에 있어서 쉽게 이야기하는 거 아닌지 상수는 이 모든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대신 땀이 삐질삐질 흘렸다. 어찌 저찌해서 점심 장사를 마쳤고, 숨을 돌리고 있을 때 피디의 전화가 울린다. “아, 작가님 그 골목 말고 꽃가게 있는 골목이요. 네네.” 이미래 작가가 오면 인터뷰 시작이라 상수의 심장이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울렸다.      

가게에 두 사람이 들어오고, 상수가 문이 열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중 이미래 작가가 누구인지 상수는 확실히 알았다. 그 이유는 한명이 상수의 마음 속에서 오랫동안 희미하게 존재했던 그녀, 연희였기 때문이다. 상수의 서랍장은 냉동창고였는지10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그대로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늘 인터뷰 할 <혀가벌떡> 이연희 작가입니다.”       


이연희.

10년 전, 유난히 봄을 설레게 만들었고,

작년보다 더 뜨거운 여름을 보내게 했고,

기다렸던 시간보다 더 짧게 왔다가는

가을에 짧고 굵게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했던.

그리고 그해 유독 추운 겨울을 보내게 한

그녀가 상수 앞에 서있다.


상수는 놀랐고,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마치 상수식당 사장이 송상수인 걸 알고온 것 처럼.


상수는 그 해, 그녀를 미워하고, 원망하다가

그녀가 간 계절, 겨울까지 미워하게 되었다.

이듬해 여름엔 항상 그렇듯 더 더워져서 사람들이 겨울이 빨리 왔으면 했고, 그 마음들에 겨울에 샘이 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그녀에 대한 미련이 흐릿해져 갔을 때엔  상수도 여름엔 겨울이, 겨울인 여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수의 이런 마음 아니어도 계절은 제때에 찾아왔고, 그녀도 제때에 상수 앞에 서있다.

상수의 기억 속에서 흐릿한 그녀가 뚜렷해졌을때.


그들의 사랑의 제철이 지나고도 지난 지금.

제철이었던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끝.

이전 11화 [4] 누군가의 차가운, 겨울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