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참 이상한 분이세요. 반려견 놀이터에 갈 때마다 제 간식은 절대 안 챙기시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주머니에서 치즈 간식, 소고기 간식 냄새가 솔솔 풍기는 거 아니겠어요?
‘와, 아빠가 드디어 놀이터에서도 간식을 주시는구나! 놀다가 힘들고 배고플 때 주시려나 보다.’
저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신나게 뛰었어요. 친구들이랑 우다다 달리기도 하고, 침 묻은 공을 물고 오기도 하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그때쯤이었어요.
제가 친구들이랑 정신없이 놀고 있을 때, 아빠는 저 멀리서 쪼그려 앉아 다른 친구들이랑 은밀하게 대화하는 것 같더라고요?
‘뭐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상하게도 놀이터에서 실컷 놀고 집에 올 때까지 아빠가 챙겨오신 간식을 한 번도 못 먹은 거 있죠?
‘어? 아빠가 깜빡하셨나?’
아빠 다리를 몇 차례 긁어봐도 간식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빠가 놀이터에서 웅크리고 다른 친구들이랑 속닥거리는 그 순간마다! 항상 밤비 언니랑 테일러 언니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 뭐예요!
밤비 언니와 테일러 언니는 어떤 언니들이냐고요?
밤비 언니는 하얗고 아이보리색이 살짝 섞인, 체구가 좀 작은 진돗개 언니예요. 햇빛 때문에 눈부실 때 눈을 살짝 찡그리는 모습이 엄청 매력적이죠. 아빠는 제 앞에서 대놓고
"밤비가 제일 예뻐!"
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어요.
‘흥!’
테일러 언니는 밤비 언니랑 같이 사는 친구인데, 밤비 언니보다도 더 작고 하얀 털에 검은 점박이 강아지예요. 저보다 훨씬 더 소심하고 조심스러워서, 사람한테도, 다른 친구들한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언니였어요. 덩치는 저보다 작지만, 제가 언니 얼굴이랑 엉덩이 냄새 맡으려다가 몇 번 혼나기도 했죠. 무서운 언니예요.
저희 아빠는 이런 밤비 언니랑 테일러 언니를 어떻게든 한 번 만져보려고 엄청나게 노력하셨어요. 하지만 워낙 조심스러운 언니들이라 아빠한테 쉽게 자기 몸을 허락해 주지 않으셨죠.
그래서! 저희 아빠가 꺼내든 비장의 무기가 뭔 줄 아세요?
바로… 제 간식이었어요! 매일 제 간식을 주머니에 챙겨와서는 제가 친구들이랑 노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저 멀리서 조용히 앉아 밤비 언니랑 테일러 언니한테 천천히 손을 내미셨죠. 그리고 조심조심 다가온 밤비 언니는 아빠한테서 간식 하나 얻어먹고는 쏜살같이 도망가고, 또 하나 얻어먹고는 다시 멀리 떨어지고… 이걸 계속 반복하는 거 있죠!
세상에! 아빠는 놀이터에서 밤비 언니, 테일러 언니를 만나면 항상 그러고 계셨던 거예요. 제 간식을 가지고!
‘흥! 아빠 미워!’
하지만 아빠의 그런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밤비 언니랑 테일러 언니는 간식만 낼름 먹을 뿐, 아빠의 손이 자기 몸에 닿는 건 절대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죠!
아빠가 밤비 언니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긁어주는 거 아니겠어요? 밤비 언니는 눈을 살짝 감은 듯 뜬 듯한 표정으로 아빠의 손길을 온전히 느끼고 있더라고요! 아빠의 끈질긴 노력 끝에 드디어 밤비 언니가 마음을 연 거였어요!
그다음부터는 밤비 언니가 아빠를 만날 때마다 먼저 가까이 다가와서 눈인사를 하고, 아빠 손에 간식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더라구요? 물론 간식이 없을 땐 다시 멀어지긴 했지만, 아빠의 손길이 닿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어요. 밤비 언니를 쓰다듬고 계시면, 소심한 테일러 언니도 슬쩍 다가와서 엉덩이를 들이밀더라고요! 그럼 아빠는 조심스럽게 살짝 만져보시고. 물론 테일러 언니는 금방 저 멀리 줄행랑을 쳤지만 말이에요.
그렇게 1년이 넘는 노력 끝에 저희 아빠에게 마음을 연 밤비 언니!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돼요!
어느 날 아빠가 핸드폰에 쌓여있던 제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어? 몰리가 반려견 놀이터에 거의 처음 갔을 때인데, 이때 밤비가 몰리랑 한참을 놀아줬었구나? 아이고… 그걸 몰랐었네!”
하고 혼잣말을 하시는 거 있죠.
저요? 어렸을 때 소형견 놀이터에서 밤비 언니랑 신나게 뛰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아빠는 그걸 기억도 못 하고 계셨나 봐요. 아빠가 밤비 언니한테 엄청 잘해주시는 이유가 원래 저랑 밤비 언니가 먼저 친했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말이죠!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더라고요!
요즘도 가끔 공원에서 밤비 언니랑 테일러 언니가 산책길에 나와 아빠를 마주치곤 해요. 그럴 때마다 놀이터에서보다 더 반갑게 저에게도, 저희 아빠에게도 인사해 주고 있답니다. 이제 제 간식을 뺏기지 않아도 밤비 언니랑 테일러 언니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