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빠와 산책을 하다가, 그리운 얼굴을 마주쳤어요.
보리와 보리 엄마.
보리는 언제나처럼 아빠에게 먼저 다가와 꼬리를 살랑이며 반가움을 표현했어요.
아빠는 익숙한 손길로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죠.
그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가슴 깊숙한 곳이 살짝 찡해졌어요.
보리는 키가 크고, 날렵한 갈색 진돗개예요. 동그랗고 깊은 눈동자에는 늘 어딘가 씩씩한 기운이 반짝였죠.
처음 보리를 만났을 땐, 내가 오히려 조금 더 컸어요.
그땐 보리도 귀가 툭툭 움직이는 어린아이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보다 훌쩍 커져 있었어요.
우린 함께 뛰고, 구르고, 뒹굴며 몸으로 마음을 나누던 사이였죠.
하지만 보리는 시간이 갈수록 힘도, 열정도 넘치는 친구가 되었어요.
그게… 나에게는 조금 벅차기 시작했어요.
그럴 때면 아빠가 늘 나를 먼저 보호해 주셨어요. 보리 엄마도 보리를 다정한 목소리로 불러내셨죠.
“보리, 안 돼~ 안 돼~”
보리는 놀이터에선 누구보다 생기가 넘쳤어요.
특히 위스키랑 함께일 땐 세상이 두 아이의 것인 양 놀이터 전체를 흔들며 뛰어다녔죠.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비록 함께 어울리지 못해도, 그런 보리를 보는 건 늘 설렜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보리를 놀이터에서 보지 못하게 됐어요.
가끔 놀이 중에 친구들과 실랑이가 생기기도 하고, 낯선 강아지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어요.
보리의 마음엔 어쩌면
'여기는 내 공간이야'
라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났는지도 모르겠어요.
보리 엄마 아빠는 많이 고민하셨어요. 훈련소에도 다녀오고, 산책 시간도 더 늘리셨다고 들었어요.
그 노력들이 얼마나 깊고 따뜻했는지 보리를 바라보는 그분들의 눈빛에서 알 수 있었어요.
얼마 전,
놀이터에서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늦은 시간.
비어 있던 소형견 놀이터에 보리와 보리 엄마가 조심스레 들어왔어요.
나와 아빠는 대형견 놀이터에 있었지만, 보리가 아빠를 발견하자 꼬리를 흔들며 소리 없이 달려왔어요.
아빠는 나에게 말없이 미소를 지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잠깐이지만, 아빠는 보리와 함께 놀이터를 뛰었어요. 그 모습은 마치, 잊고 있던 계절이 문득 찾아온 것처럼 짧고도 눈부셨죠.
지금은 예전처럼 함께 뛰고 구르지는 못하지만, 가끔 공원에서, 집 근처 산책길에서 보리를 만나면 우리 사이에만 흐르는 조용한 인사가 오가요.
'잘 지냈니?'
'나는 늘 널 기억하고 있어.'
보리가 다시 놀이터에 올 수 있을지, 그건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는 알고 있어요.
보리와 보리 엄마, 아빠는 매일같이 그 하루를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는걸.
그날이 오면, 나는 가장 먼저 꼬리를 흔들며 보리에게 달려갈 거예요.
“우리, 다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