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오늘도
초보 엄마 시절, 아이가 잠든 저녁 무렵이면 가수 옥상달빛의「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를 자주 흥얼거렸다. 아이가 깰까봐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맞이하는 온전한 내 자유의 시작. 잠정적인 육아 퇴근과 동시에 집안일의 휴식을 알리는 ‘하루 마감송’이었다.
열심히 해도 티 안 나고, 안 하면 바로 티 나는 일이 집안일이라고들 말한다. 육아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집의 청결 상태에 민감해진다. 특히나 셋째 아이가 심혈을 기울여 엄지와 검지에 작은 먼지 뭉치를 만들어 가지고 올 때면 청소에 대한 전투 의지가 활활 타오른다.
아이들이 한창 구강기였던 때, 걸핏하면 아무거나 입에 넣고 빠는 바람에 청소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장염으로 며칠째 설사를 하는 아이를 보면 위생과 청결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생각해 더욱 열심히 청소하곤 했다.
가끔 SNS나 잡지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깔끔한 인테리어를 유지하는 집을 보면 신기한 마음이 든다. ‘아이가 있는 집이 어떻게 저리도 깨끗할까?’ 그러고는 나도 매일 아침 깨끗한 집을 마주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부지런히 치우게 된다. 하지만 블랙홀 같은 육아와 집안일에 올인하는 하루를 보내면, 밤이 다 되어서야 지친 몸으로 소파에 널브러진다. 그러다가 더 이상 몸이 혹사당하는 하루를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나나랜드’의 회복이 절실했다.
그래서 가사와 육아에 대한 강박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매일 밤 자기 전, 다음 날 집중할 일을 딱 한 가지로 축소시켰다. 예를 들어 내일 집중할 일이 화장실 청소라면 다른 부분은 간단히 정리만 하는 것이다. 육아 또한 맛있는 저녁 식사 메뉴에 초점을 둘 것인지 아이들과의 식후 놀이에 집중할 것인지를 선택해 그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예전에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생각만 하면서 살았다. 1분 1초가 아까운 사회를 살아가다 보니 생산성에 초점을 맞춰 행동하게 됐다. 매일 바쁘게 움직였고, 바빠야 내가 살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수시로 어긋나는 계획과 일정을 마주하면서 삶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됐다. 삶은 매일 급하게 해치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살피며 음미해 가는 것임을,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라 내게 중요한 것에 시간을 들여 쓰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매일의 미션 한 가지를 완수한 다음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마음먹는다. 이렇게 다음을 기약하고 나면 가사와 육아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을 느낀다. 집이 조금 더러워져도 괜찮고 못한 건 남편에게 부탁하거나 내일로 미뤄도 된다는 마음의 틈을 허락하기로 한다. 또한 무결점의 청결한 환경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항상 정돈된 곳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는다.
*본문 외 더 많은 글은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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