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그리고 130일
문득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처럼 '엄마' 때문에 아프고 힘들고 슬픈, 혹은 그래서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은 아마도 '엄마'가 아닐까 싶다.
열 달을, 뱃속에 품고 긴 산고 끝에 태어난 아이가 첫울음을 터뜨리는 이유는 탯줄이 끊어짐과 동시에 '엄마'라는 존재에게서 떨어져나가는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 마주하는 낯선 세상에서 의지할 곳 없이 버려지는 기분이랄까.
혼자서는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래서 '엄마'라는 존재 없이는 생존 자체가 위협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늘 불안했고, 늘 무서웠고, 늘 조바심이 났다.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나를 바라보지 않는 시선,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어도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는 '엄마'의 등은 언제나 나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언제였는지,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엄마'가 죽는 꿈을 꾼 적이 있다.
한참을 울다 깨서, '엄마'가 잠들어 있는 방에 들어가 '엄마'의 숨소리를 확인했더랬다. 나의 인기척에 잠이 깬 '엄마'에게 된서리를 맞듯 혼이 났다. 단지 잠을 깨웠다는 이유로. 어린 마음에 속이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그래서 나를 혼내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끔찍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 죽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어른'이 되었고, 이 시점에서 '엄마'의 죽음을 감히 상상해 보자면, 그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공포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저, 이미 떨어져나간 탯줄처럼, 닻을 잃고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한없이 혼자 흘러가듯 지독히도 외로운...... 기분이다.
아마도,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되는 것이겠지.
이런 이야기들을 '엄마'에게 해본 적은 없다.
-'엄마'가 내 옆에 더 이상 없는 날이 오면, 나는 아마도 외로워 죽을 거야.
같은 말을 하기에는, '엄마'와 나의 사이는 썩 '다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사실 다정하다기 보다는,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말다툼이 터지는 사이에 가깝다.
너무도 다른 성격, 너무도 다른 생각, 너무도 다른 표현 방식들.
나와는 너무 다른 '엄마'는 그래서 나에게 상처가 되었고, 그래서 나는 힘들었고, 아팠다.
또한, 그래서 나는 '엄마'가 미웠고, 미운만큼 원망했고, 지독히도 싫었다.
반대로, 그런 내가 '엄마'는 미웠을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왜 너는 나를 미워하니?
'엄마'는 내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의 모든 것들이 진심이 아니라고 그렇게 '엄마'를 부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나에게 상처가 되는 '엄마'의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고 덜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엄마'에게 높고 견고한 벽을 쌓아가던 동안 나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나의 실수들을 냉정하게 비판하고 야단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의 실수들을 함께 끌어안고 가는 '엄마'를 나는 어느 순간 의지하게 되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엄마'는 내가 너무 미웠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흠' 하나 없이, '티' 없이, 그렇게 온전하게 예쁘게 지켜주고 싶었던 '딸'이었을 테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엄마'는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이 유달리 강한 사람이다. 그런 '엄마'에게, 나 역시도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렇게 잘 알것 같은데도, 나는 여전히 '엄마'와 끊임없이 싸운다.
그리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결코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반복된 날들.
어디선가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잘 사랑하는 방법은 내가 사랑하고 싶은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내 경험을 비추어 보아도 어려운 일이다.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쉬웠다면, 어느 누구도 사랑하면서 상처받고 상처주고, 그래서 헤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특히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좋은 것만 주고 싶으니까. 내 아이들에게는.
현명한 '부모'라면 내가 주고 싶은 좋은 것들보다는, 내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겠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상처주게 된다.
그걸 아는데도, 나는 상처 받는다.
'엄마'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줄 수 없어서, 자책하고 그 자책이 상처가 된다.
하지만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상처가 더 이상 '미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종종, 여전히 싸우지만 밉지는 않다는 것.
아니, 아주 아주 가끔은 미울 때도 있지만 '엄마'의 방식이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분명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