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그리고 135일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은
외로운 일이다.
마주 앉은 순간조차 나를 바라보지 않는 시선,
언제나 나를 비켜, 먼 하늘 어딘가를 응시하는 시선을
홀로 지켜보는 일은 지독히도 외로운 일이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나를 떠나, 향할 어느 먼 곳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두려움은, 너무도 외로운 일이다.
나는 늘 그랬다.
불안해서 두려웠고, 외로웠다.
나의 유년기의 기억은
그렇게, 항상 나를 떠날 것 같은 '엄마'의 '등'이었다.
그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나는 누구를 만나도 외로웠다.
그 대상이 친구이든, 연인이든, 그 무엇이든...
나에겐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외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혼자인 것이 덜 외로웠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어떤 것도 나눌 수 없다는 건
무언가를 계속 상실하고 있는 기분이다.
나를 바라보지 않는 시선을 갈구하는 일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다.
얼굴을 들이밀고
옷자락을 붙잡고
나는 말을 하지만
듣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것이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고
더욱, 내 안으로 침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연락에 집착하는 편이다.
전에는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애착대상과의 물리적인 거리감을 채울 방법은
사실상 '연락'뿐이지 않을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마음을 어떻게 나누는지 방법을 몰라서인지
적어도 나에게는 '연락'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그 물리적 거리감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의...
불안함 혹은 두려움은,
'엄마'의 '등'을 떠올리게 만든다.
늘 봐왔던, 익숙한, 익숙하고 싶지 않은,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사라질 것만 같은,
'뒷모습'을 자꾸만 '보게' 만든다.
이것은 내가 상대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의 문제,.
여전히도 떨치지 못한 '엄마'라는 이름의 '그림자'.
'부모'라는 존재가 한 '아이'의 일생에 있어
얼마나 크나큰 존재인지...
'딸'에게 있어 '엄마'란
일생 전체를 관통할 만큼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존재라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 아닐까?
그렇다고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저,
'엄마'와 내가 이렇게 만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안쓰러울 뿐이다.
'엄마'가 '나'를 선택할 수 없듯
'나' 역시 '엄마'를 선택할 수 없듯
불가항력적인 어떤 중력에 이끌려
서로에게 안겨졌을 '운명'을 어떻게 원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