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對 2023년
'망했다! 대웅전 어디서 만나자고 했는지 모르겠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1년 전, 서울 변두리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서 단발머리 수험생이 절규를 삼키며 다리를 한층 더 격하게 떨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 아니 국가의무교육 기간까지 12년을 통으로 갈아 넣으며 준비해 온, 대학수학능력시험 1교시가 시작된 지 3분도 지나지 않았다.
'아냐, 나만 어려울 리 없어. 정신 차려, 그냥 3번으로 넘어 가.'
스스로에게 명령했지만, '국어 듣기 평가 2번부터 극강 난이도일 리 없다'는 불길한 생각에, 미련한 마음은 2번 문제로 자꾸만 되돌아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내내, 일요일마다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에 나왔다. 나른한 교실에는, 자발적으로 등교한 예닐곱 명의 학생들이 연필을 움직이는 소리와, 째깍거리는 시계소리만 가득했다. 그들은 수도자처럼, 벚꽃, 바닷가, GOD, 영화관, 그 모든 즐거움을 끊어내고 수능 시간표에 맞추어 실전처럼 모의고사를 봤다.
수능날은 최대한 평소와 같은 조건인 게 좋다고 해서, 매서운 한파가 부는데도 치마 교복을 고집했고, 도시락도 일요일 등교 때 쓰던 것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우리말로 하는 듣기 평가 2번부터 막히다니.
역시나, 1교시가 끝나니 반수생, 재수생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단군 이래 최하 학력'인 우리들 덕분에, 대학 스펙을 한 단계씩 올려보려고 응시한 괘씸한 선배들이 많았다. 아마도 국어 시험을 망친 후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나도 많이 틀렸지만, 어린 마음에 참 쌤통이라고 생각했다.
내 사전에 포기는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공무원 외벌이에, 동생만 3명. 서울대는 꿈도 못 꾸니 서울시립대, 교대, 그도 안 되면 지방 국공립대만 선택지에 있었고, 재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학을 포기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실력이었는데, 수능 직전까지도 시중 문제집을 계속 풀어댔다. 나중에는 출판사별 문제 유형을 외워버렸다. 그러나 수능은 달랐다. 선생님 말씀을 거역하고 '수학의 정석'을 풀지 않은 어리석은 자의 말로(末路)는, 주관식도 찍어야 하는 아슬아슬한 벼랑 끝 곡예였다.
모든 것을 쏟고 나니 허탈했다. 수능 끝나고 밤새 신나서 놀 줄 알았는데, 노래방도, 영화도, 김 빠진 콜라처럼 맹숭맹숭했다. 선배들 응원한답시고 밤을 지새우며 신나고, 수능날 늦잠에 행복했던 건, 고등학교 2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다.
"엄마, 바빠요? 내일 친구들이랑 다크나이트 보러 갈 건데, 예매하게 돈 좀 부쳐 주실 수 있어요?"
추억에 빠져 있다가 현재로 돌아와 보니, 수능날 학교 안 간다고 들뜬 중학생 아들이 있다.
아침 9시부터 지하철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영화관으로 출동하신단다. 자기들보다 한 살 더 많은, 재개봉 영화를 보고, 고기 뷔페에서 만찬을 즐기시는 것이, 마냥 행복한 그들의 계획이다.
"그래, 수능 끝난 형, 누나들 놀아야 하니까, 저녁 되기 전에 돌아와. 그전에 실컷 놀고."
아들아, 지금 많이 놀아 두거라. 엄마가 계좌 이체했다.
덧) 저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추억하고, 또 달리 추억하게 될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이 땅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오늘 밤 총명함이 깃들길. 원하는 대학에 그냥 입학시키고, 차라리 졸업 문턱을 높이면 안 될까요?
*사진: Unsplash (mouad bouallay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