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몇의 영끌
부동산 왕초보가 서울 아파트를 사겠다고 설치고 다닌 지 반년이 흘렀다. 가격 많이 떨어졌다는데 기왕이면 신축을 사 볼까, 근데 왜 이리 비싼 걸까, 내 예산에 맞추자니 산동네로 이사해야 하네, 내 주제에 구축 사는 게 맞는 걸까, 청약 추첨제에 도전해 볼까……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요즘 또다시 삼사십 대가 영끌해서 집 산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내가 뉴스 주인공이 될 뻔했구나, 모골이 송연하다.
꿈이 많은 만큼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은 우리 집 두 아이들. 일주일에 한두 번 장 보는 것만 20만 원은 족히 들고, 학원시간 때문에 저녁을 집에서 못 먹는 날에는 외식을 해야 한다. 애들이 좋아하는 ‘메이커’는 어른 옷, 신발보다 더 비싸다. 와릿이즌 면바지 한 장이 9만 원이고, 내셔널지오그래픽 운동화 한 켤레를 집어드니 16만 원이란다.
초등 고학년, 중학생 학원비만 한 달에 170만 원이 나간다. 두 녀석 모두 고등학생이 되면 과외를 하게 될 테고, 그때는 교육비가 더 든다. 공교육에 없는 입시정보를 얻기 위해 고3 때에는 목동이나 대치동 큰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전 재산을 쏟아붓고 대출까지 받아서 방 세 개짜리 집에 깔고 앉으면, 우리 가족의 삶은 어찌 되는 걸까. 재테크, 노후대비, 자산증식. 그거 참 좋지만, 매일의 삶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불행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나는 문득, 초등학생 때 읽었던 모파상의 <목걸이>를 떠올렸다. ‘부자 되기’ 만찬에 잘못 참석했다가 빌린 돈에 이자까지 얹어 갚느라, 삶을 저당 집히긴 싫다. 인생을 바쳐 얻은 ‘그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억울함에 넋이 나간 여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
덧) 경제 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이하 관계자 분들께 한 말씀 올립니다.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상황이 안 좋다, 문제의식은 충분한 듯 발언하시면서, 어찌 나오는 정책들은 서민들에게 별 보탬이 안 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