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내 집은 어디에
2억 대출도 가뿐했던 태평성대에 낡은 아파트를 과감히 구입했다. 원금에 이자까지 매월 100만 원쯤은 표도 안 나던 맞벌이 시절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집 사서 고생 말고 전세로 풍족하게 살자'는 소위 YOLO(You Only Live Once) 족이라고 믿었다. 수시로 전근 다닌다는 핑계로, 부동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파트 값에 변화가 없던,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운 모 광역시. 얼마나 부동산 경기가 별로였으면, 우리 부모님 세대 집주인들이 "새댁, 우리 집 살래?" 물어보던 2017년 즈음, 투기꾼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집에 와 보지도 않고 30년이 다 되어가는 아파트를 사 들이기 시작했다. '별 미친놈들이 다 있네.' 욕했지만, 앉은 자리에서 ‘벼락거지’가 된 건 그들이 아닌 나였다.
부동산 공구 스터디에서 담합한 외지인들이, 불과 한두 달 만에 전세가와 매매가를 4천만 원 올렸고, 그들은 1~2천만 원으로 아파트 소유주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깡통 전세에 살게 된 나는 분통을 터뜨렸다. 마음이 평온했던 '욜로'는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 것 같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나도 여기에 몇 천만 원만 보태면, 소위 로열동, 로열층 집을 살 수 있는데 그냥 살까?'
투기꾼들 농간에 화난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 들어 살면서 내 돈을 내고서도 비굴해져야 했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면 명절을 앞둔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리고 어깨가 무거웠다.
신혼 초 경기도 다세대 주택에 살았다. 저승사자처럼 분칠을 하고 일수 가방을 들고 나타난 아줌마에게, '집 깨끗이 써라, 쓰레기는 지정된 곳에 버려라' 등 별의별 설교를 들어야 했다. 어수룩했던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은, 그걸 잠자코 들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여야 하는 줄 알았다. 주차장이 있을 턱 없는 그 동네는 좁은 이차선 도로가 주차장이 되기 일쑤였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가는 공간에, 사이드 미러도 펼 수 없는 구간이 즐비했다. 운전 실력만 나날이 일취월장했다.
아기 둘을 데리고 서울 다세대 주택에 살게 되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큼직한 마당이 딸린 단독 주택들로 쾌적했던 동네는, 두 세기 만에 돌아와 보니 다세대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선 지저분한 동네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취기 오른 아저씨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건물 간 간격이 어찌나 좁았던 지, 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옆 건물에서 시끄러워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동네에 쓰레기 배출 구역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어느 전봇대, 어느 집 담벼락에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쓰레기 투기 금지. 누가 버리는지 다 알고 있음. 걸리면 고발조치함!" 문구를 써 붙인 것도 모자라, 있지도 않은 CCTV 촬영 협박까지 해 댔지만 소용없었다.
햇빛이라고는 구경도 못하는,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아이 둘과 살다 보니 산후 우울증이 도질 지경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 못 살겠다, 사람이 살고 봐야지, 돈 몇 푼 아끼려다 명이 단축될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대출을 받고 30평 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낡았어도, 전세라도 좋았다. 신도시로 조성된 곳이라 단지에서 길을 건너지 않고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다닐 수 있는 조용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대출을 갚으면서 아이들 교육비를 꽤 지출했어도 살 만했다.
그러나 전세 만기가 되어 집을 보러 다니고 이사하는 건 언제나 고역이었다. 못 하나 내 마음대로 치지 못하고 겨울철 추워서 중문을 달고 싶어도 집주인 허락을 받아야 했다. 12년 된 보일러가 고장 나서 애들과 추위에 떨면서 전화를 했더니, 자기 집이 아닌 것처럼 "네가 쓰는 건데, 니 돈 내고 고쳐서 쓰지." 했던 집주인도 있었다. 몰상식한 집주인을 상대하는 것도 신물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투기꾼들이 몰고 온 광풍은, 잠잠했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돌아보면 그 시기부터 부동산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월급도 오르고 물가도 적당히 같이 오르던 시절, 낮은 이자율에 대출받기도 쉽고, 그 덕에 투기에 속도가 붙고 있었다. 때마침 부동산도 잘 모르고 분노하여 집을 샀으니, 소위 '상투 잡고' 최고가에 집을 산 건 아니었어도, 나는 '부동산 초보’와 '영끌족' 그 중간, 어디쯤에 있었다.
집 값이 ‘정상화’되고 있는 요즘, 양가감정을 느낀다. 내 집 값이 오르며 느꼈던 기쁨은 일장춘몽에 불과했다는 허망함. 매매는 화중지병(畵中之餠)이었던, 신축 아파트 집주인이 되어볼 수 있겠다는 또 다른 욕심. 전자는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후자는 기회를 잘 잡으라고 부추긴다. 두 마음이 줄다리기를 한다. 내 예산 범위에 집 값이 닿는다면 살까, 혹시 재건축이 될지도 모르니 기존 집을 팔지 말고 더 가져갈까, 적은 돈으로 재개발에 투자하고 전세 살며 '몸빵'을 할까, 날마다 시나리오를 썼다 지웠다 한다.
돈은 부족해도 '아이쇼핑'하는 마음으로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을 살펴본다. 통장에는 가계약금이 들어있다. 그래도 잘못 일을 저지를까 봐 일회용 비밀번호(OTP) 기기 같은 이체 수단은 집에 두고 다녀야 한다. 요즘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부동산, 경매, 재개발 동영상을 열심히 물어 온다. 생전 볼 일 없을 것 같던 부동산 책들이 문 앞에 배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