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넘어서는 용기로, 찬란하게 들뜬 날을 맞게 되리
소나기처럼 찾아든 외로움이 나의 껍데기를 탐색하고 새로운 소일거리를 발굴하게 했다면, 그럼에도 잦아들지 않고 불어대는 마음속 찬 바람이 그 단단한 껍데기에 크고 작은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터에서 부대끼는 사람들과 가정에 돌아와 보살펴야 하는 아이들에게 집중하느라 가만히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던 내 민낯. 바삐 산다는 핑계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귀 기울이지 않았던 내 안의 외침. 무너져 내리는 건 한 순간이었다.
일터에서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반응을 하나씩 곱씹었다. 매일 같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한 사람이 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실망하고, 내일은 조금 더 남들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를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자칫 잘못하면 와자작 온 사방으로 금이 가 버릴 것 같은 감정의 살얼음판 위를 살금살금 기어가며, 테이프를 빨리 감는 것처럼 이런 거지 같은 날들이 속히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3교대 근무를 하면서도 영어 공부를 하고 자는 시간도 아까워 책상에서 쪽잠을 잤다. 일찌감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처럼 대학원 공부를 했다. 직장에서 장학금을 받는데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둘째를 낳은 다다음날 석사 통계 시험까지 치른 후에야 몸조리를 시작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30대의 끝자락에서 정신 차려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내게 결핍된 그것이 무엇이었더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여전히 모르겠사옵니다. 그걸 알았더라면 아직까지도 그 바닥에 납작 엎드려 포복하고 있거나 혹은 이미 득도하여 훨훨 날고 있지 않았을까.
"당신이 하는 말은 전혀 이해가 안 돼. 그게 무슨 소리야."
직속 상사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좌절을 넘어 패배감을 맞봐야 했다. 갱년기 히스테리가 극에 달해 울긋불긋한 얼굴을 마주해야 할 때는 감정쓰레기통이 된 내 처지에 분노했다. 부장실 사무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수리업체 직원이 오면 수리하는 내내 찜통 같은 방에서 보초를 서야 했고, 병원 리모델링으로 이사를 해야 하면 부장실 짐을 옮기는 건 당연히 내 몫이었다. 나는 과장이지만 비서도 되어야 했다.
말 끝마다 "당신"을 운운하며 대중 앞에서 잘못을 크게 부풀려 깎아내리는 발언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내며 파고들었다. 모 심리학 교수가 제시하는 '소시오패스'의 조건에, 그녀의 특성을 하나씩 맞춰 보면서, 나는 그저 피해자일 뿐이라고 되뇌어 보기도 했다. 그깟 사람 때문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게 합리적인 결정일리 없다며 스스로를 설득해 보았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울어 있는 땅에서 바로 걸으려 애써봐야 소용없음을, 감당할 수 없는 감정노동으로 내 영혼이 지쳐있음을. 사는 건 그런 거다. 사소한 상처들이 모여 큰 병이 되고, 큰 병에 걸리지 않고 잘 살기 위해서, 상처 주는 이들과 작별을 고해야 할 때도 있다. 그 세상은 내 것이 아니었노라, 마음이 질기지 못한 사람은 걸을 수 없는 길이었노라.
... 분노로 뛰쳐나간 발걸음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 대체로 옳다면 용기로 도약된 행보는 새로운 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위즈덤하우스 (2020), p.115
새로운 방향으로 내디딘 나의 발걸음이 부디, 파르르 떠는 순간의 분노가 아닌, 묵직한 용기에서 기인한 것이었기를. 비록 분노가 내 삶의 경로를 틀게 한 발단이었더라도, 힘들었던 과거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더 늦기 전에 너른 바다로 나온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일 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