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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Jan 16. 2023

당신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편견, 오만함과 싸울 정도로 이 일을 사랑하는가

 "네가 잘하는 걸 좀 알려줘 봐. 진짜 널 위해서 묻는 거야. 네 생각해서, 그런 일만 시킬게."

 퇴직을 결심하게 한 결정적 대목이자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선물한 말 몇 마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이 4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말렸다.


 그는 내가 퇴직하겠다고 하자, 두려워했다. 혹시나 자신을 폭언이나 부당한 대우로 고발하지 않을까, 남몰래 떨고 있었다. 능력 없는 배우자 때문에 자신이 가장이기에, 지금 초등생인 막내가 대학 졸업 때까지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인생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놓았다.


 이런 이야기를 차분하게, 남의 이야기처럼 글로 쓸 수 있다니, 이제는 내 마음이 많이 회복되었나 보다. 마음의 상처에서 눈물이 멈추기까지 1년밖에 안 걸린 거니, 꽤 회복이 빠르다. 평생 쓰라린 상처로 남는 일들도 많은데 나는 정말 행운아다.


 "네가 잘하는 게 있기는 한 거니?"

 오랜 세월 끊임없는 풍파를 견뎌내고 나를 겨우 붙잡고 있던 끈이 끊어졌다. 가득 차오른 강물을 막아 버티고 있던 둑에 실금이 가자 기다렸다는 듯 터져 버렸다. 내가 16년 간 쌓아 온 모든 것들이 저 한 마디로 더럽혀진 것 같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내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 위에 울분을 토해 냈다.


 엉엉 울면서 맨 처음 전화를 건 사람은 남편이었다. 그래, 그만둬. 그딴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 없어.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 말이 위안이 되면서도 참 슬펐다. 친한 동기, 후배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와 수년간 일을 했었고 나를 잘 아는 이들이, 무너진 나 대신 내 입장을 대변해 주었다. 수년간 고민해 왔던 것이었음에도, 내 결정이 섣부른 건지 타인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절친이 '김 선배'에게 이야기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는 내가 학생일 때부터 나를 알았고 졸업 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일과 사랑이 빠진 상부지향적인 상사들이 판을 치는 부서에서, 책상을 마주한 사이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주말 부부로 아이 둘을 홀로 양육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도 '그들만의 하하 호호 티타임'에 끼기를 거절하고 일을 해 대다가 서둘러 퇴근했었다. 일이 많을 때는 아이들을 사무실에 데려와서 돗자리를 펴주고 김밥이나 통닭을 먹이며 야근을 했다. 그는 이런 나를 그나마 이해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래, 그에게 물어보자.


 그는 말했다. 지금 나와 같은 연차 즈음, 자신도 마음이 맞지 않는 상사를 만나서 고생했노라고. 울기도 많이 했다고. 그때 '그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고, 그 상사를 위한 무슨 행사에 엄청난 정성을 쏟아부어 겨우 그와 화해했다고 말이다. 이 정도로 네가 절박하지 않다면 너는 이 조직에 어울리지 않아,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눈물이 말끔히 씻기고 앞이 밝게 보였다. 네, 선배님. 이해했어요, 덕분에 마음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게 나의 대답이었다.


 새로운 부장이 부임한 지 2달 남짓되었고, 비록 구식이긴 하지만 확신에 차서 직장생활을 해 오던 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사무실에서 밤까지 새워 가며 고군분투하던 때였다. 마침 남편이 아파서 2주 간 자리를 비우게 된 것은. 부장은 어서 집에 가라고 하면서도, 급한 일 이것저것은 끝내놓고 가라며 자신의 속내를 감추지 않는 인물이었다.


 2주가 지나 복귀한 후부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보다 수위를 높여 맹공을 펼쳤다. 텔레그램을 통해 하루에도 수십 가지 업무지시가 내려왔다. 오전에 내린 지시는 오후에, 오후에 내린 지시는 다음 날 오전에 결과보고를 해야 했다. 단 하나뿐인 직속 부하도 미리 약속된 시간이 아니고서는 업무 보고조차 어려웠다. 약속 없이 사무실에 찾아왔다며, 까마귀 쫓듯 손사래를 치며 복도에 세워뒀다. 보고서 없이 '어디서 찌끄려 쓴 메모를 들고 와서' 구두보고를 한다고 지랄을 했다.


 그가 행정일을 하는 수년동안, 그의 병원 근무 경험은 이미 낡고 녹슨 폐물이 되었다. 인원이 감축되면서 기본 업무량이 배로 는 상황도 잘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이해하기 싫은 것일지도 몰랐다.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한 것도 초월하는 사람이었다.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도 없었다. 그는 우리 부서에서, 혹은 병원에서 가장 유능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했더라도, MZ 세대가 어쩌고 하면서도, 그가 해 왔던 방식대로 보고 배웠던 대로 돋보이고 진급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과장님,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평소에 말 수가 무척 적었던, 10년쯤 후배인 부서원이 찾아왔다. 부장이 그 간의 3교대 근무 편성 원칙을 깨고, 그날 예상되는 업무량에 따라 당일, 그것도 몇 시간 전에 오후 근무를 밤 근무로, 밤 근무를 휴무로 통보하는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모자란 근무일수는 다른 휴무를 근무로 바꿔 맞추면 된단다. 코로나 대응으로 인력이 부족하니, 인력을 효율적이고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취지라는, ‘궤변'이었다.


 이미 퇴직 선언을 하고 난 터라, 편안한 마음으로 부장을 찾아갔다. '마침 오늘은 부서에 일이 적으니 출근하지 말고 대신 토요일에 출근하라'는 통보를 평일 오전에 받는다면, 요즘 애들 같으면 당장 어딘가에 고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다시 생각해 보시라고 이야기했다. 속으로는, 부서원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도구'로 여기는 발상이라고 그에게 소리쳤다. 부장에게 충언을 한 것처럼 되었으나, 실은 함께 일해 온 부서원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내가 관리자로 어떠했는지는 나와 함께 근무한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계급 서열이 강조되는 조직의 특성상, 나를 제대로 평가해 줄 사람들이 나에게 속내를 이야기해 주지는 않을 것이고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조직의 관리자로서 실패했다.


 부서원을 구워삶든, 어느 정도 찍어 누르든, 상사에게 인정받고 승승장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우직하게 직무기술서대로 일을 하고, 내가 꿈꾸던 '인간미 넘치는 상사'로만 남으려고 했을 것이다. 부서원들이 기본 업무만으로도 바쁜 걸 뻔히 알면서, 짐짓 모르는 척 '다소 낡은' 수많은 지시를 아무런 반박 없이 받아와 부하직원들에게 분배해 주고 야근을 종용하며, 과거의 자신처럼 살지 못하는 내가, 부장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능력 없는 인간, 당연히 무시받아 마땅한 인간, 그쯤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 면전에서 나의 능력을 운운할 수 있었으리라.


 "나는, 능력 없는 것들, 못 따라오는 멍청한 애들은, 버려. 마음에 안 드는 애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면 돼."

 이런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 그는 참 어리석다. 고작 두 달의 시간으로 나를 비롯하여 마음에 안 드는 몇몇을 찍어두고, 섣불리 사람의 가치를 단정 짓고 물건 취급하는 것이 분했다. 기러기 엄마생활까지 불사하며, 새털 같지만 일분일초가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감정노동을 해 가며 상부지향적인 조직생활을 계속하면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다가는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았다. 누구처럼 견딜 맷집이 없다.


 하루쯤, 주마등처럼 지난 16년이 스쳐 지나가 그 시간들의 부질없음을 슬퍼하고 나니, 다음 날부터는 고통에서 해방된 안도감이 밀려왔다. 감사했다. 그만해야 할 때, 오래 망설이지 않고 그만할 수 있는 것에. 집에 빚이 많지 않고, 나 없이는 수입이 끊어져 생계가 어려운 상황도 아니고, 이 일이 아니어도 미래를 꿈꿀 수 있어서. 내가 큰 사고 없이 병아리 간호사 시절부터 중간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고 때로는 도움을 주고 나의 실수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이 길의 끄트머리에서 깨달았다. 감사하며 끝낼 수 있기에 그게 또 감사했다.


 며칠 전 전화를 받았다. 퇴직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내 뜻대로 하겠다고. 의례적인 것이었겠으나, 이미 퇴직 연수를 떠나 볼 일 없는 이에게 전화를 준 선의에 감사했다. 내 뜻대로 그 추운 곳까지 가지 않을 수 있어서, 나에게 '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어서 또 감사했다.


 새롭게 내가 살아갈 세상에서, 다시 꿈꾼다. 타인을 이용하고 밟고 올라가는 사람들보다, 같이 성장하고 나의 발전이 모두의 발전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길. 그게 말도 안 되는 이상주의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사는 현실에서 당당히 입증해 보일 날이 오길 말이다.



* 사진 출처 : Unsplash (Lennon Ch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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