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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Dec 23. 2022

줄 똑바로 서세요!

장난감 품귀현상과 부모들의 줄서기

 "엄마 화이팅, 5/13(금) 12시 PS5"

 지금도 내 책상 위에 붙어 있는 메모다. 5월 13일은 게임 쇼핑몰에서 플레이스테이션 최신 버전 기기를 한정 수량만, 매월 딱 하루, 온라인에 푸는 날이었다. 세일도 아니고, 한정판도 아니고, 그냥 일반 상품인데 수량이 적다는 이유로 판매 개시 후 단 몇 초만에 품절되어 버린다. 이미 다른 사이트에서 2번쯤 실패했기에, 메모로도 부족해 휴대전화 알람까지 맞춰놨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장난감 먼저 주문해 놓고 점심을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실은, 4시간 거리 지방에 사는 동생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여, 명의 어른이 11시 55분부터 온라인 줄서기를 했던 것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큰 아이가 7살, 작은 아이가 5살이었던 2015년, 터닝메카드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손오공이라는 기업이 그 당시 신생기업이었던 건지, 장난감 수급량이 많지 않아 꽤 오랫동안 품귀현상을 겪었다. 기업에서도 이슈였겠지만, 나를 비롯한 엄마, 아빠들에게도 근심, 걱정이었다. TV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에서 터닝메카드 만화는 매일 같이 방영되는데, 이 놈의 장난감을 구할 수가 없었다. 엄마들 카톡방에는 언제 롯데마트에 소량 입고된다더라, 어느 장난감 도소매점에 가면 터닝메카드 인기 모델인 '에반'이나 '타나토스'를 살 수 있다더라 제보가 심심치 않게 공유되었다.


 "엄마, 스핑크뜨랑 그리핑크뜨 사야 돼. 둘이 합체하면 우리 팀이 이길 수 있떠."

 2015년 여름날, 폭염을 무릅쓰고 다른 구()에 있는 장난감 도소매점을 찾아갔다. 스핑크스와 그리핑크스를 사기 위해, 결전의 날 몇 시부터 판매가 시작되는지 미리 전화로 확인해 뒀다. 분명 평일이었는데 아빠들도 많이 오셨더랬다. 토이저러스에 시간 맞춰 도착했으나, 긴 줄서기 끝에 내 순서 바로 앞에서 품절이 되는 억울함과 절망을 여러 번 경험하였으니, 이번에는 1시간 전에 도착했다. 그래도 줄은 길었다. 장난감들로 비좁은 가게 내부에서부터 뙤약볕이 내리쬐는 골목까지 엄마, 아빠들의 비장한 줄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 줄로, 똑바로 서세요! 줄 제대로 안 서면 아웃시킵니다. 한 집당 한 개만 살 수 있어요! 엄마랑 아빠가 동시에 사다가 적발되면 아예 구입 못 합니다."

 혼인서약으로 맺어진 부부 관계마저 부정해야 하다니. 터닝메카드 2개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남인 척 연기하는 부부들을 보며, "사장님, 여기, 방금 전까지 누구 엄마, 누구 아빠 하는 사람들, 부부인 게 확실해요. 이 사람들 아웃시키세요."하고 고발을 해야 하나, 딱하니 모르는 척해야 하나, 정말 웃겼다. 부모가 되니 어릴 적 못 해 본 장난감 '덕질'을 다 하러 다니고, 내 돈 내고 정당하게 사는 건데도 파는 사람 눈치를 봐야 하다니.


 이런 상황이 2022년에 또다시 재현된 것이다. 터닝메카드는 만 오천 원짜리였는데, 지금은 자그마치 칠십만 원짜리 줄 서기다. 제발, 저한테 한 대 파시고 제 돈 가져가세요, 간절한 클릭클릭! 하늘도 이런 정성에 감복하셨는지, 12개월 카드 할부 결제를 보란 듯이 성공한 남편과 나는, 줄서기하는 다른 분들을 위해서 둘 중 하나는 바로 취소하고 의기양양하게 아이들에게 구매 성공을 알렸다. 우리 집은 잠시동안 흥분의 도가니였다.


 지금은 작은 아이 방에 딸린 '장난감 베란다'에서 잠들어 있는 터닝메카드 30여 개. 아이들이 누구한테 주지도 못하게 하여 중학생이 된 지금도 소장 중이며, 이번에는 정말로 사촌동생에게 준다, 말이 나오면 일부러 시위하듯 꺼내서 가지고 논다. 실은, 내 추억의 물건이기도 하여 앞으로 누구에게 주지는 못할 듯싶다. 그나저나, 플레이스테이션은 언제쯤 장난감 방으로 물러나게 될까. 요즘은 저 놈의 게임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 사진 출처 : Unsplash (Bambi Cor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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