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민 Dec 11. 2022

남자 화장실 청소는 남자가 해야 한다

편히 소변보고 싶다는 중학생 아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며칠 전 급한 볼일로 화장실에 들어섰는데 여자 청소원 한 분이 일을 하고 계셔서 움찔하며 양변기 칸으로 들어갔다는 아들이, 학교에서 열리는 인권 존중 글짓기 대회에 이 주제로 글을 겠단다. 결국 아들은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못 다. 학원에, 숙제에,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에, 여러모로 공사가 다망한 아들이 이미 제출기한을 놓쳤던 것.


 나와 같은 여자 학생이나 선생님들은 친근한 동성(同性)의 청소원을 마주치니 화장실에서 불편하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세상에 절반이라는 룰을 깨고 여초(女超) 현상을 보이는 학교에서, 허를 찌르는 좋은 주제였는데, 쩝! 아쉬운 마음에 '남자 화장실 청소원'을 키워드로 인터넷 자료를 뒤졌다. 단 몇 초만에 수많은 기사글이 주루룩 끌려 올라왔다.


 그중에 눈길을 끄는 건 2015년 '한수진의 SBS 전망대' 대담록이었다. 어떤 국회의원이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고, 그 의원과 함께 9호선 동작역에서 일하시는 여자 청소원이 인터뷰에 응하셨다.


청소원 : "남자 화장실을 우리가 불쑥불쑥 들어가기가 민망하잖아요. 청소하러 들어가면 남자분들 보는 시선이 별로 좋게 보이진 않잖아요. 불편하시죠, 그분들도, 사실. 그런데 저희도 마찬가지로 불편해요. 청소하는 입장에서 어떤 손님은 여자가 왜 들어오냐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사실. 저희는 무서워서 여자 화장실로 숨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도 계속 욕이 들리는 거예요. 왜 여자가 여기 들어오냐고 그러면서." *


 다른 많은 곳에서도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였다. 2006년 기사도 있는 걸로 봐서는 법안 발의되기 훨씬 전부터 이런 문제가 거론되어 왔던 모양이었다. 다른 목소리도 궁금해서 법안이 발의되던 즈음 2년 간 보도된 자료를 다시 뒤졌다. 선진국에서는 남자 청소원이 고용되어 남자 화장실을 전담하는데 우리는 뒤처졌다, 이건 청소하는 여성 근로자와 화장실을 이용하는 남성 시민 양 측의 '인권'과 관련 있다는 주장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원이 경험한 성희롱, 열악한 근로 환경에 대한 여러 사례들과 함께, 화장실 이용자들이 경험한 불편 사례도 나열되어 있었다.


 기사 검색 실력이 좋지 않은 탓인지, 개정안이 통과된 건지 아닌지 그 결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 참, 문제라고 난리법석 떠들어 댈 때는 언제고 금세 지쳐서는 항상 결론이 없어, 괜한 신경질을 냈다. 흥, 그런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고, 중얼거리면서 법제처 홈페이지에서 해당 법령의 원문과 신구 대조표 등열람했다. 시행령 조문에서 '청소'를 키워드로 검색하자, 관련된 조항인 제7조 5항이 2018년 9월 4일에 발효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조항을 법률에 명시하는데 3년 넘게 걸렸나 보다.


제2조 “공중화장실”이란 공중(公衆)이 이용하도록 제공하기 위하여 국가, 지방자치단체, 법인 또는 개인이 설치하는 화장실을 말한다. **
제7조(공중화장실의 관리기준) 5. 청소 또는 보수 등을 위하여 남성 관리인이 여성화장실을, 여성 관리인이 남성화장실을 출입하는 경우에는 화장실 입구에 청소 또는 보수 중임을 알리는 안내표지판을 두어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할 것 **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법령을 토대로 당연히 설치되어야 했을 청소 안내 표지판을 못 본 건가? 그럴 리 없겠지만, 학교가 법 시행령을 어긴 건가? 법안이 처음 발의될 때만 해도 어떤 전문가는 "법안 발의만으로도 화장실 이용자들에게 충분한 '심리적 압박감'을 주게 돼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여성 청소원을 대할 때 스스로 조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단다. 뭐, 법이 있어도 집행을 감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건 민주주의, 권 분립 어쩌고 하며 사회시간에도 배웠었다. 일단, 아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학교에 문의해 보는 게 좋겠다고 귀띔해 줬다.


 난데없는 화장실 청소원 성별 문제로 한바탕 검색질을 하는 도중에, 20년이나 되어 먼지가 소복이 쌓이고 고리타분하기까지 한 일화가 생각났다. 이름하야 '여군 소대장 배치'에 대한 어떤 노교수(老敎授)와 갓 스무 살 된 학생의 대화였다. 그 대화는 오늘의 폭풍 검색처럼 뜬금없이 시작되었다.


 그 여학생은 한 토론대회에 참석하여 '여군 소대장'과 관련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주제로 열띤 발언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때 성별을 밝히지 않는 그 교수가, 앞으로 나올 답변이 어떨지 심히 흥미로워 발언을 중단시키고 질문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기겠다는 표정으로, "전방 부대에 여자 화장실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곳에서 여군이 소대장을 하겠는가? 여군 한 명 때문에 예산을 들여서 화장실, 숙소를 지어야 하고 경제성이 너무 떨어지는데?"라고 물었다. (이 교수가 뭐라 했건, 지금은 여군이 거의 모든 부대에 배치되고 있다는 뉴스를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흥!)


 학생의 사고력 증진을 위한 선문답을 원했던 것인지, 학생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 토론이 재미없던 차에 성별 논쟁으로 방향 전환을 꾀한 것인지, 혹시 그 교수님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연락 좀 주시길 바란다. 아무튼 그 지점에서 그 학생이 당황하다 못해 발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당신이나 나나 군인도 아닌데 뭔 상관, 이건 차마 말로 못 하고 다행히도 감정을 억누르며 "굳이 화장실을 따로 지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여군을 못 보내는 이유가 될 수 없겠다."라고 예상보다 재미없고 공손하게 답했다. 


 화장실 청소를 이성(異性)이 하고 있어 여러모로 불편한데, 표지판을 설치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던 대로, 여자 청소원이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면 왜 서로가 불편감을 느끼는 건지, 소변기는 왜 하필 개방된 곳에 설치한 건지, 남자 청소원을 도대체 왜 배치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못한 것인지, 혹시 임금이나 처우가 남자 청소원을 구하지 못할 만큼 형편이 없는 것인지, 그러면 여성들이 그런 자리에 기꺼이 지원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어서 일하게 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사회가 남성은 청소원이 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는 건지, 궁금한 게 많아서 이것도 병이다. 뜬금없어서인지, 웃겨서인지 가끔 생각나는 20년 묵은 선문답에서 그랬듯이, 오늘도 수많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자기는 글렀다.


* 사진 : Unsplash (Sung Jin Cho)

** 인용문 출처 : SBS 뉴스, 법제처

*** 참고자료 : 파이낸셜뉴스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 장사, 그 잡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