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나의 20%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도, 실패는 자양분이 된다는 말도, 나쁜 일 뒤에는 좋은 일이 올 것이라는 말도 전부 소용없었다. 나는 패배감에 젖어 몇 년을 지내야 했다. 나 스스로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기준에서 찾는다. 기준을 스스로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굉장히 어렵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가 곧 내가 그 일을 잘하는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아니라고 하는데, 나 혼자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남의 말들을 다 무시하며 그런 생각을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보다 내면에서 스스로 먼저 기준을 세워야 하는 이유도 결국에는 스스로 바로 선 후에야 다른 이들도 나를 좋게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생의 신분일 동안엔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보류할 수 있다. 아직 학생이고 제대로 사회에서 일을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다른 어른들도 우리에 대한 평가를 보류한다. 지금 내려지는 평가는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아서 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부터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써 일 인분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쓸모 있는 존재인가를 남들의 평가를 통해서 찾으려 한다. 이때까지 보류되어 왔던 우리의 가치를 판단할 때가 온 것이다. 특히 그런 평가는 성인이 된 직후 중요하게 작용한다. 자신이 안정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때의 평가는 꽤 오랜 기간 자존감과 자신감을 좌우한다. 처음 대학에 가고 나서, 처음 직장에 가고 나서 남들의 기준을 통해 내린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생 때에는 실패를 해도 위로를 받고 시간이 많으니 괜찮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사회의 일원이 된 우리는 실패가 곧 우리가 패배자라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에 처음 발을 디뎌 본 이상 곧바로 칭찬만 받고 계획한 일을 다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반드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찾아오는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실패를 겪으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흔히 '젊었을 때 실패를 해봐야 나중에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혹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같은 말들을 한다. 물론 완전하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는 잘못 받아들여지기 쉬운 말들이다.
안정적이 울타리 안에서 정규 교육을 무사히 받으며 자라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많이 품고 있던 나 역시, 처음 사회에 발을 들인 20대 초반에 많은 실패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학점은 나오지 않았고,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떨어졌고, 대외활동은 부족했다. 군대에서는 눈치가 없다며 선임들에게 혼났으며, 대학 과제는 너무 어려워 끙끙대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은 널려있어서 늘 자괴감에 빠졌다. 스스로 돈을 벌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고 교내 대회에서 수도 없이 떨어졌다. 그럴 때 항상 같은 위로의 말을 많이 들었고 나는 이를 잘못 받아들였다. 실패를 축적하는 개념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실패가 화폐라도 되는 것 마냥 나는 지금 실패를 많이 축적해서 나중에 그에 합당한 성공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20대 초반 동안 실패를 해도 계속 도전했고 열심히 실패를 축적해 나갔다. 그래도 열심히 도전했으니 좋은 효과였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즐겁게 임한다기보다는 고통 속에서 울며불며 이 악물고 임했기 때문에 그 결과들이 좋을 리도 만무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시도하며 몇 년이 지나도 나에게는 이때까지 끌어 모아 축적해놓은 실패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자잘한 성공은 조금씩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건 내가 축적해 놓은 실패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공이었고 나는 그 정도 가지고 이때까지의 내 고통과 실패를 교환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작은 성공들은 못 본척하고 외면하며 점점 더 내가 쌓은 커져가는 실패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패배감에 젖어가고 실패에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이 된 것처럼 닥치는 대로 도전하고 실패를 더욱 모아갔다. 그렇게 쌓여간 실패와 고통은 너무 거대하고 단단해졌고 나는 더 이상 그것을 깰 수 없게 되었다. 패배감에 완전히 젖은 채로 20대 중반이 되니 내 인생 자체가 실패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너무 모아 놓은 실패가 커져서 그에 합당한 보상이 무엇인지 상상하기도 힘들어졌으며, 실패는 너무 단단해져 깨버릴 수도 없었다. 처음 사회에 발을 들이기 전, 나에게 걸었던 기대는 처참히 부서졌고, 의기소침해져서 무엇을 시도해도 실패만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내 안을 장악했다.
내 생각이 바뀔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대학에서 듣던 교양 수업 때 교수님이 하신 말이었다. 교수님은 수업 중간에 말하셨다. "여러분들도 일이 잘 안 풀리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괜찮아요. 저도 하는 일의 한 20% 정도만 성공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다가 한 번씩 30%를 성공하는 날이 와요. 그러면 저에게 칭찬을 해주는 거죠."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농담하듯이 웃으셨는데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성공해서 수업도 하시는 분이고 나는 완전한 패배자인데도 우리가 성공하는 정도는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는 20% 정도의 성공은 외면하고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미 거대한 성공을 이룬 사람으로 보이는 교수님도 사실 똑같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선생님과 나의 생각에 어떠한 차이가 있었을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잘못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내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성공확률은 누구에게나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세상에는 완벽이라는 것이 없듯 누구에게나 완벽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20%의 성공은 외면해도 되는 작은 성공이 아니었던 것이다. 교수님에게 교수가 된 것은 계획한 수많은 일들 중 20%의 작은 성공이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아주 크게 보고 있었다. 20%는 그냥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보통의 성공 확률인 것이다. 수없이 노력하며 그 20%를 성공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것들만 잘 모아도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칠 정도가 될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나는 그것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패배감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던 것이다. 실패는 축적해서 성공과 교환해야 하는 것도, 극복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것도, 당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실패와 성공은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공존하는 것들이었다. 이를 받아들이고 나자, 나는 이때까지 내가 외면했던 소중했던 작은 성공들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바로 그런 소중한 성공들을 바라볼 수 있었고 집중할 수 있었고 따뜻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것들은 나에게 큰 원동력이 되어 내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텐데. 그리고 실패감에 젖어 실패들을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수많은 나날들이 아쉬웠다. 그것들에 감정과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며 지낸 젊은 날들도 아름답고 즐거울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언제나 계획을 세운다. 계획은 완전하게 이루어지기 힘들기 마련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항상 최상의 결과를 생각해 계획을 세워놓고서 그게 보통의 상태인지 알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최상의 컨디션에서 최상의 결과를 내는 최상의 계획을 세우는데, 우리는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보통의 컨디션에서는 당연히 효율이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실패로 본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도 없이 많이 떨어졌던 교내 대회에서도 장려상을 받은 적도 있었으며, 아르바이트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결국 구해냈었고, 군대에서도 선임이 되고 나서는 잘 생활해나갔고 아직까지 연락하는 후임들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려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20%의 소중한 성공들을 외면하고 무시한 것이다. 과거에 패배감에 젖어 고통을 받았던 지난날들도 크게 보면 인생에서 겪는 실패의 일부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계획한 대로 완전하게 맞춰 살아갈 수도 없고, 실패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라도 이런 이치를 깨달은 것이 20%의 성공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작은 성공들이 너무 반갑고 고마우며 제대로 바라보고 돌봐주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이 20% 덕분에 힘을 얻고 더 나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나는 더 이상 실패를 미워하고 성공을 갈망하지 않는다. 성공만 있다고 좋은 삶은 아닐 것이며, 20%의 성공 비율이 변한다고 해서 좀 더 이상적이고 완벽한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무언가 일을 시도했을 때 실패해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것은 숨 쉬듯 내 인생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나를 미워하지도 괴롭히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20. 07. 04. 골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