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딸아이가 친구와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왔다. 재밌었다고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걸 간신히 막았다. 얼마나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매일 보고 왔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영화가 1시간 반으로 길지 않아 잠깐 짬을 내어 보고 왔다. 그리고 신나게 딸아이와 얘기했다. 그중 기억나는 것 몇 가지다.
1. 영화 기본 컨셉이 훌륭했다.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현실에서 벗어난 애니메이션, SF와 같은 영화는 핵심 컨셉이 특히 중요하다. 1편은 여러 감정들이 캐릭터가 되어 생각과 행동을 컨트롤하고, 중요한 기억들로 가치의 섬을 만든다는 컨셉 그 자체가 훌륭했다. 특히, 감정들 모두 각각의 존재 이유가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는데 슬픔도 필요하다는 그 메시지는 수년이 지났지만 너무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다.
2편이 나온다고 했을 때, 1편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더 확장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2편에서 오랜만에 픽사는 기대에 맞게 기존 컨셉을 유지한 채 이야기를 확장하여 기억과 신념 그리고 자아의 관계를 설명한다.
철학적인 내용을 초등학생 딸아이가 쉽게 이해할 정도로 쉽게 표현했다.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구슬, 강, 뿌리, 결정체 등으로 시각적으로 보여주니 더 쉽게 정리되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시각화해주는데 재미까지 있었으니 칭찬 좀 해주고 싶다.
2. 올바른 자아상은 무엇일까?
우리는 자아상을 마치 가장 완벽해 보이는 자화상 한 장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바라는 모습만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다. 특히 어렸을 때는 더 그랬을 것이다.(물론 어른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종종 보이긴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입체적이다. 매일매일 로봇처럼 동일한 사람이 있을까? 어떤 환경에 있는지, 누가 앞에 있는지, 심지어는 내 기분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게 나이다.
조이는 안 좋은 기억들을 잊고 완벽한 자아상을 만들려 한다. 우리 모두 그렇게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옹호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생긴 자아상은 강할 수 없다. 우리는 실제로 그런 사람도 아니고, 세상도 우리를 그렇게만 살게끔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도 이상적인 나와는 어긋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결국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읽고 보는 많은 책과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부정적인 기억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자.”
피하고 싶은 기억들과 지금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그걸 피하기만 하면 진정한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반성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좋고 나쁜 기억 모두 나의 소중한 나의 기억이고, 그 모두를 겪어낸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게 진정 나를 위한 길이다.
3. 행복이란 무엇인가?
불안이에게 자리를 뺏긴 기쁨이는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이 덜 필요하게 되나 봐’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그래 보인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이겨낼 수 있을까? 더 버틸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가며 그런 걱정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살기에.
하지만 기쁨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불안만 해서는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할 수 없다.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어낸 나를 믿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야 나아갈 수 있으니깐.
어른이니깐 더 필요한 것 같다. 불안이가 상상을 통해 걱정을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상상할 필요도 없이 이미 너무나도 많은 현실을 겪었다. 그래서 더더욱 기쁨과 긍정이 필요한 것 같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앞으로 끌고 나갈 그 힘이. 항상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는 기쁨이처럼 힘들어도 슬퍼도 말이다.
그렇게 불안하지 않고 기쁨에 몰두하는 순간, 우리가 어렸을 때 가끔 느꼈던 행복한 몰입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영화의 마지막처럼 몰입하여 슬로모션으로 빛, 소리, 그 공기들 모두 생생하게 느껴지는 되는 그런 최고의 기억 말이다. 어렸을 때처럼 자주는 아니더라도 그런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는 인생이고 싶다.
나는 쉽지 않더라도, 딸아이는 그런 순간을 더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
4. 기타
빈정거림(Sarcasm)이 내 정리된 기억들을 무너뜨려버린다. 그리고 무너진 양쪽으로는 같은 말도 왜곡되어 전달이 되지 않는다. 빈정거려 내 세계를 무너뜨리지 말자. 빈정거려 상대방의 오해를 사지 말자.
불안, 질투, 지루함, 부끄러움 모두 1편의 감정들처럼 우리에게 필요하고 피할 수 없는 감정들이다. 마음에 솔직해지자.
딸아이가 관찰한 사실
"어른이 되면 기쁨이가 필요 없다고 했지만, 아빠 엄마한테도 기쁨이는 있었어. 계속 필요한 거 같아."
"기억 저편에 안 좋은 기억들이 그렇게 많은 게 신기했어. 그만큼이나 안 보려고 했는지 놀랬어."
어른인 엄마에게도 기쁨이는 있었다.
마치며
속편이 나와 철학 3부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아상(나)이 나왔으니, 집단의 자아상(우리)도 다룰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추억할머니를 쓰는 걸로는 영화를 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더 큰 차원에서 우리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픽사가 한번 더 쉽고 재밌고 아름답게 풀어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에게 ‘나’의 감정과 기억, 그리고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통해 더 나은 사람과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영화로 대신 설명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