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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Jul 16. 2024

초조하게 태연하였습니다.

컴퓨터 책상들 사이

오늘 5시까지 완성해서 전달해 주세요.


뒷 목에 전기신호가 왔다. 항상 뭉쳐있는 곳에 이럴 때 스위치가 꼭 켜진다. 갈비뼈가 심장의 무게를 잰다. 눈이 더 커지면서 조명 모양을 알게 되었다. 무릎 아래에서 정강이를 지나 엄지발가락까지 이어진 통로에 벌레가 지나간 느낌이다. 다리가 무겁다. 발을 올려 책상 아래 걸어본다. 정맥이 더 튀어나왔을 것이다. 


고개 돌려 밖을 본다. 옆 건물도 생긴 게 똑같다. 창문마다 붙은 철제 프레임은 동물원을 떠올리게 한다. 철망 뒤 동물의 눈빛이 떠오를 듯 말 듯하다. 호랑이였을까? 토끼였을까? 표정은 다 비슷했다. 먹이를 주려하자 철망에 얼굴을 붙이고 입만 그 사이로 내밀었다. 얼굴이 아프지 않을까. 뚫린 철망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비는 느끼겠지. 그렇다고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은 아니겠지만, 밖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까. 


여기는 다르다. 원하는걸 줄 사람도, 입이라도 내밀 틈도 없다. 창문 없이 시스템으로 공기가 순환되는 건물. 나 하나 없어도 아무 일 없을 시스템. 그 사람이 마시는 공기마저 시스템이다. 폐소공포증은 없는데, 이 큰 건물에 창문 하나 없다 생각하니 숨을 가빠온다. 바깥을 느낄 수 없게 하고 싶었을까? 나갈 생각도 안 들게 하고 싶었을까? 의도는 없었겠지. 다만 그 결과는 생존과 돈과 효율이 만나 스스로 만든 철망이자 시스템이다. 


많이들 안쪽 창가 자리를 기피한다. 복도에 가까우면 자리를 비우거나 일찍 퇴근할 때 티가 덜 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창가 쪽에 앉을 수 있었다. 건물들 사이 멀리로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좋았다. 그 틈을 열심히 찾아 그 흔들림을 눈에 담으려 한다. 오늘따라 바람도 없다. 


시선을 살짝 내려본다. 나와 같은 자리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아니 보이는 모두가 똑같이 모니터를 보고 있다. 정확히는 나 빼고 모두가. 15미터나 떨어져 있을까. 무엇을 하는지, 책상 위 뭐가 있는지 다 보인다. 아파트라면 프라이버시 보호가 안되어 사람들이 살고 싶지 않았겠지. 하지만 얼마 전 다녀온 신축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돈을 많이 준다면, 더 벌 수 있다면, 프라이버시는 덜 중요할 수도 있지.  


위를 본다. 햇빛에 눈이 부셔 잘 보이지 않는다. 저기에선 내가 잘 보이겠지. 지그재그로 연결된 잠망경이 그려진다. 위에서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은 내려다보는 그런 구조. 나는 몇 번째일까? 아래쪽에 가깝겠지. 문득 그 위치를 재고 있는 내가 싫다. 무슨 의미라고. 거대한 잠수함에서 하늘을 직접 보는 건 맨 위층 하나일까. 수많은 사람은 굴절된 빛을 보며 꿈만 꾸겠지. 하지만 단 한 명의 꿈만 유의미할지도. 


이어폰이 꼽혀있었고,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재즈 노래의 트럼펫 소리만 더 크게 들린다. 그 울림 하나하나가 긴장된 근육들을 자극하는 전기 신호 같다. 어렸을 적 실험할 때 썼던 싸구려 고무 집게들. 빨간색 집게와 파란색 집게가 양쪽 어깨뼈 위 살을 집고 있을 것 같다. 그 악어 이빨 같은 집게가 물고 있다면 피가 나고 있을 것 같은데. 서늘한 쇠감촉이 느껴질 것 같다. 


숨을 크게 내쉰다. 가슴도 펴고 목도 조금씩 늘려본다. 마시다 남은 커피는 물과 가루가 분리되어 보인다. 커피 향과 타는 향은 차이가 뭘까. 귀찮게 나가지 않고도 자리에서 마시는 연기 맛일까. 액체를 입에 부어본다. 맛이 안 느껴진다. 미지근한 시원함이 내려간다. 이 정도 온도 물에 둥둥 떠있고 싶다. 계속 부어보면 내 몸이 액체가 되어 흘러 어딘가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증발되어 사라질 수도 있을까.



“K님은 이런 일이 갑자기 생겨도 스트레스 안 받으시나 봐요.”


그래 보이나 보다. 그래 보인 다고 한다. 심지어 그 옆에서는 ‘와 역시 평온하시네요...’라고 까지 한다. '틀리다고, 아니라고, 이런 미친 생각들을 하면서도 일하는 척하고 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래서 결국 조용히 웃고 만다. 또 그렇게 보이는 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점일 수도 있으니까. 




그땐 말 못 했는데 이제 얘기할게요. 속여서, 대답 안 해서 미안해요. 사실은 저도 똑같이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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