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의 기록
눈치 빠른 와이프가 여행지에서 존댓말 하는 한 쌍의 남녀를 발견했다.
이곳 제주에서 만난 듯한 둘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남자는 여자에게 하루 더 제주에서 놀다 가자고 하는 걸 보니 돌아가면 만나기 어려운가 보다.
여자가 알아보겠다고 말하고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말없이. 비행기 편만을 보는 건 아닌 거 같다. 노란색 카톡 화면도 보았다가 대화도 했다가.저 청춘에서 딸보다 더 거리가 먼 우리 부부는 흥미진진하게 관찰한다.
남자는 기다림에 지쳤는지 곧 전자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초조해 보이기도. 화가 나 보이기도. 자갈밭과 바다, 하늘을 번갈아 본다. 그리고 크게 한숨도 쉰다. 무엇에 대한 좌절감인지 직감적으로 알 것 같긴 했다.
나는 저런 상황이 없었으면 하지만 뭐 있었겠지. 와이프는 말없이도 나를 놀리는듯하다.
자리로 돌아온 남자지만 아직 여자는 분주히 핸드폰만 만지고 있다. 이내 여자가 “하루 더 있어보기로 했어요.”라고 하자,
세상의 다 가진 듯한 남자는 우리가 맛집이라 찾아온 이곳에서 반 이상 남긴 채 계산하려 한다. 비포선라이즈는 현실에서 자주 홍상수를 만나는 듯하다.
둘이 이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길.
제주도를 떠나더라도 뒤에 영화 같은 이야기가 이어지길.
그 부끄러운 영화 같은 시절 나를 기억하는 와이프가 내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짓는다.
놀리는 것 같아 이죽거리면서도 내 입도 그 미소를 따라간다.
지나가는 풍경에 같은 추억을 기억하는,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우리 신경도 안 쓰고 말하던 딸아이가 자연스레 우리 손위에
그 작은 추억을 하나 더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