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이야기
둘은 비슷한 듯 다르다. 그래서 협업하기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종종 더 어렵다.
처음 PM으로 서비스 기획을 할 때였다. 조직장은 기획의도를 유관부서에 잘 전하려면 UX설계서 수준의 기획안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어떤 부서라면 글 몇 줄로 끝날 수도 있는 기획안이었을지도. 하지만 그때는 파워포인트로 사용자가 볼 화면을 그려가면서 그 안에 정책까지 모두 정리하였다. 물론 Ctrl C + Ctrl V로 그 많은 장들이 만들어졌지만, 케이스들과 정책들을 이해하려 유관부서는 백장 넘게 자료를 읽어야 했다.
사용자의 시각을 생각 않고 만든 서비스는 의미가 없다. 미리 화면으로 PM이 생각한다면 올바른 방향의 단단한 기획이 가능하다. 나와 와이프에게 이 시절 일하며 배운 시각과 경험들은 지금의 깊이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긴 하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조직은 PM과 UX디자이너가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데 PM이 UX설계와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면 UX디자이너가 할 업무를 한번 더 하게 된다. PM은 중복된 일을 하느라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퇴근과 함께 빼앗겼다. 이는 회사 관점에서도 리소스의 아쉬운 활용이다.
디자인 팀도 불만이 많았다. PM의 기획안에는 UX설계가 이미 정답처럼 반복해서 보였다. 레퍼런스라고 하기에는 정책이 다 포함된 화면이었으니, 나라도 같은 화면을 수십 장 보고 나서 다른 안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디자인팀의 리소스도 잘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PM은 UX디자이너에게 어떻게 기획안을 전달하는 것이 이상적일까?
1. 화면은 그래도 그려보자. 단, 꼭 전달할 필요는 없다.
사용자의 화면을 생각하지 않고 기획하면 자칫 실 사용과 거리가 먼 기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컴퓨터 화면이 아니더라도 종이에 스케치라도 해보면서 기획 내용을 정리해 보자. 말로만 적던 기획을 막상 직접 그려보면, 사용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이 맞는지 또는 요구사항들이 상충되지는 않는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2. 기획의 목표와 제약사항을 사용자 관점에서 명확하게 얘기해 주자.
UX디자이너에게는 어떤 경험을 중요하게 사용자에게 전달할지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핵심 유저 시나리오로 대표되는 기획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전달하자. 그리고 고려해야 할 필수적인 제약사항을 알려주자. 어떤 UI적 요소나 Flow를 사용할지는 그들이 생각할 수 있게 하자. 그래서 제약사항하에 기획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디자인팀의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하자.
3. 내가 그린 화면보다는 레퍼런스를 전달해 보자.
화면을 그리기 위한 툴도 많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기도 너무 쉬워졌다. 보통 기획에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한 내부 보고 목적으로 이미 화면이나 프로토타입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디자인팀의 창의성을 위해 내가 그린 화면보다는 유사한 레퍼런스를 전달해 보자. 해답지가 아닌 내가 본 참고서를 주고 그들이 답을 내게 하자.
지금도 내 이전 조직은 PM과 UX디자인 업무가 나뉘어있다. 내가 경험한 또 다른 조직에서는 상위기획만 나뉘어있고 PM과 UX디자인 업무는 한 사람이 했다. 그리고 어떤 조직은 UX/UI를 한 사람이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획, UX디자인, UI디자인 업무들은 어떻게 나뉘는 게 이상적일까?
이전에는 Figma와 같은 툴도 없었기에 분업화된 존재가 더 유의미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문서로 누군가는 설계도로 누군가는 개발팀에 전달할 그래픽 리소스로 결과물을 만들어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Figma와 같은 툴로 위 결과물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것은 툴이 더 발전하여 한 사람이 기획부터 UX/UI설계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여러 툴들과 라이브러리들이 UI디자인의 장벽을 많이 낮춰줬으며, 앞으로 AI가 나의 부족한 색감과 같은 디자인 능력도 채워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UI디자인은 미적인 영역에 가깝다. 반면에 기획과 UX디자인은 모두 사용자 관점과 비즈니스적 이해가 동시에 필요하다. 그리고 둘 다 로지컬 한 영역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기획과 UX설계를 한 사람이 진행하고, UI디자인은 전문가가 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난 프로젝트 내내 열심히 싸웠고 서로 욕도 많이 했던 PM이 문득 떠오른다. 조직이 그렇게 나뉘어있어 서로의 사정을 알면서도 모른 채 링 위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 PM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이렇게 적어보니 문득 궁금하다.
당신의 조직은 어떻게 나뉘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