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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Jul 22. 2024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디자인 이야기

큰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를 하다 보면 가끔씩 없었으면 싶은 단어가 있다.


일관성.
간단히 말해 여기에서의 사용 방법이 저기에서와 사용 방법과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글에서 일관성이 왜 의미가 있는지 써보았다.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지만 정리해 보니 장점도 꽤 있었다. 우리 모두의 이른 퇴근과 행복한 가정 너무나 좋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기존 원칙을 찾아 붙이는데 내 삶을 쓰고 싶지는 않다. 생각하는 것이 업인 사람에게 생각을 못하게 하는 제약은 너무하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일관성을 ‘고집’하는 경우의 단점들이다.



1. 목적보다 수단(일관성, 원칙)이 중요할 수 없다.

모든 서비스는 사용자가 가장 많이 해야 하는 핵심 시나리오가 있다. 그리고 디자인은 그 시나리오를 자연스럽게 유도하여 더 많은 사용자가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종종 서비스의 목표와는 무관하게 기존 원칙과 일관성만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있다.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기획자로서, 좋고 통일되어 보기 좋은 디자인이 핵심 시나리오로의 달성을 조금이나마 방해하는 경우를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전 회사는 팬시함보다는 기능 중심의 서비스들을 주로 내놓았다. 그래서 모바일 OS들의 기본 인터랙션을 최대한 따르자는 주의였다. 리스트 아이템의 경우, 터치하면 하위 뎁스로 이동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다른 앱들의 경우에도 모두 동일했다. 나의 프로젝트는 사용자가 목록을 보면서 빠르게 특정 아이템을 실행하는 것이 디자인이 달성해야 할 목표였다. 나는 그 실행을 최대한 하도록 우측과 같이 인터랙션을 바꾸었다.



“이 화면 결국 리스트 화면인 거죠? 이렇게 실행되면 원칙에 안 맞는데요?”

검증팀이 말했다. 내가 원칙에 맞추면 사용자들이 실행하기가 너무 불편해진다고 말했고, 검증팀은 이해는 된다고 하지만 원칙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불편하더라도 원칙에 맞아야 통과할 수 있다고 했다. 일관성에 맞지 않으면 결함으로 잡지만, 쓰는데 불편한 것은 결함이 아닌 듯했다.


잘 못쓰더라도 정말 원칙이 더 중요한가요? 세상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써야 이 서비스가 내년에도 있을 것이고, 그래야 우리의 일도 자리도 내년에 있는 거 아닐까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그들도 팀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라 말하지 않았다. 아니면 일관성에도 맞고 쓰기에도 편한 것을 찾으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2. 기존에 정답이었던 것이 지금도(이 상황에서도) 정답은 아니다.

바로 실행을 하게 하기 위해서면 버튼을 주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어떤 옵션을 켜기 위해서 제일 직관적인 방법은 On/Off를 제공하는 것이다. 몰랐던 것 아니다. 다만 그 원칙을 따라보면 아래와 같이 지저분해진다. 같은 정보를 불필요하게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를 On 하면 다른 것이 Off 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스위치도 자동으로 변경되어 직관적이진 않다. 하지만 원칙에 따른다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오고, 이는 모두가 반겨할 일관된 안이다.



이 방안이 이 상황에서도 정답일까? 사람들은 모두 이 스위치에 익숙하고, 그래서 정답일 수도 있다. 더 고민을 해보더라도 돌고 돌아 가장 기본이었던 안이 결론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불편한 문제는 그 과정 없이 가장 쉬운 답, 가장 우리 모두가 마음 편안한 답을 정답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더 나은 안이 있을 수도 있는데, 어차피 찾아도 소용없을 테니, 정답이라고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3. 이미 사용자들은 웬만큼 다 알고 있고, 더 학습시킬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지 10년이 넘었다. 터치로 할 수 있는 인터랙션은 이제 남녀노소 모두 익숙하다. 선택이 되었다면 인터랙션이 있을 것이고, 한 단계 더 뎁스가 있다면 바로 진입을 할 수 있다. 그래도 원하는 결과를 못 얻는다면 꾹 눌러보거나 다른 명시적인 버튼이 있는지 찾아볼 것이다. 복잡한 것 같지만 이게 전부이다.


우리는 한 명의 사용자만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러므로 1초, 3초 이 작은 시간도 그 시간들의 총합을 고려하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핵심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고, 그 외 부가적인 기능을 찾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과연 그게 문제일까? 스티브 잡스가 개발팀을 닦달하여 줄여낸 시간은 모두에게 필수적인 부팅시간이었다.


또한, 조금 급진적으로 생각해 보면 조금 헷갈리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전 화면으로 돌아가기는 너무 쉽다. 게다가 수많은 앱들을 전환해 가며 사용하는데 인터랙션의 일관성이 무슨 의미겠는가? 우리 앱들만 쓰는 사용자가 아니다. 그 논리라면 우리는 자사의 서비스들이 아닌 카카오톡과 유튜브에 일관성을 맞춰야 한다.


결국 내 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일관성을 일부 무너뜨리는 정도에서 모든 유관부서가 협의를 보고 진행했다. 물론 진행하는 과정에서 계속 일관되지 않는다는 내부 VOC는 여러 방면으로 계속해서 들어오고 보고도 수차례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미미하지만 일관성이라는 장벽에 균열이라는 레퍼런스를 남기긴 했다.




4. 그래도 더 좋은 디자인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문제집 마지막 답지를 먼저 본다. 문제를 잘 풀고 싶은가? 아니면 그 봤던 풀이대로 따르고 싶은가? 빨리 목표에 다다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도달한 게 원래 우리의 목표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곧 AI가 말 몇 마디면 화면과 인터랙션을 다 만들어줄 것이다. AI에게 맡기면 훌륭한 레퍼런스들을 찾아 아주 일관된 결과물을 보여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방식대로 일하면 우리가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UX디자인을 만들기 위함이라면, 아직 우리에게 할 일은 있다. 핵심가치를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한 관점에서 우리가 ‘일관성’이라는 제약으로 스스로 이 경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레퍼런스를 잘 찾는 AI라지만 잠시나마 우리가 설자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

지금은 맞고 다음엔 틀릴 수 있다.

지금은, 다음에는, 쉬운 길이 아닌 길을 걸을 용기와 힘이 남아있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 빨리 퇴근하더라도 그 결과가 하향평준화는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확한 디자인을 다 언급할 수 없어 대략적으로만 넣었는데, 이해가 어려웠다면 양해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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