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이야기
큰 회사에서 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도 없이 듣는 단어가 있다.
일관성.
간단히 말해 여기에서의 사용 방법이 저기에서와 사용 방법과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일관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나는 일관성 또한 하나의 제약처럼 느껴진다. 왜 일관성을 벗어나야 하는지 쓴다면 할 말이 훨씬 많다. 하지만 일관성이 의미가 없다면 쓰이지도 않을 것이니, 싫더라도 왜 중요한지 먼저 이야기해보려 한다.
일관성을 따랐을 때의 장점 1.
어딘가 신호등이 보라색과 핑크색만 있는 나라가 있다고 하자. 길을 건너려면 검색을 하든 물어보든 운에 맡기 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지구 어디에도 빨간색은 ‘정지’고 초록색(간혹 파란색)은 ‘가도 된다’다. 이런 공통된 규칙은 어느 나라에서도 학습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신호등처럼 사람들이 규범으로 생각하는 디자인은 설명이 필요 없다. 런칭 후 데이터로 확인한 것은 신규 기능도 일관성에 맞춰 디자인을 적용한 경우, 추가적인 설명 없이도 사용률이 점진적으로 상승했었다.
그래서 레퍼런스가 중요하다. 레퍼런스는 단순히 ‘좋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험을 사람들이 어떤 디자인으로 경험하는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활용하여 더 적은 비용으로 사용자를 학습시킬 수 있으며, 다른 디자인을 차용했을 때 사용자가 느낄 혼란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럼 어디까지 일관성을 맞추면 학습 비용이 절감될까? 일관된 디자인을 제공하는 범위를 대략 나누어 봤다.
1) 글로벌한 규격과 같은 디자인 경험 (탭, 롱프레스, 스와이프 등)
2) 한 OS나 플랫폼 내에서 동일하게 사용하는 디자인 (Android, iOS 시스템)
3) 우리 회사 서비스들에서 동일하게 사용하는 디자인 (여러 앱을 제공하는 제조사, 통신사들의 앱)
4) 한 서비스 내 여러 화면에서 동일하게 사용하는 디자인
당연하게도 1)에 가까울수록 일관성을 맞췄을 때 이득이 크며, 반대는 작다. 그래서 1)과 2)의 경우 일관성을 최대한 따르는 게 당연히 이득이다. 그런데 3)과 4)는 좀 애매하다.
3)의 경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우리 회사 A 서비스 사용자가 우리 회사 B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어 할까?
2. 앞으로 우리 회사는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인가?
토스, 카카오의 경우, 신규 서비스 런칭 시 사용자가 검색이나 메인 서비스의 경로를 통해 사용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신규 서비스에도 일관된 디자인을 활용해서 사용자들을 소프트랜딩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패밀리 서비스 개념이 적거나 서비스를 확장하지 않는 회사라면 일관성을 따르는 게 의미가 적다. 안타깝게도 전 회사는 서비스를 줄여가며 선택과 집중으로 전환해 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존 일관된 디자인 원칙은 남아 있어 내부적으로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논의가 빈번했다. 개인적으로는 규모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일관성을 덜 지켜도 된다 생각하지만.
4)의 경우, 꿈보다는 현실을 봤으면 한다.
앱 안에서 일관된 경험은 당연히 좋다. 앞으로 우리 앱은 승승장구하고 다른 서비스로도 확장할 것이기에 초기부터 베이직 원칙을 만드는 것도 이상적이다. 하지만 모든 비즈니스는 비용대비 효과이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일단 비용을 최소화하고 돈이 벌려야 디자인도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초기라면 일관성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는 잠시 미뤄두고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일관성의 경우, 한 가지 또 큰 장점이 있다.
일관성을 따랐을 때의 장점 2.
디자이너가 반복된 고민을 하지 않고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절감된다. 내 동료들의 지난 역사적인 판단을 믿는다면, 그 많은 아군을 등에 업고 공격을 덜 받을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중간 이상의 결과는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보고를 진행할 때도 프리패스를 받고 시작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편하다면 퇴근도 빨리할 수 있는데, 굳이 고민을 해서 뭐 하겠는가.
개발팀과 검증팀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디자인을 위해 개발된 코드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개발자는 기존 코드를 검색해서 쓰면 된다. 검증자도 한번 검증해 봤던 시나리오면 간단히 검증을 진행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일관성을 어기는 새로운 방식을 가져왔다고 생각해 보자. 나 같아도 퇴근시간 걱정을 하며 아이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걸 꼭 이렇게 해야 하냐고 물어볼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장점이 너무나도 좋아 보인다. 빨리 퇴근하는 건 우리 모두의 바람이니까.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관성에 대한 무조건 적인 칭찬이 아니다. 정답이 이미 있다면 디자이너가 필요할까? 적절한 판례를 잘 찾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일까? 다음 글에서는 일관성을 반대하는 것에 대하여 개인적인 감정을 가득 담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