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이야기
“UX가 중요하다.” “디자인 중심의 프로덕트가 되어야 한다. “
이런 말들이 서점의 진열대와 많은 글들에서 보이기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다. 이제는 너무 당연해 더 이야깃거리도 안 되는 듯 하지만.
나와 와이프는 15년 가까이 서비스 기획, PM, UX디자인 업무를 해왔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하다 만났고, 그 이후로는 각각 10여 개의 프로젝트들을 해왔다.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설명을 길게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이상하게도) 집에서도 일 얘기하는 게 싫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 대화들은 자연스레 일에 대한 철학이 되었고 기준이 되었다. 여기에 하나씩 정리해두려 한다.
먼저 가장 뿌리가 되는 질문이다.
“어떤 UX디자인이 좋은 UX디자인인가?”
좋은 UX디자인의 세 가지 원칙
1. 쓰기 쉬워야 한다.
2. 예뻐야 한다.
3. 지속가능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은가? 모두가 아는 이야기 맞다. 하지만 직접 만들다 보면 생각보다 잘 지키기 어렵다. 하나하나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무엇이 쓰기 쉬운 것인가? 정의부터 해보자.
사용자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핵심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1) 사용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전지전능한 기획자이자 디자이너이고, 세상에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만드는 사람 기준에서 쉬움을 판단한다. 하지만 나도, 우리의 상사도 아닌 우리의 핵심 고객 집단이 쓰기 쉬워야 한다.
2) 사용자의 노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용자가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시간과 그 단계를 가능한 최소화 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많은 선택지나 고민거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
3) 핵심 목적에 다다르는 그 경로는 가장 쉬워야 한다.
서비스가 제공하는 모든 기능이 쉬울 수는 없다. 하지만 Key User Scenario만큼은 쉬워야 한다.
말로 정리하면 어렵지 않다. 그리고 제약사항이 많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디자인이 위 정의에 맞게 최선인지 반드시 스스로 질문해보았으면 한다. 나도 어느 순간에 내 관점에 너무 치우치거나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실제 예시를 들어보며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얘기해 보겠다.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제약사항들과 싸우는지도 같이 얘기해 보자.
예쁜 디자인이라 하면 화려한 요소와 유려한 효과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효과가 아니다.
사용하기에 편안하고 또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들도록 예뻐야 한다는 뜻이다.
사용자들이 모두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도 화면 내 정렬이나 UI요소들의 사이즈가 안 맞으면 꼭 집어내기는 어려워도 쉽게 불편함은 느낀다. 그리고 이 불편함은 장기적으로 우리 프로덕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섬세하게 작업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다. 대표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폰트 종류와 크기
중앙 및 좌우 등 정렬
줄간격
색상 조합
UI 요소들의 비율
요즘은 디자인 시스템과 툴(피그마, 스케치 등)들이 정말 좋아졌다. 그래서 나처럼 미대가 아닌 사람도 레퍼런스와 라이브러리들을 활용하면 어느 정도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 물론 그 이상 예쁘게 만들고 싶으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친환경이나 지구를 지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프로덕트의 가치를 얼마나 오래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용주나 회사 모두 유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데부터 출시하고 운영하는데 모두 비용이 발생한다.
디자인도 이러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유의미한 가치가 있더라도 오랫동안 제공할 수가 없다.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다음을 고려해서 디자인되어야 한다.
- 개발비용을 과도하지 않도록
- 운영비용이 과도하지 않도록 (특히, 지속적으로 사람 손으로 운영할 요소는 없는지)
- 업데이트 시 개발/운영 비용이 과도하지 않도록
나의 첫 프로젝트는 수익 목적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많은 지원이 있었으며, 다양한 기능을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사용자를 모집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수익도 없는데 마케팅 비용도 많이 썼다. 심지어 해외 홍보까지 했으니.) 하지만 곧 회사 기조가 바뀌어 지원이 줄었고, 뒤늦게 시도한 개편은 실패했다. 결국 일부 정말 잘 사용하는 사용자가 존재했음에도 서비스를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구조적인 고민은 당연히 디자이너만이 아니고, 기획, 개발, 운영 함께 고민이 필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간혹 이런 고민은 본인 몫이 아니라고 하는 디자이너들도 보았다. 하지만 내 프로젝트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디자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내 첫 프로젝트도 처음부터 디자인이 심플했었다면, 아니면 이후에 업데이트가 쉬운 방식으로 디자인을 해두었다면 조금이나마 더 오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최대한 간단히 좋은 디자인 원칙을 정의해 보았다. 각 항목들에 대해서는 실제 예시와 함께 다른 글로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브런치 내에는 우리 부부보다 더 훌륭한 기획자들과 디자이너 분들도 많을 텐데, 그분들이 제가 놓친 부분이나 틀린 부분도 함께 지적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