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이야기
두 서비스를 비교해 보자. 어느 서비스가 더 좋은 서비스일까?
1) 5년 전 정부의 주민등록등 인터넷 출력 서비스
2) 동영상으로 실착 모습을 볼 수 있는 의류 쇼핑몰 서비스
디자인에 대하여 어떠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했다. 적어두었던 노트들을 다시 훑어도 보고, 글감이라 모아둔 메모들도 봤다.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떠한 것이 좋은 디자인이고, 어떻게 하면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을지 그런 이야기들. 하지만 그전에 꼭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왜냐하면 좋은 디자인으로만은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좋은 서비스’를 ‘보기에’ 좋은 서비스로 착각한다. 아니면 사용하기에 쉽거나 기능이 많은 서비스를 좋은 서비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라면 더 많은 디자인적인 요소가 있을 쇼핑몰 서비스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사용하기 어렵고 문서 한 장을 뽑는 데까지 속이 터져서 여러 번 ‘악’ 소리를 지르더라도 1번을 선택하겠다. 그 이유는 명쾌하다.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명확한 가치를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인터넷 문서 출력 서비스가 제공하는 가치는 명확하다. 사람들이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필요한 문서를 발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가치가 너무 크기에 사람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욕을 하더라도 이 서비스를 사용했던 것이다.
만약 다들 욕을 하면서도 쓰고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가장 확실한 가치를 주는 서비스일지도 모른다.*
2번 쇼핑몰의 경우,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는 가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객들이 더 생생하게 옷을 입은 모습을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와 같은 그런 이유 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느낌 아닌가? 내가 삐딱한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기존 쇼핑몰들은 옷을 구매 전에 확인할 수 없는가? 이미 앞, 뒤, 옆 등 여러 각도의 사진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리뷰 사진들도 있다.
그럴싸한 문장의 가치보다는 차별화되고 구체적인 가치가 필요하다.
기획자로서 힘들었을 때는 협업하기 힘든 유관부서를 만났거나 개발/비용적인 제약 사항이 너무 많았을 때가 아니었다. 내 서비스가 어떤 가치를 주는지 설명하기 어려운데도 추진해야 했던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 나라고 그 가치가 내가 만든 그럴싸한 문장일 뿐인 것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것이라도 믿는 척 스스로를 속이며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으면 추진할 수가 없었다.
또한 디자이너로서 힘들었을 때도 이 서비스의 디자인을 아무리 좋게 해도 가치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때였다. 최선을 다해 세상에 둘도 없이 편한 의자를 만들었는데, 횡단보도 한가운데라 앉을 필요 없이 지나가야 하는 곳에 있는 의자인 느낌일까. 누구도 이런 의미 없는 일에 시간과 능력을 낭비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횡단보도 의자와 같은 극단적인 설치예술 같은 예가 아니더라도 그 가치가 너무 작아 노력들이 무의미해 보이는 경우도 많다. 아니면 기획자 스스로도 그 가치가 가늠이 안되어 뜬구름처럼 가치를 포장하는 경우도 많다. 기획자라면 스스로 물어보자. 이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분명한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디자이너라면 기획자와 이야기해 보자. 내가 좋은 디자인으로 사용자에게 잘 전달할 가치가 무엇인지.
만약 없다면, 쓸데없는 노력부터 쏟기 전에 그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짚고 가는 게 맞다. 결국 위에서 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라도 일단은 말이다.
물론 모든 서비스가 등본출력처럼 확실한 가치를 가지고 시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어야 되는 걸까? 이 부분은 다른 글로 이어서 이야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