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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Jul 05. 2024

기획자 출신 UX디자이너입니다.

디자인 이야기

“네가 디자인을 한다고? 너 전공 경영아냐?”
“너 마케팅 부서로 입사한 거 아니었어?”
“대기업이면 디자이너라도 외주관리인거지? 네가 직접 안하지?”


    오랜만에 보는 지인에게 디자인을 한다 말하면 보이는 반응들이다. 그렇게 이상할까 싶다가도, 매번 같은 질문을 듣다 보니 이게 정상인가도 싶다. 어찌 보면 이 의문들에 제대로 대답하는 것이 내 선택이 옳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글이 될 것 같다. 이 글은 이력서는 아니니, 과장하지도 감추지도 않으려 한다.



1. 저는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수학에 자신이 없는 나는 문과를 갔고, 문과는 돈이나(경영, 경제) 인문학을 연구하는(문학, 사학, 심리학 등) 전공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좁은 내 세상에서는 다양한 길들이 보이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스무 살의 난 책에 파묻혀 연구하는 것은 따분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고시처럼 또 다른 시험을 보는 것은 반항심과 놀고자 하는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경영학은 그나마 실용적이고 덜 따분해 보였다. 이러한 고민보다 다들 당연하게 생각하는 선택이라는 게 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전공이 결정되었다.


    경영학을 배우면서도 시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별로 흥미를 갖지 못했을지도. 학회도 참여하고 경영학 내 다양한 과목들을 공부해 보았지만 특별한 흥미를 끄는 것이 없었다. ‘어떤 회사에 취업을 하면 돈을 많이 받는데.’, ‘어떤 커리어 패스를 따라가면 더 빨리 성공한대.’와 같은 이야기도 내 주의를 끌지 못했다. (문득 이런 나와 결혼해 준 와이프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다.) 그나마 기억에 서비스 기획 수업이 기억에 남고 프로젝트도 즐겁게 하였지만, 이 또한 어떻게 이어질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평범한 제너럴리스트는 졸업하고, 대기업에 마케팅 직군으로 취업하였다.



2. 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하였습니다.


    커리어는 모바일 서비스 기획으로 시작하였다. 수년간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매니징 하면서 이력서 소제목 타이틀도 몇 줄 뽑아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먼 미래를 생각하며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것도 즐거웠고, 다양한 팀 간에 사람들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것도 분명 즐거웠다. 불가능해 보여도 사람들과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면 신기하게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고, ‘이걸 이렇게 쓴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도 지구상 어디엔가 존재했다. 하지만 계속 한 가지의 갈증이 있었다.



내가 직접 보이는 실물을 만들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손과 머리를 거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손으로 눈에 보이는 그 실체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사람 한 명 한 명이 화면을 터치하고 스크롤하고 입력하기를. 그러던 중 디자인팀에서 사내 직무전환 기회가 있어 신청하였고 이동하게 되었다.



3. 이제는 디자인의 재미를 알고 직접 한 땀 한 땀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입니다.


    카운터파트로 디자이너들이 일하는 모습과 결과물을 가까이서 많이 보았다. 하지만 직접 하는 것은 너무도 달랐다. 문서 작성 방법, 사용하는 툴 그리고 일하는 프로세스까지 모두 달랐다. 게다가 디자인은 사용자를 마주하는 프로젝트 전체의 최전선이기에 매우 작은 부분까지 섬세한 확인이 필요했다. 당연히 쉽지도 않았고, 적응하는데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일 자체에 두 가지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1. 먼저 디자인은 생각보다 더 논리적이다.


    언뜻 생각하면 디자인은 미학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심지어 색상과 그래픽마저도 논리와 이어진다. 오히려 기획 업무가 비논리적인 경우가 많다. 말이 안 되는 요구사항도 미래를 빌려와 우겨야 한다. 나 스스로도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걸 말해야 했다. 하지만 디자인은 회사 밖의 사람들로 하여 말이 된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쓰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탄탄한 논리의 디자인은 외부 영향을 그나마 적게 받는 것 같다. (물론 회사인터라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2. 디자인은 사용자를 직접 마주한다.


    내가 버튼을 만들면 그들은 눌렀고, 내가 입력창을 만들면 그들은 입력했다. 나의 디자인이 맞았다면 내 의도대로 사람들은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이동하며 사용했다. 그 결과는 엑셀파일의 숫자와 Flow Chart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가설의 논리가 증명되는 순간 입꼬리가 안 올라갈 수 없었다.


    이런 매력들을 느끼며 디자이너로서 적을 둔지 벌써 7년이 지났다. 아직도 디자인 그 자체로 너무 재밌고 좋다.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도 많다. 기획자이자 비전공자 디자이너로서 다른 사람들과 약간은 다른 시선으로 할 이야기가 많다. 그런 이야기들을 써보려 한다. 앞으로도 계속 디자인을 할지, 지금까지 이어진 길이 어떤 곳으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이참에 한 번은 정리해 두어야지. 그리고 이 글을 보고 누군가와 함께 얘기까지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고.



    하나 욕심이라면, 또 다른 의문을 사람들에게 만들어주고 싶긴 한데… 벌써부터 귀에 ‘여보 괜히 또 있어 보이는 척하려고 하지 마요.’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니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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