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일간 Aug 06. 2024

패스받아주세요. 우리 같이 하이라이트 찍어요.

짧은 생각의 기록

농구공을 바닥에 강하게 밀어 본다. 기분 좋은 울림이 들려온다. 신나는데 과하거나 거슬리지 않는 비트. 어느 노래에서 들어봤을까. 내 몸도 이어 울린다. 심장은 잠시 후 비슷한 소리를 낸다. 정수리까지 그 수축이 느껴진다. 잠시만 더 지금 기분을 느끼고 싶다.


앞사람도 내 기분을 느끼고 싶은가 보다. 내 손에서 떠나간 공을 바라보는 눈에 시선이 간다. 내 손에 다시 공이 돌아오기 전 비트를 바꾸고 싶겠지. 한번 더 공을 밀면 뺏길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움직이거나 공을 건네거나.


어려서부터 운동을 못했다. 농구는 좋아했다. 못하는 게 괴로울 만큼 좋아했다. 고마운 친구들은 이 못하는데 좋아하는 것을 매일 함께 해주었다. 친구이기에 마지못해 해준 친구부터 나만큼 농구를 좋아해서 해준 친구까지. 그 친구들이 어디 끼어들기 힘든 나를 데리고 매일 같이 함께 해주었다.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를 제치는 건 침대 위 천장으로만 볼 수 있다. 공을 건네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계속 움직이는 사람들 중 공을 건넬 친구를 찾는다. 이 공을 주시하는 시선들 사이를 비켜나갈 수 있는 그 길을 찾는다. 그러다 한 친구의 시선과 일직선으로 만난다.   


공을 건네어주고 달린다. 앞에 있는 사람을 비켜서 사람이 적은 곳을 찾는다. 한쪽으로 갈 것처럼 한걸음 갔다가 반대로 몸을 기울여 앞으로 튀어 나간다. 다행히도 골대까지 내 앞에 사람이 없다.



공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냥 달리고 있다.

공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믿어본다.

그 순간 앞으로 공이 날아온다. 나와 저 골대 사이로.



믿었던 결과가 항상 이어지진 않는다. 그럴 거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올바른 길을 간다면 그걸 알아주고 언젠가 나에게 다시 공을 건네줄 거라 믿는 것이다.


내가 못 봤던 어떤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상대방이 공을 빼앗거나 친구가 공을 실수로 놓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내가 잘 움직인다면 열 번 중에 한 번이라도, 아니 오늘 하루 중 한 번이라도 완벽한 호흡의 그림 같은 하이라이트를 만들 수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열명이 계속 자리를 바꾸는 이 공간 위에서 서로의 믿음으로 끈을 만든다. 이 끈은 공이 그물을 통과한 이후에도 가슴을 잠시간 두근거리게 하고, 고무줄처럼 줄을 당겨 서로 손뼉을 마주치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수축된 고무줄은 다시금 어느 순간에 가슴을 다시 두드리며 희열을 느끼게 한다.


오늘도 경기는 졌다.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하지만, 그 고무줄 같은 두근거림을 오랜 친구와 함께 또 하나 기억에 남겨 놓는다.




무릎은 양쪽이 다른 종류의 통증으로 아프고,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반영구적으로 탈골되어 있다. 게다가 몸에 크게 무언가가 생겼다 사라짐을 겪은 나는 좀 무리하면 잊지 말라는 듯 그 부위가 저려온다. 저녁 9시만 되면 아파트 뒷문에서 만났던, 그 끈을 같이 쌓던 친구는 이제 아예 농구 경기를 뛸 수 없는 몸이다.


이제 와이프와 친구들은 골프를 권한다. 오랫동안 즐기기에 골프 같은 운동이 없다고. 몸도 성하지 않은데, 다치기도 쉬운 농구를 계속해야겠냐고. 나도 안다. 골프는 재밌을 것이고, 농구는 내 나이에 버거운 운동이라는 것을. 그래도 시간이 있으면 혼자라도, 아니면 누군가 지인이 불러주면 고맙다 하며 공을 들고 나간다. 그리고 또 맞는 길을 찾아, 한 번이라도 그 함께 만드는 하이라이트를 만들고자 달린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름만 아는 상대에게 메일을 쓴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일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하나의 작품을, 오늘의 하이라이트 순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내 할 일을 해본다. 적어도 그 하이라이트의 크레딧에 올리려면 내가 내 역할을 다 하고 있어야 하겠지. 물론 이 하이라이트는 아무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달리면 그에 맞춰 공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메일을 보내본다.


문득 이 모니터 너머로 그 연결되는 느낌을 줬던 고마운 이름들과 얼굴들이 떠오른다. 심지어 얼굴 없이 이름만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함께 만들었던 하이라이트 필름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들도 나처럼 하이라이트라고 그 순간을 생각할까? 직접 그분들을 만난다고 할 말이 많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 고마웠고 즐거웠다는 한마디는 전해졌으면 싶다. 그리고 그 반짝이던 그들의 모습도 그립다고.


항상 건강하시길. 이제 함께 같은 하이라이트에 출연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디서든 오래오래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고 있기를. 문득 내 주변 사람들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 SNS로 보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도 당연히 좋지만, 함께 땀 흘리고 노력하고 머리 맞대며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내던 그 하이라이트들 말이다.  



다들 어디서 하이라이트들 잘 찍고 계시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