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고 단 것을 좋아하는 신포도
(2020년 여름 작성)
재택근무 마감일지를 부장에게 보낼 즈음 손님이 찾아왔다. 첫째, 고열이 없으며 신천지도 교회도 믿지 않는다. 둘째, 그 친구도 재택근무 중이고 자차로 조심조심 하면서까지 저녁을 같이 먹고싶어하는 용기가 가상하다. 셋째, 무엇보다 그는 매콤한 떡볶이와 더 매운 오돌뼈를 거기에 세상 달달하기로 손에 꼽는 가게 브라우니를 사오는 정성을 보였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 현관문을 열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취향저격, 전략이 좋았다.
내 성격은 그리 스윗하지 않지만 당섭취는 언제나 환영이다. 대학시절 누군가가 내 몫의 커피를 살 일이 있으면 따로 물어볼 것도 없이 통하는 규칙이 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에 미친듯이 설탕시럽을 짜면 된다. 친구들이 내 커피를 한입 먹고 오만상을 찌푸릴 때 묘한 희열 같은걸 느꼈다. 네스퀵가루 한스푼 아빠숟갈로 가득퍼서 입에 몰래 넣는 게 최고의 일탈이었던 동심 그대로 자라서 우리집 찬장에는 누텔라와 피넛버터를 위한 자리가 항상 마련되어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단 것만 먹고 살겠냐구. 매운 음식이 빈 자리를 채워줘야한다. 학교 선배 왈 떡볶이가 너무 맵게 만들어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눠먹을 사람은 나였다. 주변사람들은 대부분 동대문 엽기떡볶이를 나와 함께 처음 먹어봤다. 내가 매운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누군가는 곧바로 맵부심과 연결지어 디진다돈가스를 화두로 올리곤 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괴식에 도전할 생각은 없다. 나의 매운맛은 오로지 미식을 위해서다. 틈새라면도 불닭볶음면도 마라탕 3단계도 맛있어서 찾아 먹는거다. 일단 맵다면 내 기준 블루리본보다 더 값진 레드리본 레스토랑으로 격상된다.
그러다 위장 다 버린다고, 살찌기 좋은 식단이라고. 걱정어린 만류가 종종 들려오는 30대가 되고도 입맛은 똑같다. 나는 오늘도 최고의 멘탈 건강식 맵단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맵고단것들을 같이 먹으며 입김과 함께 분노도 함께 분출한 우리는 내일 또다시 힘을 내서 이 땅의 당당한 산업역군으로 1인분 씩 해낼 것이다.
아참, 맵고단것이 합쳐진 타바스코 초콜릿을 괌에서 사와서 먹은 적이 있는데 두번 다시 안먹어도 될 것 같은 경험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어디까지나 매운 것 따로, 단 것 따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