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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게 좋아 Jun 05. 2024

나는 서울이 싫어서 탈서울을 꿈꾸는 걸까

요즘 내 최대 관심사는 ‘탈서울’이다. 서울 입성까지 지하철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수도권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서울에 산 지는 7년이 되었다. 20대 초반에는 행정구역상 거주지만 서울이 아니었을 뿐 20대를 모두 서울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 서른 살이 된 현재, 나는 서울을 떠나고 싶어 미치겠다.


인생에서 이렇게 현타가 온 적이 있었나? 종로에 위치한 회사 옥상에서 빌딩숲을 내려다 보면 숨이 막히고 마음이 답답해지는 지경까지 왔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도 싫고 매일 지옥철을 타야 하는 것도 싫고 미세먼지도 싫다. 사실 몇 년 동안 뉴스에서 미세먼지에 대해 떠들어대도 그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 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회사 옥상에서 남산타워와 롯데타워가 보이는데, 대부분 먼지에 가려 필터를 낀 것처럼 뿌옇다. 그 풍경을 보고 대기의 질이 정말 좋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맑은 날도 있겠지만 내가 회사를 다녀서 그런가. 하루하루가 그저 회색빛 같다…


만족할 수 없는 급여, 거지 같은 복지,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라는 위치. 그 와중에 인서울 4년제 과 수석 졸업생이라는 과잉된 자의식과 자존심만 남아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시궁창 같은 현실을 부정하는 내 자신… 스스로가 한심하면서 이런 상황에 현타가 안 올 수가 없다.


게다가 현재 살고 있는 집 앞에는 피아노 학원 혹은 성악 학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밤낮으로 미친듯이 노래를 불러대서 미쳐버릴 것 같다. 왜 층간소음으로 살인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회사를 마치고 저녁에 지친 몸으로 좁아터진 원룸에 돌아왔는데 창밖에서 꽥꽥대는 노랫소리가 들리면 가끔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좌절이 몰려온다. 게다가 나는 너무 적은 월급 때문에 주말에는 대학생 때부터 하던 알바를 한다.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한 목적이 크지만 회사 월급으로는 먹고 살 길이 안 보여서 억지로 투잡을 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서울이 싫어서 탈서울을 꿈꾸는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내가 강남에 자가가 있다면 서울이 싫을 리 없다. 내 통장에 100억이 들어있다면 나는 서울을 사랑할 것 같다. 그런데 돈도 없고 집도 없는데 환경과 일자리와 주거의 질이 쓰레기 같으니까 서울이 싫어지는 거다. 같은 땅 위에 서 있어도 더 빨리 지치는 거다.

얼마전에 업무 차 이천에 갈 일이 있었는데 비록 서울 사무실로 출근할 때보다 업무 시간은 길었지만 나름 힐링이 되었던 시간으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휴지처럼 뽑아서 1~2년 쓰다 버리는 저임금 파견직 특성 상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려운 업무를 맡을 일은 없고 잡무만 하다 오기에 가능했던 듯하다. 총 5일을 있었는데, 커다란 2인실 숙소를 혼자 쓸 수 있어 숙소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특히 숙소의 창문이 굉장히 컸는데,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평화롭더라.


올해 초 대학교를 졸업하고 5주간의 유럽여행까지 마쳤다. 이제는 돈을 벌어야 했고 일단 즉시 입사가 가능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저녁 시간에 정규직 자리의 취업을 준비하자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고만고만한 파견직, 계약직 구인 공고 중 이 회사에 지원한 이유로는 경기도 외곽으로 출장을 가야 하는 일정이 주기적으로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초부터 나는 어디든 좋으니 잠시라도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서울의 원룸은 2층 짜리로, 창문을 열면 바로 가게와 계단이 보이고 누군가 계단을 오르내리면 상대방에게 내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게다가 여닫을 수 없는 방범창이 달려있어 준 감옥 같다. 그래도 나는 옷 갈아입을 때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살짝이라도 창문을 열어놓는 편이다. 그게 그나마 덜 답답하니까.


가게뷰, 계단뷰만 보고 살다가 한쪽 벽면을 오롯이 할애한 커다란 창문에 눈이 맑아지는 자연뷰를 감상하고 있자니 약간의 감동까지 밀려왔다. 발코니도 있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커튼을 치지 않아도 혹여나 바깥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이면 방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불을 켜지 않아도 숙소를 비춰주는 자연광을 맞으며 책을 읽는 그 시간이 행복했다. 그 이후 나는 탈서울 탈서울 노래를 부르며 매일같이 귀농한 청년들이 등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고 탈서울과 지방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빌려 읽고 있다.


문제는 역시나 직업인데… 나는 서울을 떠나고 싶은 것이지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고 싶은 것이 아니다. 경력도 없는 서른 살 국문과 졸업생이 지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구직 사이트를 뒤져봐도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았고 지원 가능한 분야라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비정규직을 구하는 곳도 많았다. 어떻게 저임금이라도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무작정 지방에 내려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막상 들어간 회사와 너무 맞지 않으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서울에는 회사가 널렸지만 지방은 그렇지 않기에 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안정적인 기업의 정규직이 아니라면 합격했다고 덜컥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평생을 수도권과 서울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연고도 없이 홀로 지방으로 거주지를 옮긴다는 건 너무 무모한 결정이기도 하고. 지방에 있는 대기업에 붙는다면 절하고 달려가겠지만 지방 대기업은 대부분 공대 일자리들이다. 문과 직무가 있더라도 스펙도 경력도 없는 나를 뽑을 리가 없다.

일자리도 없고 지방에서 필수인 차도 없고 돈도 없고 경력도 없다. 총체적 난국. 총체적 노답. 그리고 탈서울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나지만 막상 지방에 갔을 때 그 생활에 만족하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할 수 없다. 서울이 그립다기보다 서울이 주는 편리함과 주류 사회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직업이랑 돈 때문에 안정감은 없다)에 목말라하지 않을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지방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문화적으로 소외되었다는 감각과 서울에 있는 또래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 불안함 또한 안 들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고민이 드는 걸 보니 지방으로 내려가기에는 내가 아직 서울생활에 덜 지쳤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편입되어 살아온 노예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 하면 인생이 망하는 줄 알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진학한 대학에서 치열하게 공부한 이유 중 하나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였으니까. 막상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공부는 적당히 하고 청춘을 즐긴다든지 아니면 대외 활동이나 여러 스펙 쌓기에 공들이는 친구들이 더 많은데 나의 경우는 전공 공부에 매진했다. 그 이유의 1/3은 나이에 대한 압박, 1/3은 전공 공부에 대한 애정과 흥미, 1/3은 승부욕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잘해서 높은 성적을 받고 싶다는 마음. 종이에 찍힌 석차 1이라는 숫자를 얻고 싶다는 마음. 남보다 잘하고 싶어. 남보다 내가 더 뛰어나. 하는 마음 같은 것들. 당연히 없었다고 말 못한다. 내 원동력 중 하나였으니까.


이제는 이런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경쟁사회에서 지녀왔던 마인드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내려놓을 수도, 더 이상 마냥 붙들려 매여있을 수도 없는 어중간함이 나를 괴롭히는 원인이겠지.


한창의 나이에 지방으로, 그것도 부산이나 대전 같은 지역의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도피성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더욱 고민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이 지난한 대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몇 달 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것이 현타와 번아웃으로 인한 잠시간의 변덕일지 아닐지는 두고봐야 알 듯하다.


나이 서른에 다시 찾아온 방황이라니. 서울을 떠난다고 마법처럼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인생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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