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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게 좋아 Jun 05. 2024

요즘 내 인생은 회색빛이다

약수에서

요즘 현타가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찾아온다. 무엇을 해도 재미 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다람쥐 챗바퀴 굴리듯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을 반복하다가 죽겠구나. 그것도 높은 확률로 평생을 일함에도 가난하게. 


삶이 지긋지긋하다는 감정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20대 때는 쓰레기 같은 생활패턴을 영위하면서 매일 술 퍼마시고 막 살면서도 이렇게 자주 현타를 느끼지 않았다. 정말 대충 살던 대학생 때뿐만이 아니라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긴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권태로움과 무기력에 빠져버렸다. 그에 더해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초조함까지 찾아와 일상을 흔들고 있다.

충무로에서

여전히 꼴초로 살고 있지만 술은 많이 줄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5일 동안 술을 안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폭주할 때가 있지만 확실히 작년보다는 줄였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일곱 시 삼십 분이 되면 채소와 삶은 계란, 통밀빵을 챙겨먹는다. 자극적인 음식은 되도록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홉시까지 회사에 출근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운동 겸 23층 계단을 두 번 오른다. 6시에 퇴근한 후 탁구를 치러 가거나 집으로 돌아와 쉰다. 탁구에 가지 않았다면 저녁을 먹은 후 집 앞 하천을 산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말이라고 늦잠은 자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고 열 두시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집은 내 인생에서 유례없이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고 쓸데없는 물건들은 내다버렸다. 작은 원룸이지만 물건들이 사라지니 훨씬 넓고 쾌적해 보인다. 저녁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에 잠에 들고 다음날 다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다. 


술을 마시는 날을 제외하고는 몇 달째 이렇게 살고 있다. 남들은 갓생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달까지는 불투명한 미래와 취직 준비 때문에 매일을 불안과 걱정 속에 괴롭게 보냈다. 나를 괴롭히는 그 감정은 여전하지만 일단 돈을 벌고자 급하게 들어온 회사에서 일한 지 한 달이 막 넘어가고 있는 현재, 불안과 더불어 지독한 무기력과 권태가 찾아왔다. 


진짜 인생에 현타가 온 것이다. 올해부터는 그렇게 좋아하던 탁구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들었고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고역이다. 그렇다고 자유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돈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에 제약이 가고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도 별로 없다. 이십대 중반이 넘어가고부터는 각자의 인생을 살기 바빠 그나마 있는 친구들도 일 년에 한 두번 만날까 말까다. 

원하는 것이 너무 멀리 있어 그런 걸까. 내게 현재 목표라는 게 있다면 돈을 모아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인데, 목표치의 돈을 모으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내 인생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이 어쩌면 불행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하니까 근본적인 것은 해결하지 못한 채 미라클 모닝을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청소를 하고. 바쁘게 살아야 할 것만 같아서 바쁘게 산다. 이거라도 안 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감각은 얼마나 두려운지. 함께 놀던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후 텅빈 운동장에 혼자 남겨진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그런 감정이 엄습할 때는 마음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다. 타인과 삶을 비교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그렇게 살기란 쉽지 않다. 


언제까지 불안해해야 하고 언제까지 초조해해야 하는 걸까. 이 감정에 끝이란 것이 있을까.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얼굴은 항상 무표정하다. 인생이 회색빛 같다. 회사에서의 지루하고도 힘든 시간을 어떻게 흘려보낼까 고민하다가 현타와 무기력증 등의 키워드를 사용해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의왕, 친구집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의 상황과 사정에 공감했고,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나와 같은 감정과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다니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받으려 애썼다. 문득 이래서 사람들이 가정을 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외로운 거구나. 생각했다. 


이것은 텅빈 운동장에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 아무도 없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기분. 집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운동장에 있는 것 같고. 집안의 모든 불을 켜두곤 등 돌려 누운 작은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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