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뷰트에서 우연히 김창옥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고 몇 년 전부터 종종 그의 강의를 시청하곤 했었다. 이번 강의에서 김창옥 교수는 한 사례자의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또래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졸업하면 서른'이라는 생각에 시달리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위궤양이 찾아올 정도였다고. 나도 그랬다. 학교에 다니는 내내 졸업하면 서른이다. 졸업하면 서른이다. 이 문장이 강박처럼 머릿속에 들러붙어 있었고 정말 홧병날 정도로 나이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남들보다 늦었다고 생각했기에 성취를 이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노력의 증명이 곧 성적이라고 생각해 학점에 굉장히 집착하며 4년을 보냈다. 그 결과 내가 얻은 것은 석차 일등이 적힌 졸업장 한 장과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망가진 몸과 정신이었다.
매 학기 나의 일과는 이랬다. 대부분 오티만 하고 끝나는 개강 1주차를 제외하고는 2주차부터 매일 3~4시간 정도를 공부했다. 이것은 순공부 시간이고, 과제하는 시간은 따로 있다. 부전공 또한 했기에 교양은 거의 듣지 않았으며 모든 수업을 전공 과목으로 채웠다. 18학점을 듣는 것이 부담되어 매학기 5전공 15학점씩 요일에 따라 적절히 수업을 분배해 시간표를 짰다. 그래서 남들은 18학점씩 듣다가 막학기에는 한 두과목만 들으며 취업을 병행하곤 하지만 나는 막학기까지 15학점을 들었다.
공부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 또한 있어 학점을 약간 초과해서 들은 탓도 있다. 나는 말 그대로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했다. 주말에도 휴일에도 공강에도 항상 매일 3~4시간 공부+과제를 한 것이다.
시험기간은 2주를 잡고 조금 더 공부하는 시간을 늘렸다. 그래도 평소에 공부하던 것이 있으니 밤을 새진 않았다. 어차피 그렇게 공부할 체력도 안 되고 집중도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도 들어야 하고 그렇다고 과제가 적은가. 과제하는 데 공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때도 있었다.
강의를 듣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공부와 과제 작성에 하루에 평균적으로 5시간 정도는 썼을 것이다. 이 정도면 절대적인 공부 양이 매우 많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학기 중 항상 아르바이트와 장학생 활동을 병행해야 했고, 등수와 결과에 집착하는 성격과 기질이 스스로에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단기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4년을 내리 그렇게 살았으니 정신 건강에 타격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생들이 대학 진학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끝이 정해진 공부에 매진하는 것과는 달랐다.
전날 목표했던 공부 양을 채우지 못했다면 다음날 반드시 추가로 공부해서 시간을 채웠고, 수업 내용을 당일에 복습하지 못 하면 불안감에 시달렸다.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책을 펴 내가 적은 답안과 비교해 보았으며, 한 문제라도 오답을 적거나 작성하지 못 했다면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책장을 힘없이 넘기며 우울해했다. 시험 문제 하나에 일희일비했고, 지나치게 힘들어했다. 이런 시험을 겪은 날에는 당연히 당장 낮술하는 거다.
대학생활 내내 스트레스를 음주와 흡연으로 풀었고, 술 마신 다음날 망가진 컨디션에 자책하면서도 밤에는 또다시 술을 마셨다. 기상 시간도 매우 불규칙했고 배달 음식으로 폭식하기를 반복했다. 몸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정말 막 살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수업은 절대 빠지지 않았고 그날 해야 하는 공부와 과제는 어떻게든 해냈다.
나는 어느 정도 공부하면 더 이상 집중이 되지 않고 생산성이 떨어진다. 최대 5시간 정도가 한계다. 집중이 안 되고 그날 해야 할 공부를 마쳤으면 도저히 더 못 하겠다 하고 휴식을 취하는데, 그러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공부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내 성격과 압박감이 훨씬 큰 문제였다. 그리고 그 휴식 시간을 대부분 술로 보내며 몸과 정신 건강을 착실히 망쳤다.
한 학기를 마치고 성적이 나오는 날, B+가 있으면 세상이 망하는 것 같았고 A가 있으면 너무 실망스러워 교수님께 성적 산출 기준을 문의할까 고민하며 속상해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날이 있다. 작년이었는데, 아마 막학기였을 것이다. 그날따라 유독 피곤했고 수업이 끝난 뒤 집에 돌아와 지쳐 잠들었다. 한 두시간만 자고 일어나려 했으나 눈을 떴을 때는 새벽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집을 뛰쳐나갔다.
곧바로 가장 가까운 스터디 카페로 가서 세 시간을 집중해서 공부하고 나왔다. 오늘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 했다는 초조함 때문이었는지 굉장히 집중이 잘 돼서 세 시간이 훌쩍 갔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세 시간을 공부했지만 한 과목밖에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해야 할 공부는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집에 가서 세 네시간만 잔 후에 학교에 가 수업을 듣고, 오늘은 어제 하지 못한 공부까지 포함해 다섯 시간 정도는 공부를 해야지. 과제도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조금씩 밝아오는, 텅빈 거리를 걸었다.
새벽에 뛰쳐나와 공부를 한 스스로가 뿌듯했고, 집중이 잘 돼 기분도 내심 좋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왜 이렇게 살지? 나는 뭘 위해 이렇게 강박적으로 공부하는 거지?
요즘 고학점은 취업할 때 큰 이점이 되지는 않는다. 학점은 적당히 챙기고 다양한 스펙과 업무 관련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특히 문과는 그렇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성적에 집착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입학 초부터 열심히 내, 외부 장학금들을 알아본 결과 1학년 1학기 때부터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선정되었고 수혜 기준은 매학기 학점 3.5 이상으로, 만족시키기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고 압박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성적에 집착했을까. 내가 전공 공부를 좋아하니까. 이 공부에 욕심이 있으니까.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왔고 상경계열이나 공대가 아닌 국어국문학과라는, 취업과 거리가 먼 인문계열을 선택했으니까. 내가 원해서 하는 공부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이 공부를 좋아한다. 좋아해서 하는 거다. 4년 동안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취업되지 않는 과를 선택했다는 죄책감과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졸업 즈음에는 현타가 오며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것은 내가 전공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 한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이다.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성적을 받으며 노력에 보상을 받았다. 과 사람들보다 전공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고 이 분야에 조금의 소질도 있다고 믿었다. 단순히 성적에만 집착한 것이 아니라 굳이 들을 필요 없는 수업도 추가로 들으며 전공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시험을 치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지식을 쌓기 위한 진짜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내 전공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국어학은, 문학은 이런 것이야. 설명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내가 4년 동안 공부한 것은 무엇인가. 이제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난 대체 뭘 공부한 거지?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한때 대학원 진학도 생각했었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있고, 30대 중반까지 공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석사를 따고 박사를 따면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자기 만족이 아니라면 갈 이유가 없었다.
내가 정말 이 공부를 사랑하나?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간절하게 공부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공부보다 노는 게 훨씬 좋거든.
게다가 학부 때도 이렇게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대학원에 진학하면 훨씬 힘들어질 일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학원에서는 얼마나 공부해야 원하는 지식을 쌓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학부 때 공부 양의 두 배를 하면 될까? 세 배를 하면 될까?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공부 외에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이 있었다. 그 점이 정신건강을 망친 데 95%의 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 문제도 컸고.
학교를 다니며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 특히 나는 방학 때마다 풀타임 근무를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게다가 8번의 방학 중 절반 이상을 주 7일 근무를 했다. 평일에 9시~18시까지 일을 하고, 주말에는 학기 중에 하던 아르바이트를 지속했다. 이 생활 패턴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도 동일하다.
방학 때 주 7일을 일했지만 나는 이 생활이 학기 중보다 훨씬 편하다고 느꼈다. 마음도 안정되고 인생이 한결 평안했다. 쉬는 날 없이 일하면서 사는 게 학기 중에 공부로 인해 받는 고통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 생활을 돌아보면, 내가 정말 힘들어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위궤양 걸릴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대학생활 내내 스스로를 책임지며 사느라 몸 건강도 정신 건강도 많이 잃어버렸다. 허탈하기도 하고 왜 그렇게 성적에 집착해서 힘들게 살았나 싶기도 하다. 정답도 찾지 못 했고 여전히 불안정하게 살고 있다. 현재는 인생 현타의 절정에 이르러 매일이 지옥 같다. 사회에서 자리도 잡지 못 했다.
하지만 그런 예감이 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4년의 기억을 가지고 갈 것이라고. 기억과 어디든 함께 갈 것이라고. 나중에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떳떳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