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작가에서 디저트 가게 사장으로 8
누군가 그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나는 공유 주방 이전을 앞두고 폐업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사면초가에 빠졌는데, 뜻하지 않게 행운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한 달 동안 나만의 카페를 운영해 볼 수 있는 ‘공유 카페’였다.
공유 카페는 요일별로 브랜드가 바뀌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니까 요일마다 사장이 바뀌어 > 월, 화, 수, 목, 금, 주말 < 이렇게 총 여섯 명의 ‘사장님’이 돌아가며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중 수요일을 맡아서 한 달 동안 영업했다. 그리고 그 한 달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우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가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이미 그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바리스타부터, 유명 브랜드의 파티시엘, 열정과 실력이 뛰어난 젊은 로스터까지. 모두 보석처럼 빛나는 재능과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와 관심사가 같은데 나보다 몇 발 더 앞장서 나가는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건 정말이지 값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주 수요일마다 아임버터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직접 고른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직접 고른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햇살이 스미는 조용한 공간에서 디저트를 굽는 일은 꽤 낭만적이었다. 마침 겨울이라 카페 안에 난로도 있었는데, 잠시 휴식 시간이 생기면 난로 앞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게 소소한 힐링이었다.
거기다 고객님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다. 내가 만든 디저트를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가 만든 디저트를 맛있게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즐겁고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렇기에 영업을 끝내고 마감을 하고 나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다음 영업일까지 또 어떻게 기다리지? 라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는지, 내가 얼마나 나만의 공간을 갖는 일에 마음을 두고 있었는지를.
한편, 그 무렵, 나에겐 또 다른 변화들이 찾아왔다. 방송 작가로 살아오던 나의 삶이 조금 흔들리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맡고 있던 프로그램이 하나가 종료되었고, 기획 중이던 새 프로그램도 결국 무산된 것이었다. 사실 방송 작가로 10년이 넘게 지내오면서 이런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방송 프로그램이야 길어 봐야 1년이 고작이고(장수 프로그램이라고 한들, 이런 저런 이유로 작가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5년, 10년 근속하는 건 꽤 드문 일), 특별 제작 같은 파일럿은 단 한 번의 촬영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러니 프로그램이 종료된 것은 마음 아플 일도, 아쉬울 일도 아니었다. 기획이 엎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자꾸만 흔들렸다. 큰 지진 후에 찾아온 여진처럼, 계속해서 흔들리는 마음은 불안으로, 두려움으로 번져갔다.
어쩌면 나는,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일도 좋고, 디저트를 만드는 일도 좋은 나의 욕심을 다스릴 핑곗거리로, 불안정한 작가 일을 보완할 수 있는 일은 디저트를 만들어서 파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 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욕심껏 결심했다. 이제 진짜 나만의 공간, 나의 보금자리를 찾아보기로. 그리고 머지않아 반짝이는 나의 신대륙을 발견했다. 10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곳은 나의 꿈을 펼칠 신대륙임이 틀림없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