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작가에서 디저트 가게 사장으로 3
보통 방송 작가라고 하면 드라마 작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TV를 틀면 드라마만 나오지 않듯 작가도 드라마 작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뉴스 프로그램에도 작가가 있고, 홈쇼핑 채널에도 작가가 있고, 병원이나 회사, 공공 기관, 요즘은 각종 인터넷 플랫폼에서도 작가를 고용하는 채널이 많다.
나는 주로 교양 프로그램에서 근무했다. 시사 대담 프로그램에서 오랜 시간 근무했고, 법률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에서도 근무를 했다. 그래서 연예인들보다는 정계 인사나 변호사, 의사를 만나는 일이 더 많았다. 물론 연예인들을 마주할 때도 많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연예인보다는 정치인들끼리 시사 토론하는 걸 듣거나, 변호사가 법률 상담하는 걸 듣거나, 의학과 관련된 신기한 정보들을 듣는 게 더 재밌었다. (연예인들과의 만남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정말 많이 있지만, 화려한 모습 뒤에 가려진 씁쓸한 면을 마주하는 게 거부감이 들었다)
아무튼 나는 적성에 잘 맞는 프로그램과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서 나름대로 착실하게 잘 성장하고 있었다. 주변에 정말 못된 선배 언니를 (작가들은 자신보다 높은 선배를 그냥 언니라고 부른다) 만난 친구들은 괴롭힘에 견디다 못해 정신과를 다니기도 한다던데. 나는 같이 일하는 스탭들 때문에 힘들진 않았다. 내가 힘들었던 건 따로 있었다. 지난번 글에서 말한 그 '위기'라는 것은 내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 위기는 내가 한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서 찾아왔다. 아는 선배의 소개로 얼떨결에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컨셉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유명한 멘토가 나와 시청자의 고민을 상담해 주고 응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게스트도 없었고, 정직하게 고민을 듣고 상담해 주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방송국으로 접수되는 사연들 또한 몹시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들밖에 없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고민들, 이를테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거나 부부 사이가 나쁘다거나, 자녀와의 갈등이 있다는 고민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자녀가 귀신에 들렸다는 이야기, 사고가 나서 평생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유명인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망상을 가진 아주머님의 이야기 등등 인간의 고민이 이렇게 많을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 프로그램을 맡고 있을 때 나의 일과는 이랬다. 눈을 뜨면 시청자들이 보내준 고민 사연이 프린팅된 것을 읽었다. 고민은 하루하루 성실하게 쌓였기 때문에 읽고 또 읽어도 끝이 없었다. 그 방대한 고민을 읽고 있자면 이게 소설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사연 읽기가 끝나면 몇몇 사연을 골라 상담을 신청한 시청자와 전화 통화를 했다. 이게 또 고역이었다.
한 사람이 한 시간 넘게 하소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사람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사람(이런 사람은 적당한 타이밍에 전화를 끊으려 해도 좀처럼 끊게 내버려두질 않는다. 끊으면 다시 전화해서 또 반복한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나에게 울분을 토하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 웃었다 울었다 화냈다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 그저 우는 사람.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 사람, 사람,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의 감정들이 파도처럼 내 몸에 닿았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파도는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쳤다.
어느 순간, 정말 숨이 턱 막혔다. 검은 물을 머금은 커다란 파도에 잠식당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좋은 소리도 계속 들으면 싫어지는 법인데. 절망에 빠진 목소리를 매일 수십 번씩 들으니 마음이 어두워지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그걸 애써 외면하며 밝은 척 웃으며 지냈다. 평범한 나날인 것처럼.
그러나 균열이 있는 것은 언젠가 무너진다.
어느 날엔가 실컷 떠들고 웃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막히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공기와 빛이 들지 않는 공간에 갇혀버린 그 기분을 느꼈을 때, 비로소 작가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이 프로그램은 하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프로그램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내 그릇이 작았던 것뿐이다)
물론 작가를 그만두는 일은 없었다. 다만 걸어가는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시사, 정치, 법에서 벗어나 어린이 교육 방송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교육 방송도 공부할 것이 많고 어려웠지만, 티 없이 맑은 어린이들, 때 묻지 않은 아기들을 보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두운 마음에 빛이 스며들었다. 게다가 동화를 좋아해서 동화 작가로 등단을 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어린이들이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의 힐링을 더해주는 것 또 다른 것 하나는 베이킹이었다. 베이킹을 하는 동안에는 나쁜 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다. 부드러운 밀가루의 질감, 빵이 익어갈 때의 고소한 향기, 오븐을 열었을 때 스며 나오는 따뜻한 열기, 테이블 위에 플레이팅 된 디저트의 모습, 다정한 사람과 함께 디저트를 나눌 때의 포근함. 그 모든 것이 치유였고 말라비틀어진 마음을 다시금 살찌게 만들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마음으로 다시 글을 썼다. 상처라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과 경험이 모두 글감이 되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려나?
재미있게도 지금은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글을 쓰는 시간보다 빵 굽는 시간이 더 많은데. 그렇다 보니 빵으로 상처받는 일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업체를 운영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 그럴 때면 차분하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러면 또 불에 덴 듯 뜨거웠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작은 숲에 불이 화르르 붙었다가 단비에 사르르 꺼지듯.
글을 쓰다 지쳤을 땐 빵을 굽고. 빵을 굽다 지쳤을 땐 글을 쓴다. 꽤 근사한 삶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