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대문 농린이 May 17. 2022

진회색 강물만 아니면,

2020년의 어느날

 나이로비는 두 개의 세상이 공존하는 도시다. 여느 도시가 안그렇겠냐만은, 두 개의 세상을 눈으로 확인하기에 시각적으로 참 편한 도시다. 침대에 누우면 LTE가 터지는 내 방에서 불과 20분이면 세계에서 인정받는(?) 슬럼지역이 나온다.


  회사에서 고액후원자 의전을 맡게 되었다. 관광코스 마냥 슬럼 지역을 돌며 사업장을 방문하고, 동네를 구경하고, 아이들의 집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초록색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나뭇가지를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가로질러 다리를 하나 건넜다.

 다리 밑에서 신기한, 어쩌면 진귀한 풍경을 목격했다. 옛날 우리 아낙네들이 냇가에 모여 빨래를 하던 것 처럼, 단도라의 아낙네들이 모여 무언가를 열심히 빨고 있었다. 나름 분업도 되어있는 듯, 한명은 차곡차곡 정리를, 두 명은 세탁을, 또 다른 한 명은 새 빨랫감을 넣고 있었다. 


 " Can you guess that?" 드라이버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고 질문을 던졌다. 멀리서 바라보니 그냥 가족들의 옷을 빨고 있는겠거니-했다. "Clothes?"라는 나의 대답에 드라이버와 근처에 서성이던 행인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을 놀리는게 소소한 재미인 드라이버는 오늘도 성공이었다.


 그들이 빨고있는건 플라스틱 우유통이었다. 케냐에선 소가 흔한 만큼 우유도 주식품 중 하나인데,  평소 자주 사먹던 대기업 BIO의 버려진 우유통들인 듯 했다. 그제서야 보니, 옷을 쌓는 줄 알았던 주민분은 차곡차곡, 플라스틱병을 옮기기 편하게 정리중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열심히 통을 씻어내던 강물은, 쓰레기산에서 흘러나오는 진회색빛과 검정 그 사이의, 무채색 강물이었다.



 드라이버의 설명에 의하면, 저 행위는 저들의 생업이었다. 매일 아침 슬럼 내 쓰레기산에서 버려진 우유통을 주어다 내용물을 씻고, 비닐포장지를 벗기고, 차곡차곡 쌓아서 재사용을 위해 우유공장으로 다시 판다고 했다. 그리고 너는 이제 저 것을 보았으니 우유를 사먹지 못할 것이라며 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이후로도 우유는 참 잘 사먹었다. 비위가 강한건지, 단순한건지, 뭐 어떻게 표현이 되든 일단 나는 잘 사먹었다. 케냐의 우유는 참 맛있기 때문에.


 그보다도, 나는 그 행위가 참 좋았다. '일회용인 줄 알았던 병을 재사용 할 수 있구나, 플라스틱을 태우거나 묻어버리지 않아도 재사용 해도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있구나' 하는 기쁨이 있었고, '씻어 되파는 행위가 잘 못된게 아니라 더러운 저 강물이, 강물을 더럽게 만든 쓰레기산이, 쓰레기를 만들어낸 우리가 잘못된 것이지 않나'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그리고, 재활용을 만들어내는 저 노동자들의 노동이 얼마나 가치있고 멋진! 이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앞서나가는 직업인가!했다. 환경을 지켜내며 수익을 창출하는 저 행위가 참 좋았다.


 사실 너무 멀리서 보아서, 그게 정말 우유병이었는지 확인 할 길이 없다. 생수병이었을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옷이었는데 내가 드라이버의 장난에 넘어간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뭐 어떤가, 난 이미 설레는걸. 저 강물만 깨끗해진다면, 정말 완벽할텐데!

매거진의 이전글 So far, so Goo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