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클래식

타인은 때로는 이유.

by 이리진

꼰대를 만나고 싶으면 투자판으로 오면 된다.


투자자들은 대부분 고집이 세고, 자기가 해 온 얘기를 자랑처럼 풀고 싶어 한다. 위태로운 과정에서 켜켜이 쌓인 상흔들이 뭔가 보상 심리를 자꾸 원하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는 표정 관리가 편하다. 성공담을 들으며 끄덕끄덕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내가 약간은 인문학적인 감성의 소유자라는 데 있었다.

이런 관계가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나는 꽤 숨 막히고 건조했던 모양이다.



잔금 날짜가 다가오고 간신히 목표 금액을 만들어 냈다.

뭔 짓을 했는지, 몇 번 심장이 떨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코인의 변동성은 여유 돈을 만들어줬다.

물론 내시경 결과는 참담하고 성격도 더 버렸지만. 어쨌든 여유돈은 만들어졌고, 원하는 대출도 받아냈고. 이자를 갚을 돈도 마련해놓고 나니, 나는 진이 다 빠졌다.

이제 투자고 재테크고 또 덤비면 내가 사람이 아니고 동네 강아지다. 나는 치를 떨며 투자에 종결을 선언했다.

물론 나는 훗날 다시 동네 강아지가 된다.



나는 지인들이 불러주는 가벼운 놀자판 모임에 빼지 않고 나갔다. 혼자 있으면 머리 속에서 떠다니는 숫자가 지겨웠다. 말할 기운이 없어도 그냥 사람들의 온기 속에 파묻혀서 왁작지껄 떠드는 걸 구경하고 있는 게 좋았다. 생생하고 재미있고. 일일 드라마 보는 느낌이랄까.

이때쯤 모임에서 만난 사람은, 그런 점에서 걸작이었다.



나이는 비슷하고 사회 경험도 많았는데 해맑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세상 독이란 독은 다 품고 무슨 독사처럼 홀로 쉭쉭거리는데 그는 여기도 친구, 저기도 친구, 직업과 재산과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그냥 우리 다 같이 잘 놀면 된다,라는 지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서글서글 잘 웃고, 끊기지 않는 농담에 특화되어 있는 그는 어딜 가도 아는 사람이 튀어나왔다. 밥 먹으러 가면 식당에서, 빵을 사러 가니 빵집에서, 벌집처럼 생긴 만화방에서도 신기할 정도로 사방에서 인사를 받는다.

동서 남북, 전국구로 아는 사람이 깔려 있었다. 그걸 신기해하는 나를 보며 그는 그냥 웃는다.



”청약 통장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부었나 안 부었나 기억이 안 나네요?”



인생 첫 주택이란 의미를 모르고, 청약통장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라서, 자동 이체해 놓은 청약 통장이 있다는 것도 까먹고 덜컥 작은 집을 샀다는 친구였다. 부동산이 화두가 되어 저마다 훈수를 두고 성공담을 자랑하는 술자리에서도 그는 기죽지 않고 집을 집 외의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걸 사면 오를지 말지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가족들이 모여 살게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란 참으로 낯설었다. 투자판에서 몇 번 구르느라, 내 시야가 그새 좁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자산의 경쟁이란 개념이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투자 대비 아웃풋을 선계산하는 나는 그가 신기해서 죽을 것 같았다. 저 외래종은 대체 무엇이냐.



그는 집이란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곳 아니냐는 메르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아 나를 경악시켰다. 맞는 말이긴 한데... 요즘 세상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중학생도 안 할 말을 당당히 하던 이 친구는 최신곡을 흥얼대며 캠핑을 가고, 노지에서 잠을 자고, 요리를 직접 만들어 사람을 대접하기 좋아했다.

말로만 듣던 E가 저런 거구나. 나는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내가 차에서 듣던 음악을 들어보더니 “너무 웃기다” 하며 시원하게 웃는다.
아니, 해피투게더의 ost가 웃길 수가 있나?




”스위스를 왜 가지?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죽고 싶었던 적이 없어요.”



여럿이 맥주를 마시다가, 우연히 안락사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시끄러운 펍에서 그가 너무나 당당하고 순진하게 말했을 때, 아예 할 말을 잃었다. 맥주 맛이 다 밍밍할 지경이었다.

스위스로의 안락사 여행을 나름 마음속 최후의 보루쯤으로 여기고 의지해 왔던 나는 약간 억울하기까지 했다. 아니, 왜 한 번쯤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이 험한 세상을 개깡으로 버티는데 왜 죽고 싶을 때가 없어.

나는 그를 바보로 생각하고, 그는 나를 프로 예민러쯤으로 분류하지 않았을까.



클래식.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이 친해지는 오래된 이야기.



이 친구와 친해질 수 있었던 건 그 지독한 차이 때문이었다.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은 상대방을 적대시하거나 신기해할 수밖에 없는데, 어쩌다가 우리는 서로 <신기함>의 루트를 탄 것이다.

나는 자기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는 게 너무 싫었고, 이 친구는 예민하고 시니컬한 사람도 그냥 쟤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주는 유연함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구태여 지적하지 않고 놀란 표정을 숨기며 세상에 참 이상한 게 다 있네, 하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잘 놀았던 것이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우리는 분쟁을 피했다.

이건 아마도 내가 잔금을 마련하려 발버둥 치는 동안, 체력이 좀 떨어진 탓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레시피를 찾고, 재료를 모아서 맛있는 거 만드는 게 좋아요, 그리고 꼭 같이 먹어야지. 밥을 혼자 먹는 게 제일 싫어요. 저녁은 주로 몇 시에 먹었어요? ”

”어어.... 새벽에요. 뭐어 타이밍 맞으면 일찍 먹기도 하고...."



서로 아무 말이나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는 신기한지 내가 일하던 시기의 기억을 자꾸 묻는다.

하기야 화제가 없다. 서먹한 사이에 나만 환장하고 좋아하는 투자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만 좋아하는 노지 캠핑 이야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출석하고 있는 병원 이야기를 할 것인가.

공감대는 적고 할 이야기는 없고, 슬슬 습관 같은 피로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이 감기고 컨디션은 오락가락하고.



"퇴근을 새벽에 하는 게 어떻냐면요.... 음... 저런 노을 볼 일이 전혀 없다는 거죠.”



때 마침 카페의 창가에 저녁 해가 길게 스며들었다.

카페 안 쪽은 비교적 어두운 편인데 도로 쪽 창가로 보이는 밖은 아직도 밝았다.

저마다 일이 있는 사람들은 바쁘게 창 너머를 스쳐 지나가고 하루가 어느새 마무리되어 가는 그 무렵의 풍경.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을 말해버린 것이다.

대형 유리창 너머의 부드러운 주홍빛이 카페 안으로 흘러들며 커피 향을 옅게 밀어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걸쳤다.




” 햇빛 보러 갈까요? “




손이 잠깐 흔들려 커피가 출렁거렸다. 잔을 손에 든 채로 그를 올려다본다.

사람을 많이 보다 보면 싫어도 갖게 되는, 서늘한 감각으로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세상 물정 무심한 듯, 슬픈 것들 따위는 한 조각도 없는 것처럼, 소소한 즐거움을 말하고.

밝은 새처럼 관계 속을 표표히 떠다니고 있는 저런 사람은.



세상의 무게를 정말 모르고 있을까.

다 알고 있다고 굳이 소리 지르지 않는 것인가.


카페 안, 사람들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웅성거리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종소리가 들린다.

나는 입안의 커피를 삼켜야 할지, 잔을 내려놔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 ......뭐요?.. "

" 일어나요. 지금 가면 노을까지 보겠다. "



햇빛은 이미 사방에 있는데, 바로 앞 창가에 아득한 저녁 햇빛이 풍성하게 늘어져 있는데 그는 햇빛을 보러 가자고 너무 쉽게 말했다.

픽 웃으려고 시도해 보는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굳은 뺨이 얼얼하니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저런 식으로도 살 수 있다는 게 생경하고 신선하다.

나처럼 짓눌리지 않는, 고립과 자학을 선택하지 않는 저 방식.

막막함. 원망과 억울함. 열등감과 책임감. 무모함. 두려움.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그런 걸 죄다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처음 볼 때부터 알았다. 그건 설명하지 않아도 혀 끝에 피맛처럼, 직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지나치게 처량하게 굴었나.

나는 이제 밤낮으로 혼자 일하던 상황이 아니다. 햇빛 같은 거 이제 별로 아쉽지 않았다.

이제는 시간도 자본도 전보다 여유롭고, 강박적으로 쫓기는 워커홀릭도 아니다. 가족과의 해묵은 갈등도 부질없는 옛이야기가 되고, 철없는 꿈을 꾸느라 복장 터지는 소리만 지껄이던 시퍼렇게 날 선 어린애는 사라졌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전보다 강해졌고 그리고, 이제 많이 둔해졌다.

햇빛 따위, 그런 돈도 안 되는 시시한 것들.


눈을 깜박인다. 잠깐 여기가 어딘지, 누구랑 말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체온처럼 익숙한 고립감이 시커먼 진흙처럼 무겁게 손발에 달라붙는 것 같다. 그의 말에 대답하려 했지만 오래전 기억들이 먼저 스며들어왔다.

어두운 사무실에서 듣던 새벽의 우울한 음악이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다.



"...... "



나는 이젠 멀쩡했다. 투자는 망하기 딱 좋게 미친 짓을 했지만, 운 좋아 살아남았고, 겉보기에 세상 걱정 없는 속 편한 한량처럼 여유롭게 웃고 허세 부린다.

그러나 아직도 새벽녘이면 꿈을 꿨다.

잠을 줄여서 일을 하는데 매달 막아야 하는 비용은 너무 많고, 들풀 같은 내 20대, 30대는 모두 흘러가 버렸다. 건물주는 내가 아직도 일하고 있는 건물을 팔아 드릴로 부수고, 가까웠던 사람들은 나를 포기해 버린다. 챙길 사람은 많은데 나는 찾아갈 사람이 없어서.

컴컴한 사무실에서 혼자 타이핑을 두드리고 있는 현실 같은 꿈.

그 속에서 나는 학생이 되기도 하고 노인이 되기도 하면서 혼자 버둥거렸다.


버석한 입 안에서 깨진 이가 다시 굴러다닌다.

몸은 회복하면 되고, 일은 다시 시작하면 되지만, 영원히 혼자라면 그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아직도 그곳에 갇혀 있었다.




그는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게 아니었다. 일어나 걸었다. 얼마 남지 않은 그 햇빛을 정말 보겠다고.

거리로 나오자 세상은 여전히 환하고 따뜻했다.

살랑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얼마 남지 않았던 해가 스러지면서 하늘은 천천히 붉어졌다. 조금씩 균열이 간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도로 바닥은 얇은 신발 너머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오래된 구도심 거리를 후다닥 달려 도망가는 고양이가 보였다. 옆을 걷는 그는 싱글거리며 자기는 강아지도 잘 키우고 고양이도 잘 따른다며 허세를 부렸다.


그는 웃었고 그래서 나도 웃었다. 사실 아닌 척했지만 나는 저녁노을이 아직도 생소했다. 티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오래 보지 못해서 그 풍요로운 붉은 색감이 너무나 놀라웠다.

내가 그런 것에 놀라고 반응한다는 것을 절대 아무도 모르길 바랐지만, 그 순간은 그냥 다 흐릿해졌다.


물들어가는 노을이 저렇게 아름다운데, 여름 바람이 이렇게 다정한데.

내 작은 불안이 드러나는 것쯤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다.



출구 같지 않은 출구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한없이 가볍던 타인과의 관계에 아주 작은 무게가 더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주석으로 만든 추처럼 나를 잡아주는 타인의 무게였다.


몸값의 공식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아주 작은 지점에서 자본의 무게, 나의 무게, 그리고 타인의 무게까지 더해서.



그러니까 햇빛은, 때로는 그냥 걸어 나가는 이유가 된다.

이게 나의 지루한 회복기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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