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할 여유를 삽니다.
뭘 자꾸 사라는 거야?
나는 재테크 강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고. 그게 돈이 된다는 것도 몰랐다.
나름 투자 공부해보겠다고 책을 사다가 몇 권 읽어보니 그럴 듯하긴 한데 이게 현실감이 없다.
1장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작가가 종장에서는 드디어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는 스토리가 보기에 흐뭇하긴 한데 영 남 이야기같은 것이다.
갸웃거리다가 지인들이 간다는 모임에 끼워달라고 해서 역삼 역 근처의 재테크 강의에 한 번 가게 되었는데 이게 퍽 신선했다. 오랜만에 학생 입장으로 돌아가 수업을 듣다 보니 머엉~하는 기분과 함께, 나도 뭘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탁월한 마케팅이었다.
빨리 사돈의 팔촌의 돈까지 다 끌어와서 세상의 온갖 자산을 다 사지 않으면 상등신이 될 거 같은 그런 분위기. 나도 명색이 강사로 뼈가 굵은 사람이라 강사들의 스킬이나 카리스마는 익숙한데 여기는 또 달랐다. 아이들 상대가 아니라 성인, 그것도 어느 정도 재산이 있거나 사회경험이 있는 사람 대상으로 하다 보니 노골적이면서도 적나라하다.
사이비 종교 단체같은 느낌도 스치고, 오만한 계급적 발언도 툭툭 튀어나온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벤티로 사온 커피만 내내 쭉쭉 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단어들도 거침없이 쏟아진다. 듣다 보면 그냥 빨리 사채빚이라도 내서 뭐라도 사야 하는가 싶은 조바심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강의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나같은 전직 학원운영자 관점에서 말이다.
국토 개발 계획을 보고 돈 되는 스팟을 잡아라, 주요 신도시의 개발 계획을 읽어내라.
투자가들의 진입시기와, 실거주자의 진입은 어떻게 다른가.
대기업들은 어느 쪽에 포진되어 있고, 그것이 그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막무가내로 돈 될 투자처를 찍어주고, 단체로 버스 타고 사러가는 그런 강의는 아니었다. 나름 커리큘럼이 있었고 매번 과제가 있는 구조였다.
기존에 알고 있던 가치관은 확실히 흔들렸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집이라는 개념은 초장에 작살이 났고, 사고관은 건조해지며 강사가 예상 수익으로 언급하는 금액은 거침없이 커져갔다. 라비린스에 빠진 것처럼 사람들의 욕망은 좁은 강의실 안을 뱅뱅 돌았다.
안경테 너머로 번뜩이는 눈매의 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 실행하지 않고, 구경만 하는 사람은 뼈저리게 후회할 겁니다. "
어쩌면 저렇게 내가 고등학생 겁줄 때랑 비슷할까, 생각하면서도 나를 간절하게 바라보던 학부모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희망이 있다면 기꺼이 속고 싶고. 리드당하고 싶은 그 마음.
강의가 끝나고 그대로 막걸리집으로 가서 뒷풀이를 이어갔다. 본 강의보다 이게 더 주력이 아닌가 싶을 만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며 낯선 자리의 어색함을 치워나갔다.
재테크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사람은 무척 영악하고 현실적일 거라고 넘겨짚고 약간 쫄았는데, 내가 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성실하고 순진했다. 힘들게 맞벌이하는 부부, 퇴직을 앞둔 남자, 서울 올라와 맨 손 쥐고 시작했다는 젊은 청년. 학원비가 부담스러워 뭐라도 해야겠다는 엄마.
어딜 봐도 큰 돈 냄새는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다. 자산가들이라면, 이미 투자에 인이 박힌 사람들이라면 이런 기초 강의에 나올리가 없다.
여기는 내가 활동했던 입시판과 비슷한 곳이었다.
단지 대학이 아니라, 자산 소득에 대한 갈망이 목표라는 점만 다를 뿐.
핵심 정보는 나중에 정말 가까운 사람들끼리 따로 말씀드리겠다는 강사의 은근한 말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이미 강의에는 흥미를 잃었다. 이 판은 저지르거나 저지르지 않거나. 그 차이 뿐이었다.
나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동동거려야 하는가.
왜 우리는 이렇게 피로하도록 열심히 살거나, 아니면 조금 게으른 댓가로 많이 불안해야 하는가.
나는 점점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막걸리집에서 조용히 나와 혼자 대로변을 걸었다.
좁은 일터에서 나와, 세상 밖을 기웃거리니 역시 쉬운 건 없다.
믿을 만한 정보를 찾아서 헤매면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눈치를 살핀다. 누가 더 확실한 멘토인지 찾고, 어느 줄에 서야 빠른 성공일지 열심히 가늠한다. 잘못 사면 엄청나게 손해봐야 하고. 아무것도 안 사면 나만 뒤쳐질 것 같다. 뭘 사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데, 가족과 살아가는 것만으로 이미 벅차기만 한데.
우리는 다 먹이를 찾으려고 줄달음치던 어느 밤 거리의 나비들 같았다.
-실패해도 되니까, 이번 인생 다녀오시고요, 비용은 저희가 감당할 테니 열심히 사세요~
-이번 회차가 불발되면 다음 회차 있습니다. 긴장 푸세요!
우리의 인생에 이런 표지판이 붙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꿈을 꾸었길래.
회귀하고, 다시 태어나는 2회차. 3회차의 인생 판타지가 이렇게도 흔해진 걸까.
입시. 취업, 결혼, 승진, 투자. 인생에 있는 수 많은 선택들.
시도했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냉큼 뒤로 물러나서 리셋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덜 두려워질까.
밤 바람이 서늘하게 도시를 휘감았다.
실패할 여유를 갖고 싶다. 실패할 수 있는 시간. 시행착오로 써버릴 수 있는 시간.
빨리 성과를 내려고 피말리지 않아도 된다. 좀 삽질해도 되고, 실패하면 아쉬워하면서도 돌아서서 다른 일을 시작해도 되는, 그런 비현실적인 시간과 감정의 여유 말이다.
내가 실패해도 그게 누군가의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
내가 낭비한 시간과 돈이 누군가를 착취한 게 아닌 것.
그러나 그런 여유는 아무도 갖지 못한다.
우리는 원래 타고나기를 실패할 시간이 별로 없는 종족인 것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유한하고. 모두 고단하다.
나는 강의를 듣는 것을 포기했다.
내 인생을 거는데 초면인 타인의 인사이트를 빌린다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한 일이다. 내 불안을 누군가 들쑤시고 영업 전략으로 사용한다는 건 더욱 불편하고.
그리고 많이 알고 배울수록 판단하는 건 더 어려워진다는 것도 알겠다.
어차피 독립도 해야 하고. 투자도 해야 한다.
나는 또다시 무리한 부동산 구입을 해야겠다고 판단하고 여러 군데를 돌았다.
재테크 책이나 유튜브같은 건 다 제껴버렸다. 그런 것들을 느긋하게 보기엔 시기가 미묘했다.
금리가 조금씩 떨어지는 시기에 공급은 적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신축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고 프리미엄이 스멀스멀 붙기 시작한다.
부모님도 말리고. 친구들도 말리는데. 이상하게 백수 나부랭이 주제에 이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마 이건 피식자의 생존 감각 같은 것이다.
나는 여전히 초보에 가까웠다. 벌기보다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다시 고질병이 도졌는지 포트폴리오를 무모하게 짜기 시작했다.
적은 현금밖에 없으니 시간을 벌기 위해서 경기도 아파트 분양권을 샀다. 남은 돈은 조금이라도 불려보겠다고 주식과 코인으로 들어갔다. 잔금은 한 푼도 없으니 또 은행에서 빌려야 한다.
D-90. 잔금 날짜를 세기 시작한다.
나는 부동산과 더불어 코인을 계속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봐도 뭣도 모르는 게,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하고 있었다.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자료를 뒤져본다.
생전 처음 들어가 본 코인판은 심장 마비 오기 딱 좋은 변동성을 자랑하고, 은행들은 저마다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요구했다. 일단 질러놓고, 이 은행 저 은행을 뛰어다니고, 온갖 서류를 떼면서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이가 찼으니 독립은 해야 하는데 집 마련하는 게 무슨 도박같다. 집을 사는 게 아니라 룰렛을 돌리는 기분이었다.
"돈 주고 고생을 사서 한다. 그게 진짜 뭐하는 짓이냐? 욕심이 넘치면 큰일나는 거야. "
사방에서는 다 말린다. 역정을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영원히 부모님 집에 기대어 살 것인가. 어휴. 부모님도 싫을 것이고. 나도 싫었다.
대출 비중은 지나치게 크고 기업, 코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이건 모두 망하기 딱 좋은 징후이고, 그걸 알고 있는데도 콘트롤할 수가 없었다.
믿는 것은 금리와 거래량 뿐.
두 번째의 무모한 투자에서 살아남은 것은 시기를 잘 탔기 때문이다.
아. 이걸 잘 탔다고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비극적인 시기였다.
내가 세팅을 다 끝내고 탈진해서 나가 떨어진 후에 수많은 전문가들은 대단한 능력자인 것 마냥 어서 자본을 사야 한다고 쩌렁쩌렁 외쳤다. 제로금리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자본의 불길이 전 세계를 죽일 듯이 태울 무렵, 한 쪽에서는 코로나로 사람들이 어이없이 죽어갔다. 인류가 역병 앞에서 신음하고 고통받을 때 자산 시장은 고삐 풀린 말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IMF때도 자산 시장은 축제였다는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우리 집도, 옆 집도 다 고통받던 그 시절.
펜데믹으로 전 세계 자산이 오른다는데 이상하게 서러웠다.
나는 그저 닥쳐오는 잔금과 이자를 벌기 위해 주식과 코인을 들여다보고 있는 초보였다.
남들 보면 웃을지도 모르는 소액으로도 스트레스에 위가 따끔거렸다. 실패하면 안 되는 투자니까. 이건 정해진 날짜까지 반드시 만들어내야 하는 돈이다. 다시 잠도 귀찮고, 먹는 것도 귀찮아졌다.
D-60. 남은 시간은 줄고, 위는 따끔거렸다.
뭐..... 이건 맨날 팔면 오르냐. 어디서 카메라로 나 보나?
픽 웃었지만 통장은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대출을 풀로 내더라도 모자라다. 추가로 준비해야 하는 돈도 있다. 확장비도 있고 세금도 있고.
책을 보고, 영상을 보고, 지인들 이야기를 듣는다. 그 중에 맞는 이야기는 반의 반도 없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돈을 굴리고 굴렸다. 여전히 기댈 사람은 없고, 말할 주변머리도 없는 나는 혼자 간을 졸이면서 팔고 사기를 반복했다.
슬슬 서랍 속에 숨겨놓은 위스키가 그리워진다. 신물이 넘어오기 시작한다.
또 다시 라비린스. 이 익숙한 미궁 속 느낌.
D-30. 숫자는 빨갛게 깜박이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임차인 000입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어서 장사가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이번 달 조금만 조절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내가 눈이 퀭해서 팔자에 없는 그래프를 죽어라고 쳐다보고 있던 그 무렵이다.
나라에서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수시로 심야영업을 정지시켰다. 그 바람에 저녁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은 숨도 못 쉬고 고생하기 시작했다. 내 상가도 예외가 아닌 것이, 학원을 정리하면서 뭣도 모르고 매수했던 상가. 임차가 얼른 안 되서 애를 태우고 대출로 발라놓은 상가에서 SOS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문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 그냥 바닥에 벌렁 누워버렸다.
" .........."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코로나가 그렇게 길고 모질게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괜찮아지나 싶다가도 한순간에 확 번지고 확진자가 늘어나면 거리에는 사람이 줄고, 가게들은 장사를 포기하며 생계를 위협받았다.
내가 여유로운 임대인이 아니라는 게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었다.
월세를 받아 한 달 한 달 이자를 막는 소소한 임대인이라 미안할 지경이었다. 저녁 시간에 마스크를 쓰고 상가 근처를 가 보니. 텅빈 거리에, 텅빈 가게에는 장사하는 사장님들만 굳은 얼굴로 뎅그라니 앉아 있었다.
저 마음을 내가 모르는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힘들었을 그 마음을 생각하면 선뜻 좋은 답을 주고 싶은데 여기도 이자, 저기도 이자. 막아야 할 잔금은 다가오고. 내 현금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들어갔다.
이건 참.... 헛웃음이 나온다.
나는 왜 이렇게 매번 나를 극한으로 몰아놓고 후회를 하나.
내 임차인은 서른도 안 된 젊은 사람이었다. 갓 태어난 애까지 자녀는 둘이었다. 초반에 장사가 잘 될 때, 길에서 만나면 너무 싹싹하게 인사를 해서 내가 민망한 마음에 멀리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 안녕하세요. 임대인 000입니다.
힘든 시기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제 여건도 좋지 않지만. 월세의 00%는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달 연락주실 것 없이, 정책 풀릴 때까지는 줄어든 금액으로 알고 계시면 됩니다.
내 고질병 허세는 그렇게 다시 도졌고. 잔금 구멍은 더 크게 뚫렸다.
나는 밤낮없이 과외를 있는 대로 잡았다. 코인판에서는 심장을 부여잡았고, 주식방을 뒤적이며 필사적이었다.
멋지게 허세는 떨어놨으니 무조건 수습해야 한다.
위염약을 물처럼 퍼마시면서 이자를 막고, 잔금을 마련하면서 하루 하루가 갔다.
그래도 괜찮았다. 임차인의 감사문자가 휴대폰 한 켠에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실패할 여유는 주지 못했지만, 내 초라한 선심이 그에게 하루 숨 쉴 여유라도 줄 수 있었을까.
나는 다시 미궁 속을 헤매면서 살아남기 위한 출구를 필사적으로 찾았다.
이번만 무사히 막는다면 다시는 투자한다고 까불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잔금날짜는 가파르게 다가왔다. 30%씩 오르내리는 시장에서, 시간에 쫓기는 투자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이다.
이번 출구는 상상도 못했던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처음 봤을 때 그건, 전혀 출구처럼 보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