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나를 불쏘시개로 태웠다.
제로섬이라더니. 그런 건 남 이야기인 줄 알았다. 몸값 올리겠다고 새벽 퇴근 5년, 내 사업 오픈해서 살아보겠다고 밤샘 5년, 재테크 한답시고 대출금과 이자에 또 쫓기며 10년. 자본의 몸값에 이리 저리 뻥뻥 치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 몸은 다 망가져 있었다.
아니, 망가졌는지 어쨌는지 인식할 시간이 있었어야지. 게임을 해도 이게 죽는 판이다 싶으면 경고음이라도 빽빽 울려주는데, 내 몸은 아주 소리 없이 작살나고 있었다. 인생은 한방이고 가는 것도 한방이라고, 선배들이 이죽거릴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나. 죽으면 똥 됩니다. 몸 아끼세요. 새침하게 말해준 선배의 말을 나는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지.
인간 불신에 찌들어 그저 자본만이 평화다, 주장하던 30대의 나는 타고난 건강체였다. 비록 지금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나는 한 끼에 일곱 그릇을 먹어도 그저 평화롭게 소화했고 이런저런 약 같은 걸 먹는 사람들을 쯧쯧 안타까워하며, 운동 없이도 근육이 잡혀 있었고, 아무거나 대충 끼니를 떼워도 연속 밤샘이 가능했다.
장남 장녀가 다 그러하듯, 내 고통은 내 것이고, 가족의 고통도 내 것이었다. 능력이 있든 없든, 책임감 하나로 가열차게 달렸다. 나는 터프하고 건강하게 일에 치여 사는 나를 좋아했다. 오케이. 이번 생은 불소처럼 살다 죽자,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30대의 나는 사고를 치기 시작한다.
” 원장님, 건물주께서 건물을 처분하셔야 한답니다. 자녀 분들이 증여세 내셔야 해서 매각이 급하시다고 해요. 내용증명 받으셨지요? 제가 다른 곳 좋은 데 소개해 드릴게요.”
”아, 사장님. 해도 너무 하십니다. 벌써 세 번째에요!”
일만 하면 되는 건 드라마고, 현실의 나는 부동산의 세계를 전혀 몰랐다.
사업체는 건물주가 팔겠다 하면 짐 싸야 하는 구조였고, 난 5년간 3번 이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홧병과 위궤양, 잃은 건 내가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연달아 쫓겨나는 게 억울해서 부동산을 샀다. 자본의 룰 안에서 자산이 내 몸값을 방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일을 줄이거나 휴식을 가지거나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폐업을 준비하며 거액의 빚까지 야무지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대출, 이자. 이 두 단어가 눈을 감아도, 일을 하면서도 머리 속에 맴돌았다. 부동산이라고 하는 거대한 자본의 몸값에 치이기 시작한 나는, 서서히 그러나 정확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자본의 차가운 열기가 나를 불쏘시개로 태우고 있었지만 그게 불인지도 몰랐다.
그때까지도 난 아직 문제를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그 흔한 이야기를 직접 겪을 시기가 다가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