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도 없고, 키다리 아저씨도 없다.
외부에 대해 가장 유연한 시기는 역시 십대다.
뭘 해도 이 시기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음반 가사는 자동으로 외워지고, 책을 밤새워 봐도 지치지 않는다. 그 때뿐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더 열심히 보고 더 많이 기억했을 텐데.
언제부터인가 외부는 모두 소음이 되었다. 글도, 영화도, 사람과의 대화도.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것에 관심이 사라졌다. 놀라울 만큼 머리 속이 조용해졌다. 조만간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도 잘 적응할 것 같았다. 검은 새벽에 혼자 앉아 있으면 딱 좋았다.
소설 한 권이 무엇인가. 리뷰 한 토막도 읽을 수 없다. 영화는 당연히 볼 수 없고, 짧은 미드도 한 편을 절대 볼 수 없었다. 시는 그냥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외부에 대한 흥미가 없다. 벚꽃이 피는지, 천만 영화가 나왔는지, 뭐가 유행인지 궁금하지 않다.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냥 하루를 루틴대로 살고 잠들기만 했다.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입 모습만 보고 있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상대의 입이 움직이지 않으면 대답하는 식으로 대화한 적도 있었다.
나는 타인과 교감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임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세 말 놓고 깔깔대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가까운 사람과도 대화가 피곤했다.
늙는 것도 두렵지 않고, 죽음도 무섭지 않다. 이걸 고갈이라고 불러야 하나. 노화라고 불러야 하나?
그러나 나는 아직 30대였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고갈은, 단지 나이 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외부에 문이 닫혀 버린 것은 다른 이유였다. 삶이 고갈되어 버리자, 영혼도 외부를 향한 문을 닫았다.
외부에 대한 모든 관심을 접고, 나는 하나만 생각했다.
나를 부양할 수 있는 자산.
지금도 수많은 직장인들과 자영업자들은 생각한다. 내가 멈추면 누가 나를 지탱해줄 것인가.
일해야만 이어지는 현금 소득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모은 돈도 있고. 매달 나올 것도 있고 걱정 마세요. 좀 쉬다가 다시 하면 되지."
눈에 보이게 휘청대기 시작하자 엄마는 빨리 접고 쉬라고 성화를 하셨지만 다정한 마음은 마음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쉬는 건 나고, 경제적 부담도 내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완전히 나가떨어지기 전에 세팅을 끝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지금 가진 현금으로 나를 부양할 수 있는 자산을 찾아야 한다. 언제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필사적으로 서점의 책을 뒤지고 은행을 찾아다니며 상담을 시작했다.
주식도 모르고 연금도 몰랐다. 주식을 안다고 해도 그게 당장의 생활비를 지급해줄 수는 없었다. 나이만 먹었지 경제적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헛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자영업자는 고소득을 올려도 대출 내는 것이 어렵다.
나는 정확하게 내 입장을 분석해보았다. 저녁에는 일하고 오전에는 자산 운용에 대해 공부했다. 현금 자산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직접 소비하는 것은 위험하고, 주식은 중장기 보유가 필요하다. 부동산은 주거와 비주거로 나누어지는데, 주거용 부동산들은 이미 DSR을 보기 시작했다. 의무 보유기간, 실거주 의무 기간도 있었고, 대출도 내가 필요한 만큼 내기 어려웠다.
나는 자본을 굴려서 생활 소득과, 차익을 얻어내야 하는데. 주담대 대출이 어렵다면 기업 대출밖에 없었다.
나는 수익형 부동산을 구매해서 당장의 생활비를 운용하다가 적정한 시기에 매도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것은 내가 대출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주거할 집이 있었기 때문에 성립한 전략이었다. 연달아 빼앗긴 사업장에 대한 반대급부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때부터 세 차례의 부동산 파도를 겪게 되고 겨우 겨우 살아남게 된다.
나는 자본의 폭력 아래 인간이란 너무나 연약하다는 것을 안다. 자본이 받쳐주어야 가정이 평화롭고, 인격이 붕괴되지 않고,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소득이 멈춘다는 것은 내게 있어 모든 것의 역행이었다. 그래서 나는 겁도 없이 덤벼들었다.
사업장을 빼앗기는 게 세 번째가 되자, 나는 제대로 눈이 돌았던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나도 건물을 사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초짜에게 부동산이라는 욕망이 생겼다.
웬만하면 다 포기하기 전에 건물주 붙잡고 난리라도 쳐보겠는데 그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했다. 병원을 가보고 싶어도 기운이 있어야 간다. 컨디션 난조는 일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실력을 평가받는 게 두려웠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입 안에 빠진 치아가 굴러 다니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혀로 누르면서, 누운 채로 멍하니 생각한다. 아씨, 이제 정말 그만 두어야겠네.
”막내야. 회사 생활 힘들지. 못해 먹겠다 싶으면 꼭 누나한테 와. 누나가 너는 백업해 줄 수 있어. 너무 안간힘 쓰지 말고, 죽겠다 싶으면 누나한테 와. “
나는 때때로 그 놈의 허세병을 이기지 못하고 나보다 똘똘한 막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순한 막내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끔 보여줄 때가 있었는데, 그걸 보면 나는 다 사라져버린 것 같던 희미한 감정이 다시 짙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고개만 끄덕이던 막내가 도움을 청하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그 녀석이 힘들지 않았을 리는 없다.
“누나도 힘들면 나한테 얘기해. 너무 무리하지 마라. “
가족은 다정했지만 나보다 어리고 약해 보였다.
내 눈엔 보송보송한 막내한테 기대느니 혀를 깨물지. 나보다 밥도 조금 먹고 나보다 늦게 세상에 나온 동생들에게 내가 너무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이 다 서러울 때 달려와서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지, 그 앞에서 징징거리고 싶지 않았다.
허세가 피 속까지 흐르는 건지,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다독이고 나면 세상 마음이 편안했다. 와, 장녀로 태어나 다행이지 장남이었으면 우쭐대다가 보증까지 설 위인이 나였다.
그러나 결국 사회에서 빨리 무너진 건 막내가 아니고 나였으니, 역시 입만 살아 떠드는 족속은 믿을 게 못 된다.
막내를 그렇게 위로해서 보내면서, 나도 사실 생각했다. 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었으면.
나도 딱 죽겠다 싶을 때 찾아갈 존재가 있었으면 했다. 말은 차마 못하겠는데 어쨌든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장녀가 그렇듯 나 역시 부모에게 기댈 주변 머리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나는 세상이 서러울 때 기댈 수 있는 존재로 부동산을 찾은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낭만 없는 선택인가.
로맨스도 없고, 키다리 아저씨도 없고, 존재하는 것은 그저 서울과 수도권 개발 지도, 분양 업체의 홍보 팜플렛, 호구를 찾는 시행 직원들이었다.
사람한테 기댈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다들 자기 인생의 무게만 해도 버둥버둥하는데, 양심 없이 내 무게를 어디에 덜컥 싣는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숫자에 기대기로 했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뭘 잘 아는 것처럼 매물을 찾았다. 예산과 대출을 감안해서 거의 풀로 수익형 부동산을 사들였다. 상가를 1,2층으로 나누어 사고, 역 앞의 오피스텔도 샀다. 역시 옛말은 틀리지 않다. 모르면 용감했다. 수익률도, 입지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사실 자세히 알았다면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무지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 대신 일해줄 존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는 일을 멈추고 나면 아무래도 꽤 오래 잠들 것 같아서 그 전에 나 대신 일해줄 존재를 만들어 놔야 했다.
이게 올바른 판단인지 아닌지 생각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랜 후였다. 나는 그저 오전에는 부동산을 다니고, 오후에는 강의를 하면서 십 수년간 미친 소처럼 달려왔던 일을 슬슬 멈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건강 문제는 외부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괜찮지 않았다. 나 자신도 몰랐지만, 나는 안에서도 무너지고 있었다.
더운 어느 여름날. 나는 지하철 유리창에 스스로 머리를 박아버렸다. 둔탁한 소리가 귀에 울리는데 그게 이상하게 시원하게 느껴졌다. 말리는 사람도 아랑곳없이 나는 연달아 머리를 내리치며 조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