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쉬고 싶겠지, 누우면 끝이야

사업도 건강도, 출구가 막혔다.

by 이리진



이렇게 돌아보면, 엄청 부지런하고 자존심이 강한 프로같은데.


솔직히 말하는데, 반대다. 아주 정반대다.

진짜 자존심 강하고 유능한 사람은 나처럼 죽는 소리를 하고, 몸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일단 강사이면서 자영업자인 주제에 건강 관리를 이 따위로 했다는 점에서 나는 무능했다. 대인 관계나 스트레스 관리도 딱히 잘 하지 못했다.
수업이 그렇게 과도하면 프리미엄 이미지를 팔아서 전략적으로 강의를 줄였어야 하고, 줄어든 소득이 아쉬우면 온라인 강의를 하거나, 분점을 냈어야 한다. 개인적인 인간 관계를 포기했으면 혼자 우울해할 것이 아니라 매일 만나는 업계 사람들에게라도 잘했어야 한다. 급히 먹다가 체한다고 해도 식사 잘 챙기고. 애도 아닌데 약도 좀 꾸준히 먹고 운동이라도 했으면, 그랬으면 좀 좋았을까.


그러나 나는 매우 게으르고, 항상 엑시트를 꿈꿨으며, 수입 그래프에 내 자존감을 투영하는 유약한 인간이었다. 나는 사실 게으르기 때문에 멈추는 순간 퍼져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진짜 게으른 사람은 안다. 한번 누우면 끝이라는 것. 조용한 방의 이불에 파묻혀서 스케줄 따라가기를 멈추면 다시는 시작 못 한다는 것을.


한번이라도 멈추면 내일의 숨 가쁜 일정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나는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시험준비를 해주어야 하는 학생들은 너무 많고, 한번 외출하고 나면 인간관계가 생기고 약속이 생긴다. 일터로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일 속에 파묻혀야 하는데 가끔씩 나갔다 오면 외부의 세상이 자꾸 나를 불러냈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 날은 수업 준비량을 다 맞출 수가 없었다.

친구고 연애고 뭐고 생각할 틈이 없다. 평일에 8시간 주말에 12시간 수업을 해내려면 최소한 그 절반 정도의 준비와 상담이 필요하다. 한 달 정도 지나면 프린트로 쓴 후에 이면지로 활용하는 에이포 용지가 작은 산처럼 쌓인다. 특강 때문에 외부 수업하러 출강해야 하는 달이 가끔 있는데. 두 지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보다 내가 불쌍할 때가 가끔 있었다.
이게 단순 작업이 아니고, 아이들이라는 섬세한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마음 고생도 곧잘 하게 된다. 학부모님들은 종종 나보다 마음 고생 중이고, 시험 패턴을 마스터하고 나면 교과서가 바뀐다.

그냥 바쁘고 매일 쳐내야 할 일이 많았다. 학원 강사들은 오전에 약속을 하면 좀비같은 얼굴로 나오고. 새벽에 만나면 피곤에 절어 있어서, 바깥에서 만나도 알아보기 쉽다. 가끔 프레시하고 체력 좋은 분들도 봤는데 몇 년 뒤에 보면 슬프게도 그 분 역시 좀비화를 피하지 못했다.
그래. 분석할 학교와 시험 범위와 상담 약속이 너무 많았다. 같은 업계 사람들은 다들 지쳐 있고 서로 견제하는 판국이라 거리를 두는 게 낫고, 식사보다 커피가 너무 편했다.

약도 귀찮고 운동도 귀찮았다. 병원비로 갚는다면 그건 미래의 내가 갚겠지.


자존감은 수입에서 오지 않았다. 자산이 어느 정도 쌓이면서 내가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착각할 수 있었는데, 아니었다. 진짜 자존감은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내일 어떤 걸 해야지, 내년에는 누구랑 어디에 가야지.
10년 뒤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미래 지향적인 사고.



"어휴. 딱 죽겠다....."



나는 내일이 없었다. 내가 쓰러지면 게임 셋이었고, 이번 달에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속수무책이었다.

나도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들어온 돈은 보이지 않고 나갈 돈만 보였다. 수입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정색을 하고 미친 듯이 일을 늘린다. 돈 쓸 시간도 없으면서 돈 벌겠다고 안달하는 내 모습은 뭐라고 할까… 피천득의 은전 한 닢을 쥔 거지 같았다. 결국 쓰지도 못할 돈을 모으겠다고 강박적으로 몸을 갈아 넣는 하루 하루.

연말이 다가오면 미래고 나발이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바싹 긴장이 되었다. 학생들이 리셋되기 때문이다.
다음 달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내가 언제 아플지도 모르고, 언제 트렌드가 달라질지 모르고… 그러니 계속 일을 늘리고 늘린다. 결코 쉴 수 없는 자영업자의 비애다. 그래서인가. 나는 지금도 폐업을 하고 있는 가게를 보면 멈춰서서 바라보고, 매장에 홀로 있는 가게 주인을 보면 포장이라도 조금 하고 나오게 된다.


이 시기의 내 은밀한 꿈은 스위스에 가는 거였다. 알프스는 관심 없었다. 그저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스위스는 내 로망이었다. 세상에, 돈만 있으면 손가락질 받지 않고 평화롭게 이 세상 로그아웃이라니.


별로 부끄럽지는 않은데. 말하기는 좀 그렇다. 나는 게으르고 불안이 강한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이 이성이라면 나는 절대로 도망갈 것이다. 이 시기의 나를 만난 사람들은 참 고생이 많았다.

다크 써클을 달고, 푸석푸석한 얼굴에 사나운 눈초리를 하고 밤낮으로 일하던 나는 체력이 너무 떨어져 사무실 서랍 속에 위스키를 한 병 넣어 두었다. 에너지를 끌어 올려야 하는데 때려 죽여도 기운이 없는 날에는 꺼내서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참 생각해 보니 골고루 했다.



“괜찮아. 아, 내 성질 몰라? 다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야.”



물론 객기다. 나도 내 성질을 모르겠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그냥 말이라도 화끈하게 하고 나면 정말 견딜 만했다. 희뿌연 슬픔 같은 게 가끔 밀려오긴 했는데 월세를 내야 하는 날짜가 오면 깔끔하게 사라졌다. 연애도 귀찮고 결혼도 남 얘기다. 그냥 잘 버텨서 노후 자금까지 벌어 은퇴하겠다는 굳은 결심.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사업체가 있던 건물의 건물주들은 연달아 건물을 매각했고, 새로운 건물주들은 월세를 파격적으로 올렸다. 작년에 올렸는데 올해 또 20프로 올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이 때만 해도 임대료 상한제가 없었고 생겼어도 무의미했다. 무리한 월세 상승을 거부하면 건물주들은 건물 외부 수리를 시작했다. 드릴음이 꽝꽝 울리는 건물에서 수업 준비를 하는 마음은..... 전쟁통에서 자식 키우는 어미랑 좀 닮지 않았을까.



“젊은 사장님한테 정말 미안한데 우리 마누라가 아파서 건물 팔고 이젠 아파트로 가서 편하게 살아야겠어요. 나도 이제 건물 관리가 너무 힘이 드네. 미안해요. “

”제가 건물을 사면서 대출을 80프로 냈습니다. 저희가 최대한 사정을 봐드리고 싶은데 저도 2금융까지 빚내서 산 건물이에요. 사장님. 아유 사정은 딱한데. 저희도 힘들어요”



건물주들이 나쁜 분들은 아니다.

그 분들도 다 평생 벌어 건물에 녹이고, 관리하느라 노구를 끌고 고생하시고, 세금 다 내고, 대출 내고 하는 분들이며, 나름 계획을 세워 건물을 구매하기 때문에 기존 임차인들의 사정을 다 봐줄 수도 없다. 내가 돈 벌고 엑시트를 하려는 것처럼, 건물주들도 건물을 보유하다가 적정 시기가 되면 엑시트를 하려고 한다.

나도 이제는 어느 정도 보이고 알긴 알겠는데, 문제는 그 시기의 내가 너무 무지하고 지쳐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유망한 핫플에만 둥지를 틀었던 것인가, 나는.

옮겨가는 족족 2년 내에 건물이 팔렸다. 나는 그냥 서럽고 억울했다.


학원을 한번 차릴 때마다 목돈이 들어간다. 인테리어 업자와 실랑이하면서 신경이 고갈되고, 교육청에 몇 차례 감사 받고 신고를 하고 홍보까지 해야 하는데 약속된 강의 시간은 절대 줄일 수 없다. 수면은 줄일 대로 줄였잖아. 그러면 뭘 줄이느냐. 내 수명이다.

한번 차릴 때마다 나는 6개월 정도는 수명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렇게 차린 사업장을 연속해서 접으면서 나는 슬슬 육체적으로 앓는 것을 지나 정신적으로도 골병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주 나쁜 성격은 아니었는데 아주 전투적으로 변했다.


나는 이 때만 해도 부동산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땅값 비싼 동네에서 세 번째로 사업체를 뺏기면서 나는 열병처럼 앓기 시작했고 동시에 부동산에 대한 뜨거운 집착도 시작되었다.


아이 씨, 연애를 이렇게 했어야지.

일요일 연재
이전 02화2. 잘 벌었고요, 잘 무너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