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앞의 드워프가 된 기분이었다.
2화. 잘 벌었고요, 잘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시간 없고, 이따가 끝나고 먹을께요.”
이 얼마나 현대인다운 멋진 문장인가.
멋지지만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조직이 아니라 개인 플레이로 일하는 강사들은 번아웃으로 건강을 망치는 대표적인 직업군으로 꼽힌다. 이건 주말 없이 저녁 시간과 새벽까지 주로 일을 하고, 업계에서 얼마나 올라가냐에 따라 수익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월 70에서 수억 대까지.
그 중에서 나는 좀 패기 없는 강사에 속했다. 많이 안 벌어도 되고, 유명해지지 않아도 좋았다. 그냥 적당히 일하고, 적당한 수입 올리고 적당히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이 때만 해도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강아지과 성격이었다.
그런데 그건 쉬운 게 아니었다. 적당히 일하면 발 붙일 곳이 없는 바닥이었다. 월급이 아니라 비율제였고, 학생을 늘리다 보니 한 파트를 다 책임지게 되고, 급기야 독립하여, 내 사업체를 내고 나니 적당히 한다는 이야기는 이 분야의 바닥을 내가 깔겠다는 이야기와 동일했다.
잠 줄이며, 24시간 일 생각만 하고, 주말 없이 기를 쓰고 뛰어야 겨우 신생 업체가 바닥에 비빌 수 있다. 출근하고 수업 준비하고, 12시간씩 수업하고, 교재 검토하고 광고안 분석하고, 미팅에, 상담에, 세금 문제와 고용 문제까지... 숨 쉴 틈 없이 바빴다. 평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일이 더 늘었다. 일이 늘어나니 수익이 늘어났다. 신나서 더 일하고, 더 바빠지고 뭔가…
드워프가 된 기분이었다. 망치질을 끝없이 하고 모루와 쟁기를 만들어 좋은 평을 받고 다시 의뢰를 받아 또 열심히 망치질을 하는 뜨거운 불 앞의 드워프.
밥 먹기도 귀찮았다. 밥을 먹다 보면 전화가 오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대충 커피 마시고. 초콜렛 하나 먹고, 새벽에 일 끝나고 고요한 사무실에서 PC 앞에서 끼니를 떼웠다. 커피로 하루를 버티다가 새벽에 몰아 먹었다.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잘 버티는 내가 멋있다, 다 그렇다. 생각하니 마음이 괜찮아졌다.
주말 약속에 나갔다가 상대방 앞에서 전화 통화가 길어지는 경험을 반복하고 나니 약속도 최대한 줄였다. 가족 모임에는 비용 부담을 주로 하고, 얼굴만 비친 후 나온다. 친구들은 내 사업장으로 오는 경우에나 만나고, 밖에서 약속해서 만나는 것은 연간 행사가 되었다. 하나씩 줄이다 보니, 어느새 다 잃고 있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최근 10년간 노을을 잘 본 적이 없었다. 점심쯤 나와서 새벽 해가 뜰 쯤에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해가 지는 풍경은 낯설고 이상한 것이 된 것이다. 마치 거꾸로 걷는 사람처럼.
”이게 위고요. 이게 다 출혈입니다. 위궤양이 심해지면 위암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
내가 병원에 가려던 게 아니었다. 몸 아껴라, 죽으면 똥 된다. 일버릇처럼 말하던 선배 선생님이 어느 날 새벽에 무너지듯 주저앉아서 응급실로 실려갔다. 나는 수업을 하다가 놀라 화급히 뒤따라갔고 그 때까지도 내 상태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선배는 가늘가늘 손목이나 한 줌이지, 나는 딱 봐도 강골인데 뭐, 소음이 심한 응급실에서 잠든 그녀를 쳐다보다가 뻘쭘해서 검사를 예약하고 받아본 것 뿐이다.
위장은 시뻘겠지만 소화가 잘 안 되는 건 현대인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손이 떨리는 것. 머리가 징징 울리는 것, 가끔 토하는 것. 나는 그런 게 업계의 훈장 같다고 생각했다. 잘 나가는 선배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했으니까. 다들 그렇게 버텼고, 그래서 이렇게 많이 벌었다고.
나중에 보니 그 조언들도 허세가 반이었지만 그 때는 잘 몰랐다.
의사는 휴식을 취하고 섭식을 잘하고 잘 자고, 뭐 어쩌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월세와 운영 비용, 광고비, 직원 월급이 떠올랐다. 어휴. 아픈 게 한 순간에 사라졌다. 한창 수익이 발생할 때 달려야 했다. 내가 쉬면 누가 대신 막아주나. 그렇다고 드러누울 만큼 아픈 것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우리 업계는 다들 링겔을 달고 살았다. 나도 그런 시기가 왔나 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다. 얼굴이 반쪽이었는데 배는 볼록했다. 원래 타이트한 옷을 잘 입는 편이었는데 점점 손이 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바빠서 옷을 제대로 챙겨 입기도 어려워졌다. 좋게 말하면 루즈 핏, 어머니 표현으로는 푸대자루 같은 무채색 옷을 돌려가며 입기 시작했다. 머리는 부스러질 듯 푸석해서 미용실에서는 항암한 적 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트러블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피부과 갈 시간에 조금이라도 자고 싶었다. 잠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이젠 잠에서 깨려면 너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잘 웃고 농담하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점점 사람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웃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필요했다. 말 끝에 칼날이 섞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내가 정말 싫었다.
나는 차갑고 날카로운 사람을 싫어한다. 차갑고 날카로운 사람은 다 섬에 가서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나였다. 나는 조금씩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너무 늦게 온다.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갈께. 늦어도 꼭 연락해.”
엄마는 새벽 3시까지 내 전화를 기다렸고, 나는 그 시간까지 상담과 문제 풀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문자가 성가셨다. 늦게 확인한 문자를 보니 울컥 화가 났다. 아무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문자를 보러 핸드폰을 켤 시간조차 없었다고 말하기도 싫었다.
나는 자본과 외모의 힘을 믿는다.
돈이 없었고, 외모가 출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걸 가진다는 게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그리고 자본과 외모를 부정한다는 게 얼마나 언어도단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것들은 마치 이 세상의 골든 티켓 같았고 나는 그걸 꼭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자본을 얻으며 건강을 잃어가고 있었고, 건강을 잃으며 외모와 인성도 잃어가고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가까운 사람과 멀어졌고, 건강하고 화사해야 할 시기에 나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 잘 벌었고 잘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